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이펙트] ① 코로나가 앞당긴 노동의 미래...막노동도 원격 시대

입력 2020-11-30 06:00 수정 2020-11-30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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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대형 편의점 체인 로손, 상품 진열 로봇 도입
블루칼라 노동자들도 가상현실 통해 원격근로 가능
전문 지식의 원격 공유도 가능해져

▲일본 편의점 체인 로손이 도입한 로봇 ‘모델T’가 가상현실 시스템으로 연결된 사람의 행동에 따라 편의점 선반에 상품을 진열하고 있다. 사진제공 텔레이그지스턴스
▲일본 편의점 체인 로손이 도입한 로봇 ‘모델T’가 가상현실 시스템으로 연결된 사람의 행동에 따라 편의점 선반에 상품을 진열하고 있다. 사진제공 텔레이그지스턴스
#도쿄만이 내려다보이는 일본 고층 빌딩의 1층에 있는 작은 공간. 한 남성이 가상현실(VR) 헤드셋을 쓰고 컨트롤러를 조종하며 무언가를 옮기는 듯한 행동을 반복하고 있다. 사실, 그는 지금 편의점 선반에 상품을 진열하는 중이다. 이를 실행에 옮기는 건 다른 건물의 편의점 매장에 있는 그의 분신 ‘휴머노이드(인간형)’ 로봇이다.

일본 대형 편의점 체인 로손이 올해 6월 도입한 이 ‘아바타’ 시스템은 창업한 지 불과 3년 된 일본 스타트업 ‘텔레이그지스턴스’가 만들었다. 텔레이그지스턴스의 상용화 1호 로봇 ‘모델T’는 약 40년에 걸친 연구의 집대성이며, “지상의 모든 일을 다른 곳에서 할 수 있도록 한다”는 목표를 상품화한 첫 사례로 꼽힌다. 도쿄 미나토구 ‘로손 모델T 도쿄포트시티 다케시바점’에 가면 볼 수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전염병의 세계적 대유행)은 이처럼 인류 노동의 미래를 대폭 앞당겼다. 슬랙, 줌 같은 화상회의 시스템 덕분에 화이트칼라 노동자의 재택근무가 가능해진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 그러나 이런 재택근무도 더는 화이트칼라의 전유물이 아니게 됐다. 블루칼라 노동자들도 원격근로가 가능해진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제2의 ‘원격근로 기술(remote-work technology)’이 이미 많은 영역에서 실현되고 있다고 했다. 바로 ‘원격존재(telepresence·텔레프레즌스)’라는 기술 덕분이다.

텔레프레즌스는 사람들이 마치 그 자리에 있는 것처럼 쌍방향으로 상호작용하는 기술을 모두 포함한다. 로봇 제어 외에도 드론의 원격조종이나 화상회의 개최 등 광범위하다. 그 결과, 그동안 원격근로와는 무관하게 여겨졌던 편의점 직원과 호텔 메이드 같은 직종도 10년 안에 원격근로가 가능해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저출산·고령화가 심각한 일본은 만성적인 인력난이 텔레프레즌스 기술을 앞당기는 원동력이 됐다. 텔레이그지스턴스의 기술은 현시점에선 편의점 선반에 주먹밥이나 음료를 진열하는 데 그치지만, 궁극적인 목표는 사람들을 거리와 시간 제약에서 해방시키는 플랫폼을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 갈 길이 멀다. 최대 과제 중 하나가 경제성이다. 시스템·원격 관리자 1명과 합쳐도 현장에 있는 동등한 인간보다 비용이 낮아야 한다. 그렇다 보니 텔레이그지스턴스의 ‘모델T’는 싼 부품으로 만들어야 하며, 한 손으로 들 수 있는 무게도 2kg이 한계다.

재능 향상도 과제다. 로봇은 인간만큼 손재주가 없고, 작업 속도도 떨어진다. 숙련된 인력이 병 하나를 선반에 올려놓는 데 1초 걸린다면, 모델T는 8~9초가 걸린다. 훈련 데이터를 더 쌓아 로봇에게 주입해야 한다는 의미다.

텔레프레즌스의 또 다른 유형으로는 ‘전문 지식의 원격 공유’가 있다. 예를 들어, 데이터센터의 유지 관리와 약품 생산, 석유공학 등의 작업 현장에 있는 사람이 스마트 안경을 쓰고, 먼 곳에 있는 전문가에게 바로 눈앞의 상황을 보여주며 공유하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작업자에게 말하거나 급한 문제를 처리하는 데 도움이 될만한 이미지를 보낸다. 말하자면 실시간 동영상 공유 기능과 같은 것이다.

▲드론 유지보수회사 로보틱스카이즈의 서비스 센터 직원들이 구글 스마트 안경 ‘구글글래스’를 활용, 전문가들의 조언을 원격에서 실시간으로 받으면서 제품을 수리하고 있다. 사진제공 로보틱스카이즈
▲드론 유지보수회사 로보틱스카이즈의 서비스 센터 직원들이 구글 스마트 안경 ‘구글글래스’를 활용, 전문가들의 조언을 원격에서 실시간으로 받으면서 제품을 수리하고 있다. 사진제공 로보틱스카이즈
드론 유지보수회사인 로보틱스카이즈는 200개 넘는 서비스 센터 직원들에게 구글의 최신형 스마트 안경 ‘구글글래스 엔터프라이즈 에디션 2’를 쓰게 한다. 작업자가 눈앞의 상황을 스트리밍하면 전문 기술자로부터 수리 방법에 대한 지침이 되돌아오는 구조다.

이 회사의 브래드 헤이든 최고경영자(CEO)는 “코로나19 발발 이전에는 전문 기술자들이 각지를 돌아다녔다. 하지만 현재는 PC로 작업자의 헤드셋에 원격으로 연결해 작업을 한다”며 “코로나19 재난으로 일하는 방식이 빠르게 변화했다”고 말했다.

전문 지식의 원격 공유를 다루는 ‘업스킬’은 스마트 안경을 이용한 이러한 시스템을 미국 항공기 제조업체 보잉, 컨설팅 기업 액센츄어 등에 팔고 있다.

브라이언 발라드 업스킬 CEO는 “코로나19와 그에 따른 이동 제한으로 고객의 이용 빈도가 폭발적으로 늘었다”고 지적했다. 한 제약업체는 월평균 15회 남짓 사용하던 것이 지금은 월 600회 이상으로 늘었다고 한다.

텔레프레즌스가 ‘모델T’나 ‘구글글래스’처럼 복잡한 것만은 아니다. 아주 간단하게 쓰이는 사례도 있다. 영국 옥스퍼드에 있는 덴드라시스템스는 드론을 이용해 자연 생태계 상태를 평가·복구해 공중에서 지상에 씨앗을 뿌린다. 이 회사의 공동 창업자인 수전 그레이엄 CEO는 “파종용 드론을 사용하면 같은 인물이 일정 시간에 뿌리는 면적이 약 10배 증가한다”고 했다.

이런 시스템은 텔레프레즌스가 가져올 미래의 현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원격작업이나 외부위탁이 증가하더라도 인간 역시 일부 역할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는 것이다.

로손과 텔레이그지스턴스가 도쿄에 연 편의점이나 ‘아마존고’ 같은 무인 편의점은 약 30%의 인력 절약을 실현했고, ‘모델T’ 같은 진열 로봇은 30%의 업무 위탁을 가능케 한다고 한다. 하지만 아무리 자동화가 진행된다 한들 고용 일부는 남아 로봇 설계자와 제작자, 기술자 등 새로운 직종 수요를 창출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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