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저가 아파트 시장을 대표하는 노도강(노원·도봉·강북구)에서 고가 주택 기준인 9억 원 이상 아파트 매매거래가 속출하고 있다. 노원구에선 최근 10억 원을 넘기는 거래가 줄줄이 쏟아졌다. 강남 등 고가 아파트를 타깃으로 한 정부 규제와 개정 임대차법(전월세 상한제·계약갱신청구권) 시행에 매매수요가 중저가 시장에 집중되면서 집값 갭 메우기(가격 격차 줄이기) 현상이 심화된 탓으로 보인다. 서민들의 주거비 부담이 앞으로 더 급증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10일 국토교통부의 실거래가공개시스템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 노원구에서 나온 전용 84㎡ 아파트 매매거래 중 10억 원을 넘긴 거래건수는 15건이다. 부동산 거래 신고기한이 한 달인 점을 고려하면 거래 건수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전달에는 16건을 기록했다.
11, 12월 고가 거래가 급격히 늘면서 하반기 노원구에서 나온 10억 원 이상 아파트 매매거래는 50건으로 불어났다. 이는 상반기(4건) 거래건수의 10배를 넘어서는 수치다.
대부분의 고가 거래는 중계동에 집중됐다. 정부의 자사고·특목고 폐지 방침에 강남구 대치동, 양천구 목동 등 사교육 1번지로 꼽히는 지역들에 맹모들의 관심이 집중된 영향으로 풀이된다. 지난달 중계동 ‘라이프·청구·신동아아파트’에선 처음으로 대출 금지선인 15억 원 초과(전용 115.4㎡) 거래까지 나왔다. 투기과열지구 내 15억 원을 넘기는 아파트는 주택담보대출이 나오지 않는다.
노원구 중계동 A공인 측은 "매매·전세가격이 동반 상승하는 상황에서 서울 외곽 지역들은 아직도 집값이 낮다는 인식이 여전히 강하다"며 "자사고와 특목고 폐지 방침까지 더해져 이 일대 집값 오름세가 컸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도봉구와 강북구에서도 9억 원 이상의 전용 84㎡ 매매거래가 이어지고 있다. 강북구에선 상반기 8건이었던 9억 원 이상 매매거래가 하반기 31건으로 4배 증가했다. 도봉구에선 상반기 0건이었던 9억 원 이상 매매거래가 하반기 5건으로 늘었다. 11, 12월 창동 동아청솔 아파트와 주공19단지, 2개 단지에서 잇따라 고가 거래가 체결됐다.
9억 원은 정부의 다양한 규제가 적용되는 기준으로 주택시장에서 상징하는 바가 크다. 투기과열지구인 서울에선 주택담보대출을 받을 때 9억 원을 초과하는 금액에 대해서는 주택담보대출비율(LTV)이 20%로 제한된다.
중저가 아파트 밀집지였던 이들 지역의 집값이 천정부지로 뛴 건 정부 규제 영향이 컸다. 정부가 집값 안정을 위해 9억 원 초과 주택에 대한 대출을 강화하고 나서면서 중저가 지역으로 매매수요가 집중된 탓이다. 특히 지난해 7월 시행된 개정 임대차법이 전세난을 촉발하면서 중저가 아파트값 상승을 더욱 부채질했다. 청약시장에서 소외된 30대 젊은층이 내 집 마련을 위해 달려간 곳도 중저가 시장이다.
결국 지난해 말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가격은 사상 처음으로 평(3.3㎡)당 4000만 원을 돌파했다. 재작년 12월(3351만 원)과 비교하면 1년동안 무려 20% 급등했다. 집값이 저렴한 강북 상승세의 영향이 컸다. 실제 노원구가 33%로 가장 많이 뛰었고, 성북(32.5%), 도봉구(28.4%)의 상승세도 두드러졌다.
특히 국민평형으로 불리는 전용 84㎡ 아파트값이 치솟는다는 점에서 서민들의 주거비 부담이 더 급증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전문가들은 올해 중저가 단지들의 갭 메우기가 지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은 "올해 입주물량 급감 등으로 전세난과 함께 30대의 중저가 아파트 매입이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며 "중저가 주택과 고가주택 매매가격의 갭(차이)이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