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승규의 모두를 위한 경제] 개도국에 불공정한 탄소국경세

입력 2021-01-07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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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아오야마학원대 국제정치경제학부 교수

세계 각국 특히 선진국들을 중심으로 ‘탄소국경세(carbon border adjustment)’라는 무역전쟁을 준비하고 있다. 유럽연합(EU)은 2023년부터 탄소국경세를 도입하기로 결정했고, 그 세부사항을 EU 집행위원회가 준비 중이다. 미국은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이 탄소국경세 도입을 고려하겠다고 공약한 바 있다. 관세면 관세지, 국경세(보다 정확한 표현은 국경조정)란 무엇일까?

예를 들어, A라는 상품이 EU에서 생산되면 단위당 100원의 탄소배출세가 부과되고, 상대적으로 환경규제가 느슨한 개발도상국(개도국)에서 생산되면 단위당 10원의 탄소배출세가 부과된다고 하자. EU 기업들은 해당 개도국 기업들에 비하여 경쟁에서 불리한 위치에 놓이게 되고, 경우에 따라서는 많은 기업들이 생산기지를 해당 개도국으로 옮길 것이다. 이를 규제 바구니로부터의 ‘탄소누출(carbon leakage)’이라 부른다. 탄소누출 현상을 막기 위하여 EU가 모든 개도국으로부터 수입되는 상품에 대하여, 유럽 생산 시와 동일하게 단위당 100원의 탄소배출세를 부과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는 명백하게 관세가 되어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 협정(GATT)에 위배된다. 실제 과거에 비슷한 사례로 세계무역기구(WTO) 분쟁에서 패소한 경험도 있다.

이러한 과거 경험을 바탕으로 2000년대 초부터 학계를 중심으로 활발하게 제기된 것이 탄소국경세다. 과거 오염자 부담 원칙에 입각한 탄소배출세를 명목상 수익자 부담 원칙에 입각한 탄소소비세로 전환한 것이다. 앞선 예를 빌리자면, A라는 상품이 EU에서 소비될 때 원산지 상관없이 단위당 100원의 탄소소비세를 부과한다. 물론 생산자가 소비자에게 받아서 대납하는 방식이기에, 자국 상품의 경우에는 과세 방식에 변화가 없다. 반면 개도국으로부터의 수입품의 경우에는, 개도국에서 생산 당시 10원의 탄소배출세를 냈다면 탄소소비세 100원에서 그만큼을 제한 90원만 국경 통과 시 부과하고, 추후에 100원을 소비자에게 받아서 충당하라고 한다. 이는 명목상 해외 생산자에게 부과하는 탄소배출세가 아니고 자국 소비자에게 부과하는 탄소소비세이기 때문에 국제무역에서의 관세도 아니고 WTO가 개입할 명분도 별로 없다.

더 심각한 문제는 동일한 상품이라도 탄소 소비량을 생산국에 따라 적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일례로 많은 개도국들은 화력발전에 의한 전력 생산 비중이 현저히 높다. 탄소는 기본적으로 화석연료를 연소시킬 때 발생하기 때문에 동일한 상품이라도 화력발전 비중이 높은 국가에서 생산된 상품에는 높은 탄소소비세가 부과된다. 동일한 상품이라도 EU산에는 100원의 탄소소비세가, 개도국으로부터의 수입품에는 500원의 탄소소비세가 부과될 수도 있다는 의미다. 결국 탄소국경세는 ‘탄소누출’을 최소화하고 ‘기후변화’를 막는다는 거대한 기치를 내걸었으나, 실상은 WTO의 자유무역주의를 교묘하게 빠져나간 선진국들의 자국산업 보호 조치이고, 개도국들에 대한 아주 강력한 견제 수단이 된다.

2023년부터 EU가 탄소국경세를 시행하면 석유화학, 시멘트, 철강 등을 EU에 수출하는 국가들이 타격을 입을 것이다. 탄소배출세는 자국 기업에만 부과하는 반면 탄소소비세는 외국 기업에 차별적으로 부과할 수 있기 때문에 탄소소비세로의 전환, 즉 탄소국경세를 도입하는 것이 우월전략 균형이다. 일단 EU에서 국가별 상품별 탄소 함유량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탄소국경세를 실시하면 다른 나라들도 이를 빠르게 도입할 것이다. 머지않아 모든 국가들이 탄소국경세를 도입하고, 그 적용 범위 또한 ‘에너지’ ‘전력산업’이라는 뇌관을 타고 전 산업분야로 확대될 것이다.

현재 탄소국경세를 가장 강력히 반대하는 나라는 화력발전 의존도가 높은 중국이다. 그러나 우리의 상황도 만만치 않다. 탄소국경세는 우리에게 수출물량의 조정 정도가 아니라 에너지, 전력 공급구조부터 바꾸라는 경고가 될 것이다. 특히 화력발전은 우리 기업들을 탄소국경세의 먹잇감으로 전락시킬 뿐이다. 탄소국경세를 앞세운 선진국들의 선전포고로, 우리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탈원전’이 아닌 ‘탈화전’이라는 발등의 불부터 꺼야 할 처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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