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년생 김유진이 사는 법] “예식비 아껴 주식 투자…‘결혼의 공식’ 거부합니다”

입력 2021-01-04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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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 사회가 정한 관례일 뿐”
혼인신고만 하고 백년가약 맺어
살림살이 줄이고 예물·예단 생략
절약 비용, 연금저축 등 미래 준비

“결혼식 비용으로 주식 투자했어요.”

이수정(가명, 28) 씨는 지난해 9월 28일 결혼했다. 결혼식은 올리지 않았고 혼인신고만 했다. 평범하지 않은(?) 결혼을 준비하며 수없이 들었던 질문은 “결혼식 왜 안 해?”, “혼전 임신한 거야?”라는 얘기. 수정 씨는 얼마나 숱하게 비슷한 질문을 들었고 또 대답했는지, 인터뷰 내내 결혼식을 올리지 않기로 한 이유와 주변의 반응 등 일련의 이야기를 일목요연하게 술술 답했다.

수정 씨는 친구들 사이에서 가장 먼저 결혼하고 싶은 사람이었다. 그가 생각한 결혼 속에 ‘결혼식’은 너무 당연한 이야기였고, 결혼식에 대한 환상도 누구보다 많았다. 생각이 바뀌기 시작한 건 20대 후반, 그에게 결혼은 현실로 다가왔다. 수정 씨는 “지인들 결혼식을 갈 때마다 식장에서 정말 행복해하는 신부를 본 적이 없다. 지치고 힘들고 이 시간이 빨리 끝나길 바라는 거 같고, 꿈같은 일이 아닌 의무적이고 사회가 정한 관례처럼 느껴졌다”고 토로했다.

수정 씨의 마음은 확고했지만, 남편에게 그리고 양가 부모에게 또 지인들에게 결혼식을 안 하겠다는 말을 꺼내는 건 어려운 문제였다. 수정 씨는 “내가 결혼식을 안 하고 싶다고 해도 상대방이 원하면 그걸 강요할 순 없다고 생각했다. 처음엔 남편하고 결혼식을 하는 쪽으로 얘기를 했는데 조심스럽게 ‘사실 난 결혼식 안 하고 싶어’라고 말했더니 남편도 마침 비슷한 이유로 하고 싶지 않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두 사람의 뜻이 모이니 양가 부모를 설득하는 건 순조로웠다. 마침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결혼식이 취소되고 연기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보니 결혼식을 하지 말아야 하는 강력한 이유가 생겼다.

그렇게 결혼식 비용을 아낀 수정 씨는 그 돈을 미래에 투자했다. 지방에서 공무원으로 일하는 수정 씨 부부는 보증금 1000만 원의 작은 아파트를 월세로 구했고, 웨딩 촬영, 가전과 가구, 반지 구매 비용에 총 600만 원을 썼다. 결혼식 안 하고, 예물과 예단 등 여러 절차를 생략하니 1600만 원으로 결혼한 셈이다. 그는 “결혼식 비용은 사람마다 차이가 크다. 나이가 어렸을 때는 예물로 명품을 받고, 가전이나 가구도 최고 비싼 거로 장만하는 친구들이 부러웠고 나도 그렇게 하고 싶었다”며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거기에 돈을 쓰는 게 부질없다고 느껴졌다. 브랜드 없는 가구를 골랐고, 가전은 구형 모델을 인터넷으로 구매해 비용을 아꼈다. 결혼에 드는 비용을 아껴 연금 저축을 넣었고, 주식 투자도 했다”고 얘기했다.

“결혼 주인공은 부모 아닌 당사자”
남자 ‘집’·여자 ‘혼수’ 관습 탈피
경제권 따로 생활비 반반씩 부담
딩크·맞벌이 등 부부 주체적 결정

“결혼의 주인공은 부모 아냐”… ‘반반 결혼’ 하는 이유

90년대생 결혼 문법이 달라지고 있다. 결혼 과정에서 반영되는 양가 부모의 이해관계, 그 균형을 맞추는 피곤한 저울질을 과감히 거부한다. 결혼의 최대 의사결정권자는 다른 누구도 아닌, 신랑과 신부 두 사람이다. 오직 두 사람의 의견을 반영한 주체적인 결혼을 하고, 그들의 방식대로 살아간다.

