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정책이 바뀔 때마다 언론에 단골로 등장하는 은마아파트를 예로 생각해보자. 은마아파트 30평대의경우, 사용가치를 반영한 전세가는 대략 5억 원 정도이고, 사용가치에 더해 재건축 기대감 등을 반영한 매매가는 21억 원 근방이다. 만약 은마아파트가 토지지분이 없는 토지임대부주택이었다면, 재건축 조합원 자격도 없기에 사용가치만 반영된 5억 원선에서 매매가가 형성되었을 것이다. 더 나아가 환매의무까지 부과되었더라면 현 시점에서의 가격은 수십 년 전 분양가에 그간의 이자 비용을 더한 금액이었을 것이고, 그것은 5억 원에도 한참 미치지 못했을 것이다. 세상의 모든 아파트들이 토지임대부/환매조건부주택이었다면, 애당초 아파트가격 폭등은 전혀 없었을 것이고, 이렇게 본다면 해당 정책은 굉장히 좋은 정책인 듯 보인다.
그런데 세상의 모든 아파트들이 토지임대부/환매조건부라는가정하에서 도출되는 이론적 평가가, 그런 아파트들이 그렇지 않은 아파트들과 공존하는 현실에서도 같을까? 이자율 1%를 적용했을 때, 당신이 오늘 토지임대부/환매조건부아파트를 5억 원에 사면 10년 뒤에는 5억5000만 원에 정부에 팔아야 하고, 30년 후 재건축 시기가 도래하면 6억7000만 원에 환매해야 한다. 주변 일반아파트 시세가 아무리 올라도, 당신은 장기보유에 따른 이자비용만 보상받기 때문에 그 환매금만으로 다른 일반아파트를 구할 수 없다. 결국 두 형태의 아파트들이 공존하는 경우, 토지임대부/환매조건부아파트 보유기간이 길면 길수록 기회손실만 점점 더 커진다.
이렇게 본다면, 일반아파트와 토지임대부/환매조건부아파트가 공존하게 되면 당장 내 집 마련이 시급하지 않은 사람들은 후자에 관심을 갖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상대적 보유가치는 지속적으로 하락함에서 불구하고, 각종 수리·보수도 자비로 해야 하고 취득세·재산세·종합부동산세를 내야 하기 때문에 전세 사는 것보다 나을 것이 없다. 또한 향후 임대 허용 여부, 사망 시 상속 허용 여부, 사망 전 증여 허용 여부 등에 따라, 후자의 상대적 보유가치는 한없이 하락할 수도 있다.
결국 토지임대부/환매조건부아파트의 주요 수요층은 내 집 마련이 아주 시급하지만가까운 미래에 그렇게 하기 어려운 무주택 서민층이 될 것임을 알 수 있다. 이는 소유권의 일부를 국유화한 채찍이 무주택 서민들만 골라내어 정밀 타격한다는 의미다. 김현미 전 장관이 좋아하던 핀셋 규제인데, 대상이 서민이다. 그리고 일반아파트가 아닌 토지임대부/환매조건부아파트를 공급하겠다는 정부의 의지가 시장에 인식되면 일반아파트 품귀현상을 우려한 ‘패닉바잉’이 가속화되고, 두 시장 참가자들의 격차는 더욱 확대된다.
서민 주거복지 향상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토지임대부/환매조건부제도는 기존의 공공임대분양제도보다 명백하게 퇴보한 것이다. 공공임대분양제도 하에서는 서민들이 일정 기간 임대주택에 살면 분양이라는 명목으로 해당 주택의 소유권을 온전하게 이전받을 수 있다. 일부 서민들이 분양과정에서 과도한 시세차익을 얻을 수 있다는 부작용은 분양가를 적절히 조정해서 풀 문제일 뿐, 처분권을 국유화해서 풀어야 할 만큼 심각한 문제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토지임대부/환매조건부제도는 일부 서민들의 시세차익을 이유로 공공임대분양제도가 가진 주거사다리 기능을 제거한 것이다.
‘영끌’ ‘패닉바잉’ 등으로 요약되는 수요 폭증세에, 정부는 급히 LH·SH공사 등을 통한 주택공급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그러나 일반아파트 시세 안정화와 서민 주거복지 향상이라는 이중 목표를 추구함에 있어, 무주택 서민들의 내 집 마련 시 소유권 일부를 국유화하는 거대담론이 왜 필요하며, 어떤 도움이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