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 처분을 압박하는 정부의 세금 강화에 다주택자들이 증여로 맞서면서 부동산 정책 스텝이 꼬이고 있다. 다주택자를 겨냥한 양도세 중과세 정책이 오히려 매물 가뭄 현상을 부추길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해 아파트 증여는 하반기 들어 급증했다. 상반기만 해도 3만5454가구가 증여됐지만, 7~11월엔 그보다 30% 많은 4만6514가구가 증여됐다. 7월 한 달에만 증여 1만4153건이 신고됐다.
부동산 시장에선 7월 발표된 '주택시장 안정 보완대책'(7ㆍ10 대책)이 이 같은 흐름을 만들었다고 본다. 7ㆍ10 대책에서 정부는 2021년 6월부터 부동산 규제 지역에 집을 가진 다주택자의 종합부동산세ㆍ양도소득세 세율을 지금보다 높이기로 했다. 세금 부담을 무겁게 해 주택을 처분하도록 유도하겠단 포석이었다.
세제 압박에 다주택자들은 증여로 응수했다. 집값이 계속 오르는 상황에서 '세금 폭탄'을 맞으면서 싼값에 집을 내놓느니 가족에게 증여하는 게 낫다고 판단한 것이다.
증여로 가족 간에 주택을 분산해 놓으면 개인당 주택 수와 가격에 따라 매기는 종부세를 아낄 수 있는 효과도 있다. 서울에선 송파구(2699가구)와 강동구(2383가구), 강남구(2109가구) 등 고가 주택 밀집지역을 중심으로 증여가 활발했던 건 이 같은 이유에서다. 증여가 급증하자 정부ㆍ여당은 증여 취득세를 최고 세율은 12%로 인상, 흐름을 반전시키려 했으나 지금까지 증여 바람이 이어져 오고 있다.
문제는 증여가 늘어나면 정부가 의도하는 주택 거래 활성화를 통한 가격 안정에 차질이 생긴다는 점이다. 조세 당국은 '취득가액 이월과세'를 통해 증여받은 주택을 증여일로부터 5년 이내에 파는 것을 제한하고 있다. 증여받은 주택을 5년 안에 팔면 증여가액이 아니라 증여자가 애초 주택을 산 취득금액을 기준으로 양도세 과세 표준이 책정된다. 증여를 통한 절세를 막기 위한 조치다.
이 같은 세제가 바뀌지 않는 한 지난해 증여된 주택 상당수가 거래시장에 나오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시장에선 중과 유예가 끝나는 시점까지 다주택자 매물이 얼마나 매매되고 증여되느냐에 따라 내년 주택시장 향방이 갈릴 것으로 본다.
여경희 부동산114 수석연구원은 "피증여자에게 부과되는 양도세 부담이 커지면 주택 매물이 일부 제한될 수 있다"며 "올 상반기에도 주택을 처분해야 하는 다주택자들이 매도 대신 증여로 돌아서면 매물이 감소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이제라도 다주택자가 매물을 내놓을 수 있도록 퇴로를 열어줘야 한다고 조언한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 랩장은 "주택을 증여하는 사람 가운데 양도세 부담 때문에 집을 처분하지 못하는 사람도 많다"며 "양도세 부담이 줄어들면 집값 상승 여력이 부족한 지역에서부터 다주택자 매물이 나오기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한 편에선 새 세제가 시행되기도 전에 그 기조가 후퇴하면 조세 정책 신뢰성이 훼손될 것이란 우려도 나오고 있다. 여당 지도부가 "양도세와 관련된 전체 법안들이 효과를 막 보려 하는 시점에서 세금 완화론이 나오는 것은 대단히 부적절하다"고 선을 긋는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전강수 대구가톨릭대 경제금융부동산학과 교수는 "양도세 중과에는 불로소득 환수를 통한 투기 억제라는 취지도 함께 담겨 있다"며 "다주택자가 매물을 내놓게 하기 위한 양도세 중과 유예가 집값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확실치 않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