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부터 재계에 리빌딩(Rebuilding) 바람이 불고 있다. 수십 년 된 로고와 사명을 바꾸고, 투자와 인수ㆍ합병(M&A)에도 거침이 없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란 유례없는 위기 상황을 극복하고, 치열한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승부수다.
특히 젊은 오너 3~4세들이 본격적으로 기업을 이끌면서, 보다 개방적이고 과감한 의사결정을 내리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먼저 기업들은 기존 사업 영역을 넘어 새로운 분야의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투자 및 M&A에 나서고 있다.
SK는 새해 첫 투자처로 ‘수소’를 낙점했다. 차세대 에너지이자 ESG(환경·사회·지배구조) 투자 핵심 영역으로 주목받는 수소 사업을 본격화하기 위해 미국 수소 기업인 ‘플러그파워(Plug Power)’에 15억 달러(약 1조6000억 원)를 베팅했다.
7일 SK㈜와 SK E&S는 8000억 원씩 출자해 플러그 파워의 지분 9.9%를 확보하며 최대주주로 올라섰다고 발표했다.
1997년 설립된 플러그파워는 수소 사업 밸류체인 내 차량용 연료전지(PEMFC), 수전해(물에 전력을 공급해 수소를 생산하는 기술) 핵심 설비인 전해조, 액화수소플랜트 및 수소 충전소 건설 기술 등 다수의 핵심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특히 플러그파워는 수소를 연료로 사용하는 지게차와 트럭 등 수소 기반 모빌리티 사업 역량도 보유하고 있다. 아마존, 월마트 등 미국 전체 수소 지게차 공급 시장을 사실상 독점하고 있다.
최근에는 미국 전역에 구축된 수소 충전소 네트워크를 활용해 중대형 트럭시장에 진출했으며, 드론·항공기·발전용 등으로 수소 연료전지의 활용을 다각화하고 있다.
SK는 이번 투자로 플러그파워와 합작법인을 설립해 아시아 수소 시장의 리더십 확보에 박차를 가할 방침이다.
SK 관계자는 “SK그룹이 보유한 사업 역량과 다양한 외부 파트너십을 결합해 글로벌 수소시장에서의 영향력을 지속해서 키워나갈 방침”이라며 “한발 앞서 친환경 수소 생태계를 조성함으로써 ESG 경영 선도 기업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라고 말했다.
LG 역시 연초부터 기업 인수 대열에 합류했다. 이날 LG전자는 미국 실리콘밸리에 본사를 둔 데이터 분석 스타트업 ‘알폰소(Alphonso Inc.)’에 약 8000만 달러(약 870억 원)를 투자하고 지분 50% 이상을 확보했다.
최근 세계 3위 자동차 부품업체 ‘마그나 인터내셔널’과 전기차 파워트레인 분야 합작법인을 설립하기로 하며 하드웨어 분야에서 신성장동력을 강화한 데 이어, 소프트웨어 분야에서도 유망 업체를 인수하며 시너지를 꾀하는 것이라 의미가 크다.
이번 인수는 기존 주력 사업에 디지털 전환을 접목해 서비스, 콘텐츠, 소프트웨어 분야로 TV 사업을 확대하기 위한 차원이다.
LG전자는 신사업 분야에서 △ZKW △‘엘지 마그나 이파워트레인(LG Magna e-Powertrain Co. Ltd)’(가칭) 등 투자를 통해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 주력 사업 분야에서는 차량용 소프트웨어 모듈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룩소프트(Luxoft)와 합작 법인을 설립하는 등 소프트웨어, 서비스ㆍ콘텐츠로의 비즈니스 모델 다변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알폰소는 지난 2012년 설립된 TV 광고·콘텐츠 데이터 분석 스타트업이다. 독자 개발 인공지능 영상분석 솔루션을 보유했으며, 북미에서 1500만 가구의 TV 시청 데이터를 확보하고 있다.
LG전자는 이번 인수를 통해 TV 사업의 포트폴리오를 고도화하는 한편, 서비스 및 콘텐츠 경쟁력을 차별화하며 중국 업체 등을 필두로 지속해서 심화하는 경쟁 환경 속에서 추가 성장동력을 확보해 나간다는 계획이다.
LG전자 박형세 HE사업본부장은 “디지털전환을 기반으로 사업 구조를 고도화하는 동시에 고객 가치를 기반으로 한 서비스 영역을 지속 확대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기업 정체성을 바꾸는 대대적인 개편 작업도 한창이다. 기아자동차가 지난 6일 발표한 브랜드 로고와 회사명 교체가 대표적인 사례다.
새 로고와 슬로건은 지난해 발표한 중장기 전략 ‘Plan S(플랜 에스)’의 일환이다. 중장기적으로 '전기차 및 모빌리티 솔루션'이라는 2대 미래 사업으로의 과감한 전환을 담고 있다. 사업 재편을 통해 모빌리티 서비스 산업에서도 선도적 위치를 확립하겠다는 계획이다.
회사명 역시 기존의 기아자동차(Kia Motors)에서 자동차(Motors)를 뺀 기아(KIA)로 바꾼다. 1990년 기아산업에서 기아차로 사명을 교체한 지 30년 만이다.
현대기아차 다른 계열사들 역시 사명 변경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현대모비스가 사명 교체를 검토 중인 가운데 현대를 뺀 ‘모비스’가 물망에 오른다. 포드의 비스테온과 FCA의 모파, 일본 토요타의 덴소 등과 마찬가지로 모기업 이미지를 걷어내기 위한 전략이다.
SK 또한 그룹 CI인 ‘행복날개’에 그룹 경영 철학 중 하나인 사회적 가치(SV)를 적용하면서 그룹의 방향성을 설정했다. SK는 ‘행복날개’ 의미를 사회적 가치와 경제적 가치를 동시에 추구했다. 이를 통해 SK와 사회 구성원 모두가 함께 비상하는 모습을 형상화’ 한 것으로 재정의했다.
이외에도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걸맞은 사명을 구축하기 위해 SK텔레콤 등 일부 계열사의 사명 변경도 추진 중이다.
이 밖에 삼성디스플레이는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제품에 사용할 브랜드 로고 'Samsung OLED'를 이날 발표했다. 자사 제품의 차별성과 우수성을 시장에 각인시키기 위한 전략이다.
삼성디스플레이는 브랜드의 경쟁력을 높이고 로고에 대한 소비자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마케팅 활동을 더욱 강화할 방침이다.
재계는 유학파 출신의 젊은 오너들이 이 같은 결단의 중심에 있는 것으로 해석한다. 삼성, 현대차, LG 모두 젊은 오너 3~4세 시대를 열고 있다.
이재용 부회장은 지난해 10월 이건희 회장 별세 이후 재계 1위 삼성그룹의 수장 역할을 맡게 됐다. 같은 달 정의선 회장은 이사회를 통해 회장에 취임하며 본격적인 정의선 시대를 열었다.
4대 그룹 수장 가운데 가장 젊은 구광모 회장은 취임 4년 차를 맞아 자신만의 색깔을 LG그룹에 입히고 있다. 최태원 회장 역시 젊은 나이인 데다, SK그룹을 새롭게 도약시키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재계 관계자는 "불확실한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대비하기 위해 젊은 감각을 갖춘 오너 3세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며 "신사업에 승부수를 걸고 있는 만큼 향후 몇 년이 더 기대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