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 정도는 5억 원에 산다"는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의 말이 무색한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그간 소외됐던 경기 고양시 아파트 매매시장이 크게 들썩이며 두달 새 집값이 2억 원 가까이 오르는 사례까지 등장해서다. 김 장관의 '5억 원' 발언이 일산신도시를 비롯한 고양시 아파트의 '저평가 매력'을 부각시키며 집값을 자극한 것 아니냐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일산신도시 백석동 '요진와이시티' 전용면적 103.41㎡형은 지난달 26일 12억9000만 원에 팔리며 신고가를 새로 썼다. 같은 단지 전용 103.82㎡형도 같은달 29일 12억9500만 원에 최고가 거래됐다. 모두 직전 거래 금액보다 1억2000만 원 가량 오른 금액으로 현재 호가(집주인이 부르는 가격)는 13억 원대다.
일산신도시 인근에 있는 '일산 센트럴 아이파크'도 최근 연일 신고가 경신 중이다. 이 단지 전용 59.97㎡형은 이달 들어서만 2차례 신고가(6억1300만 원) 거래됐다. 전용 84.97㎡형도 이달 초 7억9000만 원에 거래된 뒤 일주일만에 7억9500만 원에 팔리며 최고가 기록을 새로 섰다.
고양시 일산서구 대화동 '킨텍스 꿈에그린' 전용 84.50㎡형은 이달 5일 13억9000만 원에 팔렸는데 같은 면적의 이 아파트는 지난 10월만 하더라도 11억 원에 거래됐다. 두달 만에 2억 원이나 오른 것이다.
인근 H공인 관계자는 "지난 주말에는 코로나19 때문에 직접 찾아오는 사람들은 좀 줄었지만 코로나19가 심해지기 전만 해도 매수대기자가 줄을 섰다. 지금은 매입 문의 전화가 끊이질 않는다"고 전했다. 또다른 공인중개사는 "연일 오르는 집값에 집주인이 계약금을 포기하고 매물을 거둬들이는 경우도 더러 있다"고 말했다.
규제 '풍선효과'에 저평가 매력 부각
한국부동산원(옛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지난주 수도권 지역에서 주간 아파트 가격 상승폭이 가장 컸던 지역은 경기 고양시로 무려 0.78% 급등했다. 자치구별로는 일산서구 0.97%, 일산동구 0.68%, 덕양구 0.67% 순으로 올랐다. 같은 기간 전국 주간 아파트값이 0.27% 상승한 가운데 서울은 0.03%, 경기 전체는 0.27% 상승했다.
현지 부동산 중개업소들에서는 그간 저평가됐던 고양시 집값이 제대로 평가를 받기 시작한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때마침 한강 건너 마주 보고 있는 김포 한강신도시 지난 11월 20일 규제지역(조정대상지역)으로 묶이면서 투자 수요가 일산 쪽으로 몰려들었다. 이른바 ‘풍선효과’다.
일각에서는 고양시 집값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진 것이 김 장관 때문이란 분석도 내놓는다. 퇴임을 앞두고 있는 김 장관은 지난달 국회 예산결산위원회에 출석해 자신이 거주하는 아파트(고양시 일산서구 덕이동 ‘하이파크시티 일산 아이파크1단지)를 5억 원이면 살 수 있다고 말했다. 이후 각종 언론과 부동산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김 장관의 발언을 집중 조명했고, 실제 1기 신도시 중에서도 아파트 가격이 낮은 일산 집값에도 주목했다. KB부동산 리브온 자료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으로 분당신도시가 있는 성남시 분당구는 아파트 평균 매매값이 3.3㎡당 3840만 원, 일산동구는 1473만 원으로 격차가 2367만 원에 달했다.
일산 백석동 Y공인 관계자는 "일산은 1기 신도시 중에서도 최근 몇 년 새 집값이 가장 안 올랐던 곳"이라면서 "여건이 비슷한 김포 한강신도시보다도 집값 상승률이 더뎠는데, (김 장관 발언의) 의도가 어찌됐든 저평가된 일산을 비롯한 고양시 주택시장이 이제서야 제대로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