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도의 세상 이야기] 7년 만의 전기요금 개편

입력 2020-12-29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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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객원교수, 에너지밸리포럼 대표

지난 17일 새해부터 시행할 전기요금 개편안이 발표되었다. 이번 개편을 분석한 기사나 논평을 보면 기대와 함께 우려 또한 만만치 않아 보인다. 오랫동안 에너지와 인연이 있었던 필자의 입장에서 새로운 제도를 시행할 때마다 따라오는 진통들도 함께 생각났다.

이번 전기요금 개편안 발표와 보도 및 반응을 보며 특히 두 가지에 놀랐다. 첫째, 무려 7년 전에 전기요금이 조정된 이후 한 번도 큰 변화가 없었다는 사실이다. 그동안 국제원유가가 급락하는 등 에너지 시장이 급변하고 전 세계가 기후변화 대응에 몸살을 앓고 있는데도 우리나라 전기요금 수준과 가격결정 체계가 그대로였다는 것이다. 둘째, 전기요금이 생산원가에 따라 변하는 것이 합리적일 텐데 오히려 탈원전 등 부정적 의미를 부여한 비판이 많이 부각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식시장은 한전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기대에 의미를 두고 있는 것 같다. 최근 지나치게 경제외적 영향을 많이 받아온 에너지 분야의 정책 운영이 합리성에 바탕을 두기로 한 것으로 보며, 앞으로 전기요금 변동 때마다 제기될 논란을 극복하고 잘 정착되기를 기대한다.

이런 관점에서 전기요금 개편이 지속적으로 요금 합리화를 주장해왔던 한전의 수익 보전을 위한 임시 처방이라고만 보이지는 않는다. 이번 요금체계 개편은 95% 이상을 수입에 의존하는 우리 에너지 상황을 고려하여 국내요금 변동을 국제 시황과 좀 더 조화시키고,에너지 전환이란 큰 틀에서 발생하는 사회적 비용을 정상화하며, 한전의 경영 합리화를 기하는 취지로, 장기적인 관점에서 우리 전력산업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고 탄소중립 국가로의 이행을 위한 첫걸음으로 이해된다.

우리나라 에너지 산업은 그동안 에너지의 안정공급이나 환경보호 차원에서 다른 산업에 비해 과도할 정도로 많은 정부의 규제를 받아왔다. 요금도 시장기능에 의존하기보다 독과점 폐해의 방지나 물가안정 등 민생 차원에서 강력한 통제를 받아왔다. 특히 최근 전기요금이 조정될 때마다 정치권의 이해관계에 너무 좌우되지 않느냐는 비판까지 있었다.

그런데 우리 에너지 가격은 국제 에너지시장이 안정되면서 원가연동제를 거쳐 자유화의 수순을 통상 밟아왔다. 휘발유, 경유 같은 석유제품 가격이 1990년대 자유화되고 서민연료라는 액화석유가스(LPG)가 뒤를 이었으며, 몇 년 전부터 천연가스도 원가연동제가 시행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전기요금만 사실상 고정된 통제요금으로 관리되다 보니 가장 고급 에너지인 전기가 상대적으로 싸져서 과소비 등 자원의 효율적 배분이 이뤄지지 않았다.

원가연동제가 시행되면서 단기적으로는 최근의 유가하락 추세가 반영된 전기요금 인하가 예상돼 현재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국민들에게 작은 위안이 될 수도 있다. 그런데 최근 코로나19 백신의 개발 등으로 세계경제가 회복될 것이란 기대와 함께 국제유가가 상승하고 있어, 얼마 지나면 전기요금이 다시 오를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그러나 중장기적으로 전기요금의 가격기능 강화를 통한 합리적인 전기 소비가 유도될 것이며 국가 전체 에너지 사용 효율이 향상되어 온실가스 감축에도 기여할 것이다. 과거 정부가 국내 석유가격을 통제하던 시절 국제원유가격이 급등하는 상황에서 국내 가격은 낮은 수준으로 유지한 결과, 소비를 줄여야 할 때 줄이지 않아 사후에 막대한 재정적 부담만 지게 돼 문제가 더 커졌던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또한, 기후환경요금이라는 항목이 분리되면서 깨끗한 전기 생산을 위해 발생된 비용 관련 정보를 투명하게 알 수 있게 됐다. 이러한 변화는 기후선진국이라는 독일 같은 나라에서 일찍부터 시작하여 기후대응에 대한 국민의 이해와 참여를 이끌어냈던 사례를 참고한 것으로 이해된다. 아울러 사업자 입장에서도 신재생에너지 확산과 온실가스 감축 정책의 준수에 소요된 비용을 합리적으로 보상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다. 따라서 전력사업자들이 저탄소 성장을 위해 안정적으로 투자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었고, 탄소중립 달성을 위한 에너지 전환 또한 사회적 이해를 바탕으로 추진할 수 있게 되었다.

전기요금 개편과 함께 한전에 대한 경영혁신도 요구된다. 우리나라 에너지 산업을 선도해왔던 한전은 더 투명하고 전력산업 환경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하는 효율적인 기업으로 거듭나야 한다. 전력산업의 효율화를 위해 추진되었던 과제가 2000년대 초 한전의 구조개편이 중단된 이후 이해관계에 발목 잡혀 지지부진하다. 그 사이 세계는 정보기술(IT) 발달과 4차 산업혁명 또는 기후변화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전력산업의 구조적 변화를 거듭해왔다. 우리도 이제 이러한 변화 속에서 전력산업의 미래 모습을 제대로 고민할 시점에 왔다.

국가 전체가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이때에 전기요금 개편이 이뤄졌다. 이번 개편이 2013년 11월 이후 긴 시간의 고민을 담아 이루어진 만큼, 요금은 보다 경제논리에 바탕해 조정되면서 지속가능한 전력산업의 새로운 미래를 여는 중요한 한 수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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