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성헌의 왁자지껄] '그때는 틀리고 지금은 맞다'는 낙하산 인사

입력 2020-12-2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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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투자업계를 출입하다보면 연말.연시에 익숙한 풍경이 하나 있다. 기관장이나 임원들의 인사가 있을 때마다 해당 조직의 노동조합에서 천막을 설치하고 농성에 들어가는 것이다. 올해 연말에도 어김없이 한국거래소 1층에는 노조에서 설치한 천막이 등장했다.

여러 가지 요구사항이 있지만 요점은 ‘낙하산 인사를 반대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시장에서 예상한대로 21일에 제7대 한국거래소 이사장으로 손병두 전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이 취임했다.

정지원 전 이사장이 갑작스럽게 손해보험협회장으로 자리를 옮긴 뒤 공석이던 거래소 이사장 자리는 여러 인물들이 하마평에 올랐지만 예상을 크게 벗어나지 않고 손 이사장이 일사천리로 선임됐다.

행정고시 33회로 공직생활을 시작한 손 이사장은 기획재정부 외화자금과장, 금융위 금융서비스국 국장, 금융위 금융정책국장, 증권선물위원회 위원장, 금융위원회 부위원장 등 요직을 두루 거쳤다. 기재부, 금융위 등을 거친 금융정책 전문가인만큼 어느 때보다 시장에 정통하다는 평가와 기대를 동시에 받고 있다.

그럼에도 손 이사장은 ‘낙하산 인사’라는 꼬리표에서 자유롭긴 힘들 것으로 보인다. 사실 거래소는 낙하산 인사가 어울리지 않는 구조다. 이들 조직은 형식상 공모로 후보자를 받고 인사추천위원회를 갖추고 있지만 말 그대로 형식에 불과할 뿐이다.

거래소의 주주는 증권ㆍ선물회사다. 한때 공공기관이었지만 지난 2015년 공공기관 지정에서 해제됐다. 정부 지분이 전혀없는 민영회사가 낙하산 인사를 받아들일 이유가 없다. 그럼에도 이번 이사장 선임 역시 증권사와 증권 유관기관들은 별다른 목소리를 내지 못한 채 당국이 점 찍은 인사를 받아들이게 됐다.

거래소 설립 이후 7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내부승진이 수장에 오른 경우는 단 3번에 불과하다. 때문에 내부에서는 “이왕 낙하산이 올거라면 힘있는 사람이 왔으면 좋겠다”는 자조적인 말이 나올 정도다.

야당 일때는 비판의 목소리를 내던 정당이나 정부도 막상 정권을 잡게 되면 낙하산 인사를 적극 활용할 뿐이다. 특히 적폐청산을 기치로 내걸고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할 것’이라던 현 정부의 모토를 복기하면 여전히 자행되는 낙하산 인사는 납득하기 힘들다.

실제 이번 정부가 주창한 ‘한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나라’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는 어느 때보다 컸다. 그 동안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졌던 낙하산 인사를 줄이는 것 역시 현 정부가 주창하는 ‘적폐청산’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잊을만 하면 크게 불거지는 취업비리와 낙하산 인사가 뭐가 다른지 묻는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금융투자업계는 과거 정부의 외압을 이기고 협회장 선출권을 찾아온 역사가 있다. 다른 기관들과 달리 금융투자협회는 지난 해 거래세 인하 등 성과를 내는 것을 보면 시사하는 바가 크다.

금융당국과의 협업이 필수적이고 자본시장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는 거래소 이사장 자리에 소위 ‘힘 있는’ 인물이 오길 원하는 내부의 바람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신임 이사장의 능력을 폄하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어느 때보다 변동성이 커진 증시에 대응하고 글로벌 트렌드에 맞는 거래소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구태 의연한 낙하산 인사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그리고 이왕 이사장 자리에 오른 손 이사장은 혼신의 힘을 다해 임기 동안 ‘한번도 경험해 본 적 없는 자본시장’을 만들어 줄 것을 당부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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