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브이로그 통해 직원 소통
젊은 세대처럼 IT기기 활용 능숙
“애플, 그거 사과 아냐?”라고 묻던 부장님들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이제 점심시간이 되면 여의도 식당가에서 에어팟을 끼고 혼밥하는 상사를 마주치는 일이 흔해졌다. 쿨하게 눈인사를 건넨 상사는 한 손에 스타벅스 아이스아메리카노를 들고 헬스장으로 향한다. 운동 중 갤럭시 워치로 오후 일정을 보고받은 상사는 사무실로 돌아와 카카오톡PC로 업무 지시를 내린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조직 내 업무 문화가 1년 새 빠르게 변했다. 대부분의 업무 보고와 회의는 비대면으로 진행됐고, 문서로 제출되던 보고서는 문서 파일로 전달됐다. 이런 흐름에 가장 뒤처질 것으로 여겨졌던 50·60대 임원들은 달리진 업무 스타일에 누구보다 빠르게 적응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과거 임원들이 디지털화를 요구하는 조직 내 압박에 못 이겨 반강제적으로 최신 IT기기를 사용해야 했던 초반과 달리 이제는 스스로가 IT기기에 능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욕구를 갖게 된 것이라는 분석을 내놨다. 결국 직원들의 평가가 자신의 승진에도 직결된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는 것도 하나의 요인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조직 내에서 어느 임원이 IT활용에 능숙한지 금방 소문이 난다. 이런 소문이 조직 인사에 매우 큰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일부 임원들은 보여주기 차원에서 최신 IT기기를 가장 먼저 구매하기도 한다. 갤럭시Z 플립이 국내 출시되기 전 해외 직구로 선구매한 임원도 꽤 있다”고 말했다.
최근 금융권에서 기관장과 직원 간 소통 창구는 브이로그와 유튜브다. 진옥동 신한은행장은 셀프카메라를 들고 브이로그를 직접 촬영해 직원들과 소통한다. 자신의 평범한 일상을 주로 담고, 예고 없이 같은 층에서 업무 중인 부행장의 사무실에 찾아가 돌발 인터뷰도 진행한다.
권광석 우리은행장은 최근 유튜브로 진행된 사내 직원 노래 오디션 ‘들려줘 홈씽’의 사회를 봤다. 권 행장은 최종 결승에 올라간 직원들이 부른 ‘진달래꽃’ ‘걱정말아요 그대’ ‘하늘을 달리다’ ‘인연’ 등에 맞춰 노래를 감상하고, 진행 중 농담을 던지며 결승 진출자들의 긴장을 풀어줬다.
손병환 농협금융 회장은 개인 페이스북을 직접 운영한다. 직원들과 ‘페메(페이스북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쌍방향 소통을 한다. 업무 도중 틈이 날 때는 갤럭시버즈를 꼽고 산책을 즐기고, 갤럭시워치로 실시간 업무 보고를 받는다.
김장현 성균관대학교 인터랙션사이언스학과 교수는 “원래 천성이 외향적이고 새로운 물건에 호기심이 많은 사람은 50·60대가 되더라도 IT기기에 친숙하게 된다. 한편, 그런 기질이 없음에도 자신의 명성이나 어떤 실적을 위해 실용적·도구적 측면에서 디지털을 공부하는 사람들이 최근 급격히 늘어났다”고 설명했다.
코로나시대에는 조직 내 젊은 세대보다 임원들이 더욱 IT기기에 능한 현상도 나타났다. 수시로 온라인 업무 보고를 받고 화상 회의를 진행하는 임원들은 카메라 시선처리는 물론 관련 프로그램 활용에 점점 능숙해지고 있다. 반면, 여전히 페이퍼로 모든 업무를 처리하는 젊은 직원들은 온라인 캠을 이용한 소통을 어색해한다.
김장현 교수는 “50·60대는 한 조직 내에서 의사결정에 직접 관여하는 지위에 있다. 코로나 시대에는 의사결정을 내리는 회의가 온라인으로 이뤄지다 보니 IT기기에 능숙하지 못하면 의사결정에서 배제될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50·60대의 디지털리터러시가 강화된 것인데 이런 현상은 과거부터 천천히 진행되다가 최근 급속도로 발현된 것”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