올해로 결혼생활 4년 차인 정송이(28) 씨는 ‘반반 결혼’을 했다. 남자가 집을 해오고, 여자가 혼수를 하는 기성세대의 관습을 가뿐히 거슬렀다. 사회 초년생 때 결혼을 결심한 송이 씨 부부는 당시 수중에 있는 돈이 각각 1000만 원 남짓이었다. 두 사람은 양가에서 비슷한 규모의 경제적 지원을 받았고, 부족한 돈은 대출을 받아 결혼생활을 시작했다. 송이 씨는 “시댁에서 더 도움을 받을 수 있었지만, 내가 원하지 않았다. 돈을 받으면 그만큼 시댁에 더 잘해야 하고 조금이라도 희생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 것 같아서 애초에 바라지 않았고, 반반 결혼을 했다”고 밝혔다.

송이 씨는 결혼 후 남편과 경제권을 합치지 않았다. 결혼생활 역시 반반이다. 남편은 대출 이자와 자동차 보험료를 부담하고, 송이 씨는 생활비를 내는데 그 비율이 얼추 비슷하다. 명절이나 양가 부모의 생일에도 각자 부모에게 줄 선물은 각자 마련한다. 이른바 셀프 효도다. 송이 씨는 경제권을 분리해 생활하고 각자 효도하는 방식이 부부간 싸움을 줄이고 행복한 결혼생활을 이어가는 노하우라고 자신 있게 말했다.

그는 “부부가 살다 보면 ‘돈’ 가지고 싸울 일이 정말 많은데 우리는 애초에 그런 걸 없앴다. 각자 번 돈으로 사고 싶은 걸 사고, 또 각자 부모를 챙기니까 서로 왈가왈부할 게 없다. 남편이 게임기를 산다고 해서 내가 잔소리할 이유가 없고, 또 내가 필요한 걸 산다고 해서 남편이 뭐라고 할 권리가 없다. 양가를 챙기는 것도 마찬가지다. 우리 집은 시골이니까 과일 선물이 필요 없는데 시댁은 과일 선물을 좋아한다. 그러면 아무리 금액을 똑같이 맞추려고 해도 차이가 나기 마련인데 그럴 때 감정이 상할 수 있다”며 “우린 각자 번 돈으로 상대방 눈치 볼 필요 없이 집에 도움을 주거나 선물을 챙기니까 돈 가지고 싸울 일이 아예 없다”고 털어놨다.

반씩 부담해 시작한 결혼생활인 만큼 송이 씨 부부는 며느리나 사위로서 시가와 처가에 누가 더 특별히 의무를 더하고 덜하고, 어쩌고저쩌고 따질 것이 없다. 그럴 이유도 없다. 송이 씨는 “아무래도 양가에서 지원을 비슷하게 해줬기 때문에 내가 특별히 시댁에 더 잘해야겠다, 또 남편이 처가를 더 챙겨야겠다, 이런 마음이 서로 없다. 우리는 각자 본가에 가고 싶으면 알아서 간다. 명절이 아니고서는 굳이 같이 찾아뵙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마음이 불편하진 않다”며 “남편도 비슷한 마음이겠지만, 나는 처음부터 어른들한테 예쁨 받아야지, 이런 생각 없이 적당히 어느 선에서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이제 어른들도 그 모습에 익숙해진 거 같다”고 말했다.

‘결혼 이래야 한다’ 기준 있나?… 현실이 야속해

‘결혼은 이래야 한다’, ‘남자(사위)는 이래야 옳고, 여자(며느리)는 저래야 옳다’, ‘결혼생활은 이래야 맞다’. 결혼을 둘러싼, 마땅하고 틀림없는 기준이 따로 있을까. 결혼의 주인공인 신랑과 신부, 두 사람이 뜻을 모아 선택한 것이라면 그것이 무엇이든 마땅하고 틀림없는 기준이 돼야만 한다. 애석하게도 두 사람의 뜻과 선택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상황은 드물고, 제멋대로 해석을 붙이거나 말을 보태는 것이 좀 더 익숙한 게 현실이다.

