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는 가도 트럼피즘은 남는다] ② ‘선택적 민주주의’ 조장한 ‘제왕적 OOO’

입력 2020-12-15 16:52 수정 2020-12-15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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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가 위험했던 것은 정부가 과도하게 커졌기 때문”
언론과 SNS도 독단적 주장으로 문제 키워

▲지난해 6월 27일(현지시간) 애플 아이패드에 담긴 트럼프 대통령의 트위터 계정. 뉴욕/AP뉴시스
▲지난해 6월 27일(현지시간) 애플 아이패드에 담긴 트럼프 대통령의 트위터 계정. 뉴욕/AP뉴시스
11월 3일 대선 결과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불복하자 미국 민주주의가 위협받고 있다는 주장이 힘을 받았다.

미국의 민주주의는 진짜 위기일까. 아니면 그동안 곪아온 문제들이 트럼프란 인물의 등장을 계기로 한꺼번에 분출된 것일까.

사실 이번 대선에서는 후보를 비롯해 정치인, 언론, 시민까지 그 어느 때보다 자신의 견해를 공개된 장소에서 마음껏 표현했다. 소셜미디어와 집회 현장에서의 목소리는 '투표'라는 통일된 수단으로 귀결됐고, 각 후보 지지자들은 ‘정권 교체’와 ‘정권 사수’를 위해 투표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그 결과 투표율은 66.8%로 1908년 이후 최고치를 경신했으며, 심지어 패자마저 7108만 표를 넘게 획득하며 사상 최고 득표를 기록했다. 당선자와 패자가 모두 7000만 표를 넘게 받은 것은 미 대선 역사상 처음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불복 행보 역시 표현이 다소 거칠었을 뿐, 법이 허락한 범위 내에서 이뤄졌다. ‘1인 1표의 보통선거’가 제대로 행사됐는지 각 주의 법원에 묻고 있는 행동을 막았다면, 그것이 오히려 비민주적인 조치였을 것이다.

문제는 제왕적 대통령제와 제왕적 소셜미디어, 제왕적 언론이다. 이들이 볼 수 있는 정보 중에 보고 싶은 정보만 편취하는 등 ‘선택적 민주주의’를 조장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

재커리 카라벨 칼럼니스트는 미국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에 기고한 ‘바이든이 제왕적 대통령 주의를 무너뜨리는 방법’을 통해 대통령에 집중된 권력의 위험성을 경고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이 위험했던 이유 중 하나는 행정부가 과도하게 성장한 탓”이라며 “대통령직은 갈수록 강력해져 유권자와 의회, 심지어 법원에 대해서도 의식을 하지 않게 됐다”고 꼬집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라는 전례 없는 팬데믹(전염병 대유행)은 제왕적 대통령의 권력을 더욱 공고히 만들어주고 있다. 래리 다이아몬드 스탠퍼드대 교수는 앞서 7월 동아시아연구원 세미나에 참석해 인도와 필리핀 등지에서 “코로나19를 도구로 삼은 권위주의가 야당과 언론을 탄압하고 있다”면서 “대통령 권한 강화에 따른 민주주의 퇴보 징후는 자유민주주의가 비교적 잘 정립된 한국에서도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언론과 소셜미디어가 이러한 분위기를 조장한 부분도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상원을 장악한 공화당과 트럼프 대통령의 지난 행동들을 100년 전 독일에 비유하면서 이 문제를 거론했다. 1918년 세계 1차 대전 당시 독일 보수주의자들은 독일 제국이 패전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한 채 이 원인을 독일군이 아닌 내부 배신으로 돌린, 이른바 '배후중상설(Dolchstosslegende)'을 탄생시켰다. NYT는 “이들은 신문과 엽서 등에 ‘전장 무패’라는 슬로건과 삽화를 삽입시키고 그들이 지지 않았다는 ‘신화’를 퍼뜨렸다”고 설명했다.

100년이 지난 지금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엽서 대신 소셜미디어가 자리 잡아 오히려 파급력은 더 향상됐다. 소셜미디어는 ‘민감하다’는 이유로 불과 몇 분 전 게시된 저작물을 비공개 처리하곤 했다. 혐오, 폭력 등을 조장하는 게시물은 신속 처리돼야 마땅하지만, 각자의 의견이 모이는 미국 대선에서 활발하게 작용했다는 점에서 일부 쓴소리를 듣기도 했다. 대선 당시 줄기차게 가려졌던 트럼프 대통령의 ‘선거 의혹’ 트윗은 바이든 당선인의 승리 선언 이후 현재 방치되다시피 하고 있다.

언론 역시 신문에 국한됐던 보도가 방송을 넘어 모바일 환경에 자리 잡고 파급력을 키운 지 오래다. 이런 상황에서 보수와 진보 진영 언론들은 각자의 논리만 주장하며 상대에 불리한 쪽으로 여론몰이를 일삼았다. 제왕적 대통령제가 제왕적 소셜미디어와 언론을 낳은 행태다.

다이아몬드 교수는 월스트리트저널(WSJ) 기고문에서 “민주주의는 전 세계적 위기에 직면해 있다”며 “문제는 단지 민주주의가 쇠퇴하고 있는 게 아니라 더 억압적이고 공격적으로 변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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