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발언대] 성 인지적 정책을 견인하는 성별영향평가의 의미와 과제

입력 2020-11-30 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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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아 서울대학교 언론정보학과/여성학협동과정 부교수

성별영향평가는 2004년 중앙정부를 중심으로 하는 10개 과제 시범사업에 이어 2005년부터 본격적으로 시행된 제도이다. 관련법의 명칭이나 사업이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지지는 않지만, 우리나라의 법령과 사업을 계획하고 시행하는 데 있어 성차별적 요인이 있는지를 살피고 개선안을 제시하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이 법이 평가하는 대상은 법률, 대통령령, 총리령, 부령 및 조례 규칙 등 제·개정 법령, 법률에 따라 3년 이상의 주기로 수립하는 계획, 그리고 성 평등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주요 사업이다.

정책과 법, 사업에 대한 성별영향평가가 중요한 것은 이것이 정부 정책 전반에서 성 평등이 실현되게 하도록 성별 요구 사항을 파악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정책 의제에 반영하기 위한 활동이기 때문이다. 국가 예산이 투입되는 사업, 제도를 구성하고 운영하는 법령과 계획의 경우, 사전에 성인지 감수성에 근거한 사업 계획이 수립되지 않는다면 우리 사회의 성차별이 유지되고 재생산되는 데 정부와 지자체가 앞장서 예산과 인력을 투여하는 문제를 낳을 수 있다.

몇몇 사례만 보아도 우리 사회의 성인지 감수성을 높이는 데 성별영향평가가 기여해온 바를 확인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양육이 여성의 몫이라는 가부장제적 인식을 타파하고 이와 관련된 다양한 제도와 구조를 개선하는 것은 우리 사회의 오랜 성차별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일이다. 일터에서의 차별, 여가와 사회 활동에서의 차별은 물론 가족 내 차별과 감정 노동의 일방적 부담 등 다수의 문제가 이에 관련 있다.

이처럼 오래된 차별에 저항하려는 시도는 일상생활의 사소해 보이는 영역에서도 이루어져야 하는데, 남성 화장실에도 기저귀 교환대, 영유아 보조 변기를 설치한 사례나 공무원 육아휴직제도에서 남성과 여성이 받을 수 있는 휴가 기간이 달랐던 것을 남녀 모두 3년으로 변경한 사례 등이 그 좋은 예이다.

양육이 여성의 몫이라는 전제를 당연시하여 만들어진 낡은 제도를 성별영향평가를 통해 개선하여 우리 사회의 성 평등한 돌봄과 양육을 위한 제도적 기초를 마련할 수 있었다.

또한 정부와 지자체가 시행하는 각종 홍보 사업에서 홍보물이 성차별적 인식을 드러내는지, 젠더폭력에 관한 잘못된 인식을 전파할 가능성이 있는지, 외모에 따른 차별을 조장하는지, 그리고 가족 구성에 관한 고정관념을 전달하는지 등을 평가하고 개선 제안을 하고 있다. 대체로 홍보물의 문제는 우리 사회의 표준 인간형을 남성으로만 제시하거나, 여성은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이고 남성이 전문가의 위치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역할을 담당하게 하는 등 성별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미지 전략을 구사한다는 데 있었다. 이는 오랜 기간 우리 사회에 뿌리 깊게 자리 잡은 문제여서, 적극적인 문제 제기와 개선안 제시를 통해 변화시켜 나가야 하는 영역이다.

성별영향평가를 통해, 우리 사회에서 여성성과 남성성이 어떻게 인식됐는지를 드러내고 성평등한 재현은 어떤 것이며 우리 사회가 바라는 성평등한 미래의 모습은 어떤 것인지를 상상하고 제시할 수 있는 공론의 장을 확보하게 되었다.

한편 전통적 성별 고정관념이 강한 지역 문화에 대한 개입 역시 중요한 성과이다. 부부가 함께 농사를 짓는 경우 배우자의 동의가 있어야 농어업경영체의 공동 경영주로 등록 가능했던 시행규칙이 2017년 성별영향평가를 통해 배우자 동의 조건을 삭제하고 정비하는 개선을 이루었다. 이처럼 성별영향평가는 과거 당연하게 여겨지고 문제가 없는 것으로 간주했던 우리 사회의 성별 고정관념과 이에 근거한 각종 구조적 차별을 인지하는 계기를 만들어 주고, 이에 근거하여 공공 정책의 변화를 끌어낸다는 점에서 필요한 것이다.

성별영향평제도의 운영 과정에서 아쉬운 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정책과 사업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지적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실질적 개선에 이르도록 하는 것이 그 목표이므로, 실행 상의 난점을 극복하면서 성적 평등 관점에서 정부 정책을 제대로 견인할 수 있도록 관련 사업과 제도에 대한 시민의 적극적인 관심이 필요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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