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년 만에 '기본급 동결'로 교섭 끝낸 車 업계, '고용 안정'에 집중했다

입력 2020-12-27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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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의 기본급 인상 대신 전기차 시대 고용 유지 약속…구체적 실행 여부가 관건

▲4월 17일 평택공장에서 열린 임단협 조인식에서 예병태 쌍용자동차 대표이사(오른쪽)와 정일권 노동조합 위원장이 합의안에 서명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쌍용차)
▲4월 17일 평택공장에서 열린 임단협 조인식에서 예병태 쌍용자동차 대표이사(오른쪽)와 정일권 노동조합 위원장이 합의안에 서명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쌍용차)

르노삼성자동차를 제외한 완성차 4사(현대ㆍ기아ㆍ한국지엠ㆍ쌍용)가 올해 임금 및 단체협약 교섭을 마무리했다. 4사의 합의안은 기본급을 동결했고 ‘고용 안정’에 관한 약속을 받아냈다는 공통점이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라는 초유의 상황을 극복해야 한다는 데 노사 모두가 공감했고, 전동화로의 산업 패러다임 전환에 대응해야 한다는 노조의 위기감이 반영된 결과로 풀이된다.

27일 자동차 업계에 따르면 4사가 모두 기본급 동결에 합의한 건 2009년 이후 11년 만의 일이다. 기본급 인상 대신 노사는 고용과 투자에 관한 내용을 합의안에 넣는 데 집중했다.

가장 먼저 교섭을 끝낸 건 쌍용차다. 쌍용차 노사는 4월 임금 동결에 합의하며 11년 연속 분규 없이 교섭을 마무리했다. 지난해 노사는 기본급 4만2000원 인상, 장려금 100만 원 지급 등에 합의했지만, 올해는 일체의 임금 인상 없이 경영쇄신책 시행에 힘쓰기로 했다.

쌍용차 노사는 지난해 9월부터 복지 축소와 상여금 반납 등의 내용을 담은 쇄신책을 이어오고 있다. 노사가 희생해 전환기를 맞은 자동차산업 변화에 대비하고 경영 정상화와 고용안정을 이뤄내겠다는 의지에서다.

쌍용차 노조는 최근 회사가 기업회생(법정관리)을 신청한 것에 유감을 표하면서도 총 고용이 보장된다면 매각에 반대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전하기도 헀다.

▲현대자동차 노사가 9월 28일 오후 울산공장 본관 동행룸에서 2020년 임금협상 타결 조인식을 열었다. 하언태(오른쪽) 사장과 이상수 노조지부장이 악수를 하고 있다.  (사진제공=현대차)
▲현대자동차 노사가 9월 28일 오후 울산공장 본관 동행룸에서 2020년 임금협상 타결 조인식을 열었다. 하언태(오른쪽) 사장과 이상수 노조지부장이 악수를 하고 있다. (사진제공=현대차)

전국금속노조 산하에 있는 현대차, 기아차, 한국지엠 노조는 7월에 공동으로 ‘기본급 12만 원 인상’을 포함한 요구안을 확정하며 교섭을 시작했다. 교섭을 시작할 때만 해도 기본급 인상과 영업이익의 30% 남짓한 성과급을 반드시 쟁취하겠다는 입장이었지만, 이내 현실적인 선택을 내렸다.

맏형 격인 현대차 노조가 가장 먼저 교섭 시작 47일 만에 기본급 동결과 성과급 150% 등을 포함한 합의안을 끌어냈다.

중요한 건 노사가 임금 합의와는 별도로 ‘노사 공동발전 및 노사관계 변화를 위한 사회적 선언’을 채택했다는 점이다. 선언문에는 자동차 산업의 변화에 대응해야 한다는 노사 모두의 고민이 드러난다.

