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가 내년도 예산안에서 감액한 5조9000억 원의 대부분은 ‘무늬만 감액’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재정 관련 민간연구기관인 나라살림연구소는 3일 국회 심의에서 삭감된 5조9000억 원 중 500억 원 이상 감액된 30개 사업을 분석했다. 이들 사업의 감액 규모는 총 4조7000억 원으로 전체 감액분의 79.7%에 해당한다. 이 중 4조2000억 원은 경제적·실질적 측면에서 국가의 재정 여력 증대로 이어지지 않는 ‘꼼수 삭감’인 것으로 나타났다.
전날 국회 본회의에선 총 558조 원 규모의 내년도 예산안이 통과됐다. 정부안에서 5조9000억 원을 삭감하고, 8조1000억 원을 증액해 2조2000억 원 순증한 규모다.
사업별로 국고채 이자상환은 9000억 원, 주택구입전세자금 융자사업은 8000억 원, 지방채 인수 융자사업이 5000억 원, 국민연금급여 지급사업은 3391억 원 각각 감액됐다. 여기에서 국고채 이자상환과 국민연금급여 지급사업은 연례적으로 부풀린 금액이 국회에 제출된다. 따라서 감액이 실질적인 지출 감소로 이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특히 이들 사업은 법령으로 정해진 의무지출로, 예산이 감액됐다고 해서 지출해야 할 금액을 줄일 순 없다.
나라살림연구소는 “정부 예산안 중 법적의무지출액의 경우, 단순히 지출 예상금액만 삭감하는 금액이 다수를 차지한다”며 “예를 들어 국채 이자상환이나 국민연금기금 지출액, 국가배상금 지급액은 국회에서 각각 9000억 원, 3391억 원, 1000억 원을 삭감했으나 이는 실제 지출금액을 삭감하는 것이 아니고, 단순히 예상금액을 변경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감액 사업에는 주택구매자금 등 융자사업도 다수 포함됐다. 다른 소비성 지출과 달리 융자는 지출 이후 일정 시점이 지나 회수된다는 점에서 감액을 지출 축소로 보긴 어렵다. 오히려 감액으로 인해 시장금리와 정책금리 간 격차만큼 제한적으로 국가 재정여력이 줄 수 있다.
나라살림연구소는 “국회의 예산심의는 국회에서 삭감된 금액을 준거로 국회에서 증액하게 된다”며 “‘무늬만 삭감’ 금액이 증가한다면, 국회 증액여력이 추가로 발생한다”고 우려했다.
이어 “이러한 국회 삭감 내역의 상당수는 공식 예결위 회의록에는 존재하지 않고 밀실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문제가 있다”며 “소위, 소소위 등의 밀실협상 논의 과정을 반드시 기록에 남겨야 하고, 즉각적으로 공개하기에 어려운 정무적 판단이 존재한다면 최소한 부분공개 형식이라도 공개해야 하며 일정 기간이 경과 후에는 전체 내역을 공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