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가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 최종 판결을 또다시 연기할지 업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최종 결정이 세 차례나 연기되면서 그 배경을 둘러싸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나 경제에 미칠 영향 때문이라는 다양한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ITC가 내년 2월에도 판결을 섣불리 내릴 수 없을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코로나19의 백신 접종이 시작됐지만, 감염병 위기가 쉽사리 수그러들 것으로 보이지 않고, ‘공익’이라는 잣대로 경제에 미치는 파급 효과를 고려할 때 어느 한쪽의 손을 쉽게 들어줄 수 없을 것이란 전망이다.
ITC는 9일(현지시간) 이달 10일로 예정됐던 최종 판결일을 내년 2월 10일로 연기한다고 밝혔다. 앞서 10월 5일에서 26일로 미뤄지고, 또다시 이달 10일로 연기한 데 이어 세 번째다.
최종 판결일 연기를 두고 두 회사의 해석은 달랐다. LG에너지솔루션은 입장문을 내고 “올해 ITC 판결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영향 등으로 50건 이상 연기된 바 있어 같은 이유로 본다”고 풀이했고, SK이노베이션은 “위원회가 본 사안의 쟁점인 영업비밀 침해 여부와 미국 경제 영향 등을 매우 깊이 있게 살펴보고 있다”고 해석했다.
양사가 주장하고 있는 최종 판결의 배경을 볼 때 내년 2월로 잡힌 최종 판결이 예정대로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코로나19가 이번 결정이 미뤄진 이유라면, 코로나19 확산세가 수그러들지 관건인데, 백신 접종이 시작됐지만 두 달 안에 감염병 위기가 잡힐 확률은 높지 않다.
경제 영향이 이유라면 ITC는 이미 민감한 소송건이었던 삼성과 애플의 특허소송에서 최종 판결을 다섯 차례나 연기한 바 있고, 최장 30개월까지 법정공방을 펼친 사례도 있는 것으로 전해지는 만큼 소송건을 두 달 내 매듭지을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
ITC가 올해 조사 및 최종 판결을 하는 데 걸린 평균 기간은 15.3개월로, 가장 긴 시간이 걸린 사례는 28.1개월이다.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은 지난해 4월부터 영업비밀 침해 소송을 시작해 소송 기간은 현재 20개월가량이다.
ITC가 자국의 경제 영향을 고려해 최종 판결을 연기한 것이라면, 일각에선 ITC가 양사의 ‘합의 시간’을 벌어준 것이란 주장도 나오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 중 어느 업체의 손을 들어주든 공익에 부합될 수 있는 이 사건에서 한쪽에 유리한 최종 판결을 내린다면, 경제와 공익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기 때문에 양사의 합의가 ITC에는 최고의 시나리오라는 것이다.
ITC가 LG에너지솔루션에 유리한 최종 판결을 내릴 시 SK이노베이션의 항소와 바이든 행정부의 비토(Veto·거부권) 행사라는 부담을 안게 된다.
전기차 등 친환경차를 확대하려는 정책을 펼칠 바이든 행정부로선 대규모 배터리 투자를 단행한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 중 한 기업이라도 놓칠 수 없는 상황에서 ITC의 결정에 거부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크다.
또, 바이든 행정부에 정치적으로 중요한 조지아주(州)가 SK이노베이션 배터리 사업의 근거지라는 점도 비토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은 조지아주에 배터리 1·2공장을 동시에 건립 중으로, 조지아주에 창출되는 일자리는 2600개에 달할 전망이다.
2010년 이후 행정부가 비토를 행사한 경우가 단 한 건에 불과한 상황에서 바이든 행정부의 거부권 행사는 권위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어 ITC의 고민은 깊어지고 있다.
그렇다고 SK이노베이션에 ITC가 유리한 판결을 하기에도 LG에너지솔루션의 손을 들어준 예비판결이 잘못됐다고 인정하는 꼴이 돼버리는 것도 ITC에는 압박 요인 중 하나다.
업계 관계자는 “이례적으로 소송을 두 달 연기한 것에 대해 ITC의 부담감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며 “친환경차 확대라는 정책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바이든 정부도 트럼프 대통령만큼이나 비토를 실행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정치적인 상황과 경제적인 측면이 모두 복합적으로 ITC에는 부담이 되고 있다”고 전했다.
한편, 미국 조지아주, 테네시주의 일부 의원들은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에 서한을 보내 사실상 합의를 촉구했다.
버디 카터 조지아주 공화당 하원의원, 샌포드 비숍 조지아주 민주당 하원의원, 척 플라이쉬먼 테네시주 공화당 하원의원 등 3인은 “두 회사 모두 미국 전역에서 경제 성장과 지역 일자리 창출 등에 크게 기여했다”며 “ITC에서 한 회사가 부정적 판결을 받으면 미국 경제와 공익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들은 SK이노베이션의 조지아주 공장 투자, 폴크스바겐의 전기차 투자 등을 언급하며 “(SK에 불리한 판결은) 전기차를 사용할 미국 소비자뿐만 아니라 다양한 공급망에 있는 미국 근로자들에게 큰 피해를 줄 것”이라며 “미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양사 분쟁에 대해 ‘실행 가능하고 우호적이며 책임 있는’ 해결책을 찾기를 정중하게 촉구한다”라고 요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