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형의 통계로 경제 읽기] 대형마트 규제 이후, 유통업 통계의 이면

입력 2020-12-23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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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 박사, 전 통계개발원장

코로나19 사태가 예상외로 장기화함에 따라 영세사업자들의 고통이 커지고 있다. 영세사업자의 어려움과 맞물려 최근 국회에서는 대형소매점에 대한 규제를 더욱 강화하기 위한 법률안들이 20건 가까이 준비되고 있는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이들 법안의 취지는 동네슈퍼 등 영세사업자들은 경제적 약자로서 대기업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으므로, 대형마트의 입점과 영업활동을 제한함으로써 영세사업자들을 보호하겠다는 것이다.

통계청에서 작성하고 있는 ‘전국사업체조사’ 통계에 따르면 2008년 424개이던 대형마트는 10년이 지난 2018년 491개로 16% 정도 늘어났다. 대신 영세 종합소매업(편의점+동네슈퍼 등)은 2008년 10만 개 정도였던 것이 2018년에는 9만5000개로 근소하게 줄어들었다. 이와 같이 대형마트와 영세소매점 수는 큰 변화를 보이지 않는 가운데, 중형 종합소매업이라 할 수 있는 슈퍼마켓이 8060개에서 1만2109개로 50% 정도 늘어났다.

대형마트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고, 기업형 슈퍼마켓(SSM)에 대한 규제를 새로 도입한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은 2010년 이루어졌다. 이후 대형마트 숫자의 증가 속도가 크게 낮아진 것은 규제 강화의 효과인가? 그렇게 보기 어려운 것 같다. 유통 분야의 학자들이나 업계 관계자 사이에서는 전국적으로 이미 대형마트의 숫자가 포화상태에 이르렀기 때문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특히 당시 법 개정의 주된 타깃은 SSM이었다. SSM은 산업분류상 대개 슈퍼마켓에 속하게 되는데, 이에 대한 규제 강화에도 불구하고 슈퍼마켓은 지속적으로 늘어났다.

소비자의 욕구나 소비패턴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다. 소비패턴의 변화는 인구학적 특성, 소득수준, 생활방식, 기호나 취향의 변화 등 다양한 요인에 영향을 받는다. 과거 가파른 성장을 보였던 대형마트는 가구원 수의 감소, 1인 가구 수의 증가, 전자상거래의 급속한 확대 등의 여건 변화에 따라 그 성장이 둔화되고 있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우리나라와 비슷한 유통환경인 일본의 경우 대형마트의 퇴조 현상은 이미 20여 년 전부터 일어난 일이다. 유통업은 다른 말로는 상업(商業)이라고도 표현한다. 그만큼 유통업은 경제여건의 변화에 민감하고, 사람들의 경제적 동기에 의해 가장 민감하게 영향받는 업종이다.

이러한 특징을 가진 유통업에 규제를 도입해봤자 우리 사회가 완전한 통제경제가 아닌 이상 여러 우회방법을 통해 규제는 무력화될 가능성이 크다. 대형 점포의 설립을 강력히 규제하면, 설립 신청이 급속히 늘어나 허가율은 낮아지더라도 점포 수 증가는 별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1980년대 강력한 대형 소매점 설립 규제를 도입한 프랑스의 사례다. SSM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면 ‘상품공급점’이라는 형태의 유사 SSM이 늘어나고, 또 최근에 보듯이 식자재마트라는 업태가 등장하게 된다. 현재 우리가 직접 경험하고 있는 일들이다.

대형소매점 규제 제도의 강화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영세소매업은 대형점과의 경쟁에서 이길 수 없으며, 대형점을 규제하지 않을 경우 영세소매점은 소멸될 위험이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 전국에는 10만 개 가까운 영세소매점이 영업을 하고 있으며, 이들은 정부의 보호에 의해서가 아니라 스스로의 경쟁력으로 생존하고 있다. 동네슈퍼나 편의점 등 영세소매점도 소비자와의 지리적 근접성과 거래의 편리함이라는 대형마트에는 없는 경쟁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선진국 가운데 영세사업자 보호를 위해 대형소매점 규제 제도를 도입하고 있는 나라는 프랑스를 제외하고는 거의 없다. 그러한 나라에서도 거리 곳곳에 수많은 영세소매점들이 산재해 있으며, 대형마트와 공존하고 있다.

정부 규제를 통한 영세사업자의 보호는 한계가 있으며, 그것이 지속되기도 어렵다. 대기업이든 영세사업자이든 사업자들은 보호의 대상이 아니라, 수요 변화 등 시장환경 변화와 소비자의 욕구에 끊임없이 적응함으로써 스스로 생존·발전해나가는 플레이어의 하나이다. 정부는 그러한 환경을 조성한다는 시각에서 유통산업 정책을 수립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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