결혼식을 올리지 않은 수정 씨가 마주한 현실은 야속했다. ‘결혼식을 안 한다는 것’, 결혼의 주인공인 수정 씨와 남편이 결정했고 또 양가 부모까지 허락했지만, 결혼이 곧 결혼식으로 인식되는 현실을 거부하기란 쉽지 않았다. 주변에서 조언인 듯 훈수인 듯 알 수 없는 피곤한 말들이 쏟아졌다. 수정 씨는 “친구들이나 회사 동기들은 요즘 트렌드를 잘 따라가고 있다며 ‘신기하다’, ‘부럽다’ 이런 반응이 많았다. 특히 남자 동기들은 본인들도 결혼식을 안 하고 싶은데 신부가 원하니까 할 수밖에 없다는 사람이 꽤 있어서 놀랐다”면서도 “결혼한 선배들이나 부모뻘 되는 어른들의 말은 달랐다. ‘그래도 코로나가 잠잠해지면 결혼식은 해야 한다’, ‘부모를 위해서라도 결혼식은 필요하다’, ‘나중에 후회하면 어쩌려고 그러느냐’, ‘작게라도 해라’, ‘결혼식은 안 하더라도 청첩장은 돌려라’ 등 이런 얘기를 정말 많이 하더라. 정형화한 결혼의 순서가 있고, 그 안에 결혼식은 필수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이렇게 많구나, 또 거기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람도 상당하다는 걸 이번에 처음 알게 됐다”고 밝혔다.

결국 수정 씨는 사람들의 반응과 시선이 불편해 ‘가족식’을 올리겠다고 주변에 알렸다. 코로나19 여파로 하객을 모시는 결혼식 대신 직계 가족만 초대해 가족식을 하겠다고 하니 주변의 소란스러움은 잠잠해졌다. 하지만 수정 씨는 가족식도 올리지 않았다. 그는 “결혼식을 왜 안 하는지 궁금해하는 사람들에게 일일이 설명하기 너무 힘들어서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에 가족식을 한다고 못 박았는데 그건 정말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가족식은 애초부터 계획에 없었다”고 말했다.

수정 씨는 ‘딩크족’을 선언하며 또 한 번 야속한 현실을 마주했다. 그는 “남편이 먼저 얘기를 꺼냈고, 나도 딱히 아이를 낳고 싶은 마음이 없어서 동의했다. 우리나라는 부의 세습이 이뤄지고 아무리 둘 다 공무원으로 안정적인 생활을 한다고 해도 자녀를 낳으면 우리가 얻는 소득 대부분이 양육에 들어갈 텐데, 경제적인 부담이 가장 크게 느껴졌다. 또 우리는 맞벌이를 하고 나는 계속 일할 생각인데 아무래도 임신과 출산, 육아에서 여자가 희생하는 부분이 많지 않나”라며 “우리가 좀 더 행복하게 살기 위해 아이를 낳지 않기로 선택했다”고 토로했다. 수정 씨와 남편은 분명 행복해지기 위해 아이를 낳지 않기로 선택했는데 주변에선 그 결정이 옳은지 그른지 논하고 있었다. 수정 씨는 “결혼을 하면 아이 얘기를 자연스럽게 물어보니까 이런 얘기를 몇몇 사람들한테 했는데 결혼식을 안 하겠다는 말을 했을 때랑 똑같은 질문 폭탄에 불편한 조언들이 쏟아졌다”며 “지금은 가족계획에 대해 누가 물어봐도 그냥 입을 닫는다”고 말했다.

반반 결혼 후 결혼생활도 반씩 부담하는 송이 씨도 그들의 생활방식을 굳이 부모에게 밝히지 않았다. 그는 “양가 부모님은 우리가 각자 경제권을 가지고 반반 생활하는지 전혀 모른다. 우리는 이 방식이 너무 편한데 부모님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모르니까 굳이 말하지 않았다”며 “그래서 명절이나 생일에 부모님께 드릴 선물을 내가 샀어도 말은 상대방이 샀다고 한다. 부모님 입장에선 딸이 선물 샀다고 하는 것보다 사위가 준비했다고 하는 게 더 듣기 좋지 않겠느냐. 일정 부분은 부모님이 생각하는 바람직한 결혼생활처럼 맞추는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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