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디자인경영 시대, K디자인의 과제

입력 2020-12-28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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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환 스터닝 대표

▲김승환 스터닝 대표
▲김승환 스터닝 대표
‘좋은 디자인이 좋은 비즈니스다.(Good design is good business)’

IBM의 초창기 CEO인 토마스 존 왓슨 주니어가 1973년 미국 펜실베니아 대학교 연설에서 남긴 말이다. 다섯 단어로 된 간결한 문구지만, 비즈니스에서 디자인의 중요성을 이보다 더 집약적으로 제시할 수 있을까. 그의 말처럼 디자인은 때로는 기업과 브랜드를 살리기도, 또 나락으로 떨어뜨리기도 하는 절대적인 힘을 행사한다. 이진렬 교수의 저서 ‘디자인 컨설팅’에 따르면, 디자인경영의 수준이 높아질수록 기업의 경영 성과 또한 높아진다. 디자인경영이 기업 성과를 유도한다는 의미이다.

국내에서 또다시 디자인 경영이 화두가 되고 있다.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은 이건희 회장 별세 후 첫 경영행보로 미래 디자인 전략회의를 선택했다. 직접 전사 통합 디자인 전략회의를 주관하며 “디자인에 혼을 담아내고 다시 한번 디자인 혁명을 이루자”고 거듭 강조했다. 1996년 삼성전자가 ‘디자인 혁명의 해’를 선언해 기업 전반에서 디자인 경영을 도입한 이후 이를 한 차원 강화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라 할 수 있다. LG전자 또한 얼마 전 단행한 조직개편을 통해 선행디자인연구소를 재편해 CEO 직속으로 CX랩(Lab)을 신설했다. 고객 경험에 기반해 디자인 역량을 강화하고, 차별화된 고객 가치를 제공하는 제품을 만들어내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기업의 디자인 역량 강화 움직임은 비단 국내 대기업만의 일이 아니다. 커피와 차 한 잔을 위해 카페를 찾을 때도, 맛난 한 끼 식사를 위해 맛집을 찾을 때도 ‘디자인’이 우리에게 더 중요한 선택 기준이 되고 있다. 기왕이면 더 아름답고 보기 좋은 제품과 장소에 사람들의 지갑이 열리고 발길이 간다. 사람들이 일상에서 내리는 모든 선택의 기준이 디자인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시대가 오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디자인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높아지면서 규모와 업종을 불문하고 기업의 디자인에 대한 관심 또한 늘고 있다. 필자가 2011년 국내에 첫 도입한 디자인 콘테스트 플랫폼 ‘라우드소싱’의 경우 초기에는 연간 200~300건의 디자인 콘테스트가 진행되었지만, 현재는 6000건에 가까운 콘테스트가 열리고 있을 정도다. 기업의 디자인 의뢰 또한 로고, 패키지, 캐릭터 등 다양한 디자인 영역을 망라하고 있다. 콘테스트 서비스 이용 고객 또한 대기업은 물론 중소기업과 스타트업 기업, 소상공인 기업, 지자체 등 다양한 범주를 아우른다. 전문적인 디자인에 대한 니즈는 있으나 여건상 내부 디자이너를 채용할 수 없어 라우드소싱을 이용하는 고객도 있지만, 내부 디자이너가 있는 경우에도 새로운 영감과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라우드소싱에서 콘테스트를 개최하는 경우도 있다.

매년 2만2000여 명의 신진 디자이너가 탄생하는 대한민국은 전 세계 5위 안에 들 정도로 디자인 탤런트 인프라 면에서 결코 작은 규모가 아니다. iF디자인어워드 등 글로벌 디자인 시상에서 한국인 디자이너의 수상작품을 보는 것도 이제는 낯설지 않다. 하지만 이런 한국 디자이너의 위상과는 별개로 기업의 디자인 활용도는 하위권에 맴돌고 있다. 대학을 갓 마친 신진 디자이너와 프리랜서 디자이너들이 활동할 수 있는 곳은 그리 많지 않다. 이들이 꼭 필요한 곳에서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정부는 물론 기업들이 함께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코로나19로 인한 뉴노멀 시대, 이로 인한 4차 산업혁명의 가속화로 모든 산업이 기술과 지식을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다. 이러한 트렌드를 이끄는 핵심동력으로 ‘소프트파워’가 빠지지 않는다. 소프트파워는 기발한 상상력과 창의력을 제품이나 서비스에 적용,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하는데, 이를 가장 잘 구현할 수 있는 방법이 다름 아닌 디자인이다. 디자인은 사용자의 니즈에 공감하고 편의성을 배려하는 방식으로 감성적이면서도 실용적인 가치를 전달하는 매개체가 된다. 이 때문에 디자인 혁신을 통해 상품과 경험의 차별화와 고급화는 물론 기술과 인간, 산업을 신선한 방법으로 연결해 새로운 시장을 개척할 수 있다. 바야흐로 좋은 디자인이 좋은 비즈니스를 넘어 국가의 경쟁력을 좌우하는 시대가 왔다. 신흥 디자인 강국인 한국이 앞으로 더 많은 영역에서 기술을 넘어 디자인에서도 리더십을 확장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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