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에 직격탄을 맞은 글로벌 영화업계가 자구책으로 시작한 신작의 온라인 개봉이 ‘뉴 노멀’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미국 통신 대기업 AT&T 산하 영화 제작사 워너브러더스는 내년 신작들을 영화관과 온라인에서 동시 개봉키로 했다고 3일(현지시간) 발표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워너브러더스는 영화관과 자사 동영상 스트리밍 플랫폼 ‘HBO맥스’에서 신작을 동시에 개봉할 계획이다. 온라인으로는 개봉 첫 1개월 간, 이후에는 영화관에서만 상영할 방침이다. 내년에는 공상과학 영화 ‘Dune’과 블록버스터 ‘매트릭스’ 시리즈 최신작 등 17개 작품이 개봉을 기다리고 있다. 앞서 워너브러더스는 지난달 12월 25일 영화관 개봉하는 ‘원더 우먼 1984’를 HBO맥스에서 동시에 1개월 간 제공한다고 발표한 바 있다.
이처럼 영화관과 온라인에서의 하이브리드 방식의 개봉은 앞으로 영화산업의 미래가 영화관이 아닌, 거실에 있다는 신호를 보낸 것이라고 WSJ는 분석했다.
워너브러더스는 1903년 미국 펜실베이니아 니켈로디온으로 출발, ‘카사블랑카’ 같은 고전 상영으로 이름을 알렸는데, 앞으로는 영화관이 아닌, 온라인에서 살길을 찾겠다는 것이다.
다른 영화사들도 할리우드의 새로운 현실을 직시, 이미 온라인에서 활로를 찾고 있다. 앞서 월트디즈니는 애니메이션 실사판인 대작 ‘뮬란’을 자사 온라인 스트리밍 플랫폼 ‘디즈니+’에서 개봉했다.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의 절대 강자인 넷플릭스의 지배력에 대항하기 위해 시작한 사업이 아예 본업으로 입지를 굳히는 모양새다.
우리나라 영화들도 넷플릭스로 직행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지난달 20일 영화 투자배급사 메리크리스마스는 올해 최대 기대작이었던 송중기 김태리 주연의 SF 블록버스터 ‘승리호’의 극장 개봉을 포기하고 넷플릭스로 직행하기로 했다. 이제훈 안재홍 최우식 박정민이 출연한 ‘사냥의 시간(리틀픽쳐스)’을 비롯해 박신혜 전종서 주연 ‘콜(용필름)’, 차인표 주연의 ‘차인표(TKC픽처스)’ 역시 넷플릭스로 바로 갔거나 간다. 코로나19 여파로 관객 수가 계속 줄고 있는 와중에 좌석 간 띄어 앉기가 재개돼 영화관의 절반밖에 못 채울 바에야 온라인 개봉으로 제작비라도 건지자는 것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할리우드 대형 제작사들이 스트리밍 사업 구축을 위해 고군분투하면서 동시에 향후 영화관 관람이 제한될 가능성에 적응해가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세계 최대 영화관 체인인 AMC엔터테인먼트홀딩스의 애덤 애런 최고경영자(CEO)는 3일 급하게 워너미디어 측과 만나 크리스마스 개봉용으로 ‘원더 우먼 1984’의 온·오프라인 동시 개방을 수락키로 계약했다고 밝혔다.
업계의 초점은 이런 추세가 코로나19 종식 후에도 계속되느냐다. 소비자들은 집에서 개봉 영화를 보는 데 익숙해지고, 스튜디오는 계속해서 스트리밍을 최우선 순위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워너브러더스 경영진은 이번 결정이 내년 개봉 영화에만 적용된다는 점을 강조했지만, 현 추세로 보면 장담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에 대한 결정은 앞으로 박스오피스 매출과 HBO맥스에 대한 구독이 좌우할 것으로 보인다. 워너브러더스의 내년 개봉작 중 일부는 제작에 1억5000만 달러(약 1634억 원) 이상의 비용이 들어갔다. 또 개봉 첫 주말에 관객들을 유인하려면 홍보에 수천만 달러가 더 들어가야 한다.
하이브리드 개봉은 영화관 업계에는 사형선고나 다름없다. 워너브러더스의 하이브리드 개봉 소식에 3일 AMC와 시네마트 주가는 15.97%, 21.95% 각각 폭락했다.
RBC의 마이클 캐럴 애널리스트는 “코로나19가 종식된 후 영화 관람은 다른 모습이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앤 사르노프 워너브러더스 CEO는 “우리는 창의적인 해결책을 요구하는 전례 없는 시대에 살고 있다”며 이번 결정을 “독특한 1년 계획(unique, one-year plan)”이라고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