대표적으로, 노사는 국내공장의 생산 물량이 174만대 이상 유지될 수 있도록 노력하기로 했다. 전기차 생산이 늘어 내연기관 생산인력의 수요가 줄어도 재직 중인 직원을 인위적으로 감축하지 않는 데에 합의한 것이다.

이를 위해 직무 전환 교육도 시행하기로 했다. 노사는 각 부문의 ‘고용전환 지도’를 작성해 전기차 생산으로 고용 감소 위험이 큰 부문부터 단계적으로 직무 전환 교육을 시행할 예정이다. 그간 노조가 직무 전환 자체에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 점을 고려하면 주목할만한 결정이다.

▲한국지엠 노사는 12월 21일 부평 본사에서 ’2020년 임단협 조인식’을 개최하고 올해 노사교섭을 최종 마무리 지었다. 카허 카젬 한국지엠 사장과 김성갑 금속노조 한국지엠 지부장이 노사교섭 마무리를 축하하며 악수 하고 있다.  (사진제공=한국지엠)
▲한국지엠 노사는 12월 21일 부평 본사에서 ’2020년 임단협 조인식’을 개최하고 올해 노사교섭을 최종 마무리 지었다. 카허 카젬 한국지엠 사장과 김성갑 금속노조 한국지엠 지부장이 노사교섭 마무리를 축하하며 악수 하고 있다. (사진제공=한국지엠)

한국지엠과 기아차는 한때 교섭이 결렬돼 부분파업을 벌이는 등 진통을 겪었지만, 연내에 합의안을 도출했다. 한국지엠은 임금 동결과 성과급 400만 원을 수용하는 대신, 생산과 고용 안정 관련 내용을 담은 미래발전전망을 사 측에서 받아냈다.

노조는 교섭 내내 2022년 이후 부평 2공장의 명확한 생산 계획을 제시하라고 사 측에 요구했다. 물량 배정이 이뤄지지 않으며 군산공장과 같은 폐쇄 사태가 재현되진 않을지 우려해서다. 이 공장은 현재 생산 중인 트랙스와 말리부의 후속 모델이 결정되지 않은 상태다.

이에 사 측은 잠정 합의안에 부평 2공장 활성화를 위해 현재 생산하는 차종의 생산일정을 최대한 연장한다는 내용을 넣었다. 또한, 공장 소속 조합원의 고용안정을 위한 대책을 수립하기 위해 미래발전위원회를 매월 열기로 했다.

▲기아차 노사가 교섭을 진행하고 있다.  (출처=금속노조 기아차지부)
▲기아차 노사가 교섭을 진행하고 있다. (출처=금속노조 기아차지부)

기아차는 아직 조합원의 최종 동의 절차가 남았지만, 기본급 동결과 성과금 150%, 격려금 120만 원 등을 포함하는 합의안을 마련했다. 기아차도 현대차와 유사하게 ‘미래변화 대응 및 고용안정을 위한 합의’를 별도로 마련해 친환경차 생산 계획과 고용안정에 관한 방안을 논의했다.

이 합의에는 △전동화에 따른 고용안정 방안 마련 △전기차 중심 생산체계 전환 추진 △전기차 11개 차종 개발 투자 △미래차 투자 확대 등의 내용이 담겼다.

결국, 완성차 업계 노조가 코로나19가 확산한 상황에 당장의 기본급 인상보다는 실질임금 향상과 고용 안정에 관한 약속을 받아내며 실리를 택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관건은 구체화다. 합의안에 들어간 문구는 선언적인 의미가 크다. 앞으로 이를 구체화해 고용 유지를 위한 로드맵을 짜고, 이 과정에 노사가 뜻을 모아야 전동화로의 산업 변화에 대응할 수 있다.

노조 관계자는 "올해 교섭은 고용불안 해소에 중점을 뒀다"라며 "노사 모두가 미래차로의 산업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결단이 필요하다고 공감한 만큼, 내년부터 실무협의 과정을 통해 구체적인 논의를 이어갈 것"이라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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