[기자수첩] 국경이 무슨 의미가 있겠냐만은

입력 2020-11-26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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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혜림 자본시장부.
▲유혜림 자본시장부.

“오늘날 ‘기업 국경’을 따지는 건 뒤떨어진 발상이다.”

‘외국계 기업의 도 넘은 행태’ 기사가 나간 뒤 기업 관계자로부터 받은 피드백이다. 동의한다. 자본에는 국경이 없다. 자본의 목적은 돈을 버는 것이니 국경쯤이야 형식적인 경계에 불과하다. 0.1% 지분율로도 우위가 갈리는 상황에서 우리나라, 너희 나라 기업을 따지는 것도 사실 웃기다.

하지만 매출에는 국경이 있다. 국내에서 주머니 채우는 다국적기업이 마뜩잖아서 하는 얘기가 아니다. ‘소득 있는 곳에 세금 있다’라는 조세 원칙을 무너뜨리는 게 잘못됐다는 지적이다. 소위 ‘애국 기업’이라도 탈세 사실이 드러나면 마땅히 비판받아야 한다. 다국적기업의 정당성은 ‘부의 재분배’ 효과를 함께할 때 갖출 수 있다. 이들의 ‘탈세’는 곧 국가별 부의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행위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에 호황을 누리는 일부 다국적기업은 ‘꼼수’를 부리기도 한다. 넷플릭스 한국법인은 미국 본사가 특별히 경영 자문을 하지 않았는데도 자문료를 지급한 방식으로 세금을 회피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거액의 자문료로 넷플릭스 한국법인은 적자를 냈고 법인세 납부 없이 미국 본사에 국내 수익을 안겼다는 것이다.

딜리버리히어로 코리아 역시 매출이 늘면서 발생한 소득을 과세 대상이 아닌 다른 명목의 소득으로 위장해 세금을 피한 의혹을 받고 있다. ‘21세기 자본’의 저자 토마 피케티는 금융 세계화가 본격화된 이후, 조세회피처를 통한 다국적기업의 탈세가 비약적으로 늘었다고 지적한다.

빌 게이츠 역시 피케티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지만 ‘위기의식’에는 공감한다. 불평등이 심화하면 자유로운 기업 활동의 토대인 자본주의와 민주주의가 위태로울 수 있다는 지적이다. 또 기업이 지속가능하려면 어느 정도 정부 규제를 함께 준수해야 한다는 점도 분명히 인정한다. 자본 국경이 모호해질수록 '조세 체계' 중요성이 더 커지는 이유다. 시장 룰은 복잡하면서도 명쾌하다.

자본에는 국경이 없지만, 매출엔 국경이 있다. 많이 바라지 않는다. 약속한 만큼이라도 나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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