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IT 공룡 기업’ 싸움에 새우등 터진 창작자들

입력 2020-11-30 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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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형두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장

장면 #1. 최근 정보기술(IT) 산업 생태계에서 국내 기업들이 외국 기업에 대해 역차별을 당하고 있다는 주장이 심심치 않게 나온다.

9월, 1심에 이어 항소심에서도 페이스북은 방송통신위원회를 상대로 제기한 과징금취소소송에서 이겼다. 이 소송은 방통위의 상호접속고시 변경에 따라 국내 인터넷서비스제공사업자(ISP, KT·LGU+·SK브로드밴드 등)가 해외 콘텐츠제공사업자(CP, 페이스북·구글 등)에 대해 망사용료를 징수할 수 있게 되자 기존에 망사용료를 내지 않던 페이스북이 접속경로를 해외로 바꿈으로써 시작됐다.

방통위는 접속경로 변경으로 이용자의 페이스북 접속 속도가 느려졌다는 것을 과징금 부과 사유로 삼았다. 대법원 판단을 남겨두고 있지만, 인터넷 트래픽에서 유튜브나 페이스북이 국내 CP(네이버·카카오 등)를 훨씬 앞지르고 있다는 점에서 항소심 판결이 유지될 경우 국내 기업들이 역차별당하고 있다는 볼멘소리는 더욱 커질 것이다.

장면 #2. 넷플릭스는 코로나 시대 이른바 대표적인 언택트 기업으로 급성장하고 있다.

작곡가·작사자들로부터 저작권을 신탁받아 관리하는 한국음악저작권협회가 넷플릭스 등 해외 온라인동영상 서비스(OTT) 사업자에 적용하는 음악저작권 사용료율을 국내 OTT(웨이브·티빙 등)에 적용하려 하자 국내 OTT 사업자들이 강력 반발하고 있다. 당사자는 다르지만 일견 모순돼 보인다. 국내 CP는 정부가 해외 CP를 봐준다며 역차별을 주장하고 있고, 국내 OTT는 해외 OTT보다 좋은 조건으로, 즉 차별 대우를 해달라고 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두가 차별을 당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특히 국내 기업들은 역차별이 있다고 주장한다. 차별과 역차별은 정의와 평등 개념에서 출발한다. 그런데 10월 미국 법무부가 구글을 반독점법 위반으로 제소한 데서 뜻밖에 국내 통신사와 관련된 혐의가 나타났다. 최근 구글 인앱결제 강제정책이 관심을 받는 가운데 인앱결제 수수료 30%의 절반인 15%를 국내 통신 3사가 결제수단 제공 대가로 받아왔음이 밝혀진 것이다. 각기 통신서비스 품질 확보, 시청료 인상요인 억제, 글로벌 스탠더드 등 그럴싸한 주장을 하면서 때로는 통신서비스 이용자, 시청자 등의 이익을 전면에 내세우기도 하지만, 한 꺼풀만 걷어보면 해당 기업의 수익을 올리는 데 혈안임을 알 수 있다.

차별·역차별의 가장 중요한 기준 중 하나는 누가 약자인가를 정확히 파악하는 데 있다. ISP와 CP 싸움에서 정작 소외된 집단은 창작자들이다. 창작자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저작권법은 창작자보다 더 약한 지위에 있는 이용자들을 배려하기 위해 공정이용(fair use)이란 제도를 두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요즘 이 제도를 가장 잘 활용하고 있는 주체는 초거대 기업인 구글이다. 구글로 트래픽이 몰리는 데 가장 크게 기여한 것은 지식검색인데, 타인의 저작물을 허락 없이 무료로 이용하여 빅데이터를 형성할 수 있는 길을 터준 것이 공정이용 제도이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면 미국 법원이 몇 건의 중요한 공정이용 재판에서 구글의 손을 들어주었기 때문이다.

저작권법은 작은 물고기만 잡아낼 뿐 초대형 빅데이터 기업은 빠져나가는 성근 그물망이 되어 버렸다는 한탄이 나올 만하다. 인터넷 환경에서 비즈니스를 하는 거대 기업, 방송사 등은 자기들끼리 이용자를 내세워 싸우고 있지만, 정작 그들의 비즈니스를 가능하게 하는 음악, 미술, 문학 창작자들에 관한 관심은 거의 없다. 여기에는 저작물 이용환경의 변화에 창작자들이 적응한 탓도 없지 않다. 소비자들을 직접 만나기 어려운 창작자들이 이들 기업을 통해 때로는 무료로 자신을 알리는 데 급급하다 보니 더욱 존중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이 지속하면 창작물은 사은품(gratitude)으로 전락할지도 모른다. 영혼이 들어 있지 않은 문학, 기계가 찍어내는 단조로운 음악과 미술만이 난무할 경우 그 피해는 우리와 후대에 돌아가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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