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경찰로 가야 해요 검찰로 가야 해요?”
검찰의 직접 수사 축소를 골자로 한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올해부터 일선의 수사 실무가 크게 변했다. 시민들은 시행 첫 주부터 고소·고발장을 들고 우왕좌왕했다.
7일 전국 최대 규모 검찰청인 서울중앙지검에는 바뀐 제도를 미처 파악하지 못하고 고소·고발장을 접수하려다 발길을 돌리는 민원인들이 여전히 많았다.
이달 1일부터 경찰에 대한 검찰의 수사지휘권을 폐지하고 검찰의 직접수사 대상을 부패, 경제, 공직자, 선거, 방위사업, 대형참사 등 6개 범죄로 축소하는 검경 수사권 조정이 시행됐다.
검찰은 4급 이상 공직자 범죄, 3000만 원 이상 뇌물 사건, 5억 원 이상 사기·횡령·배임 등 경제범죄, 5000만 원 이상 알선수재·배임수증재 범죄 등만 직접 수사한다.
그러나 변호사를 선임하지 않고 직접 법적 절차를 밟으려는 시민들의 혼선은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사기 피해를 당해 고소장을 제출하려던 김모 씨는 “피해 금액이 기준보다 적어 (검찰청에서) 접수받을 수 없다고 했다”며 “겨우 왔는데 난감하다”고 당황스러워했다.
안내문을 보고서도 자신이 입은 피해를 어디에 호소해야 하는지 알지 못하는 시민들도 있었다. 조모 씨는 “이게 경찰로 가야 하는 사건에 포함되는지 몰라 일단 접수하려 했었다”며 “경찰로 가야 하는 사건이라고 안내받았다”고 발길을 돌렸다.
접수가 반려되자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노년의 민원인 2명은 서울중앙지검과 서울지법 사잇길에서 갈피를 잡지 못한 채 헤매기도 했다. 연신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두 건물을 번갈아 보던 서모 씨는 “어디로 가야 한다는 거냐”고 물었다.
서울중앙지검은 ‘경찰에 고소장을 제출해야 할 대상범죄 예시’라는 안내문을 1층 고소·고발 접수 전담관실 앞에 붙였다. 5억 원 미만 사기·횡령 등 재산범죄를 비롯해 △살인·상해·강간 등 신체범죄 △업무방해 등 직무범죄 △3000만 원 미만 뇌물수수 등 공직자범죄 △명예훼손, 모욕 등 인격범죄 등은 경찰에 고소장을 제출하도록 안내했다.
대검찰청은 3일 일선청에 구체적인 업무 지침을 내려보냈다. 일선 검찰청도 민원 안내와 함께 경찰의 불송치 사건, 수사중지 사건 기록 검토 부서를 신설하는 등 대응책 마련에 나섰다.
수사 실무는 지각변동의 폭풍전야인 것으로 보인다. 재경지검 부장검사는 “지켜봐야 할 것 같다”며 “경찰과 수사 협조 의무가 명시됐기 때문에 원활한 업무 관계를 유지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경찰은 수사 사무를 관장하는 국가수사본부(국수본) 본격 운영에 들어갔지만 수장을 공석으로 남겨두는 등 반쪽 출범에 그쳤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경찰이 1차 수사종결권을 갖게 됐지만 16개월 입양아 사망 사건인 이른바 '정인이 사건', 이용구 법무부 차관 택시기사 폭행 사건 등 부실한 대처가 잇따라 부각되면서 여론은 좋지 않다.
경찰은 양부모의 학대로 사망한 '정인이 사건'에서 아동학대 의심 신고를 세 차례나 받았지만 제대로 수사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김창룡 경찰청장은 전날 대국민 사과를 하고 관할인 양천경찰서 이화섭 서장을 대기발령 조치했다.
지난해 11월 발생한 이 차관 사건의 경우 서초경찰서가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특가법) 혐의로 파출소가 넘긴 사건을 반의사불벌죄인 형법상 폭행죄를 적용해 내사 종결한 것으로 드러나 논란이 됐다.
더불어 음식점에서 마스크를 벗고 침을 뱉으며 난동을 부리는 등 감염예방법 위반 혐의가 있는 한 남성에 대해 아무런 조사 없이 사건을 종결한 것에 대한 비판 여론도 커지고 있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검찰과 경찰, 양대 권력 기관이 추구하는 바는 국민의 인권을 더 존중하고 국민 신뢰를 획득해 나가는 것"이라며 "적어도 경찰 수사에 대해 검찰이 일정 부분 견제할 수 있는 권한을 어느 정도 인정해야 (경찰의) 권한 남용을 방지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