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지금] 미국의 CPTPP 재참여와 아태지역 통상 리더십

입력 2021-01-11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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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동 산업연구원 통상정책실장

새로 들어서는 정부가 이전 정부가 결정한 정책을 재검토하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다. 바이든 행정부 출범 이후 다시 한번 살펴볼 가치가 있는 중요한 통상정책 중 하나가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rans-Pacific Partnership, TPP)으로부터 미국이 탈퇴한 것이다. 미국은 현시점에서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omprehensive and Progressive Agreement for Trans-Pacific Partnership, CPTPP)에 재참여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을 수 있지만, 아태지역에서 미국은 지금 무역 참여를 위한 노력을 배가해야 할 때이다. 최근 몇 년 동안 아태지역의 정치적 경제적 중요성이 커지고 있고, 중국의 경제력이 급부상하는 상황에서 미국의 CPTPP 참여 여부는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이슈가 되고 있다.

디지털 무역 확산, 코로나19 대유행, 미중 간 패권경쟁 등 세계경제를 근본적으로 재편하는 대전환기에 CPTPP 재참여를 통해 무역관계를 심화시키는 것은 깊은 불황 속에서 훨씬 더 가치 있는 제안이 될 것이다. 그리고 무역에 대한 미국민의 태도는 아태지역에 기반을 둔 무역협정에 재참여하는 정책 창구를 다시 열 정도로 충분히 바뀌었을지도 모른다. 특히 이것이 미국이 동맹국들과 협력하고 중국의 불공정한 관행에 맞설 수 있는 기회로 여겨진다면 더욱 그렇다.

국가 주도의 자본주의에 대한 대안적 경제 모델을 제시하는 메가 무역협정인 CPTPP는 관세 철폐와 더불어 전자상거래, 지식재산권 보호, 국영기업, 노동, 그리고 환경 등 글로벌 통상질서를 규율하는 높은 수준의 규칙들에 대해 합의하였다. 그리고 코로나19 대유행이 공급망 네트워크의 불안정성을 여실히 드러냈기 때문에 CPTPP에서 합의된 공통된 원산지 규칙을 포함한 공유된 표준과 규범은 아태지역에서 신뢰할 수 있는 공급망을 구축하는 기반을 제공할 것이다. 그렇다면 미국 없이 일본 등 11개국이 최종 타결한 CPTPP에 미국이 복귀하는 길은 있을까?

CPTPP 재참여 전망은 미국이 제안하는 수정안에 대하여 기존 회원국이 어느 정도 범위까지 용인할 수 있는지에 달려 있다. 하지만 CPTPP 국가들의 무역담당 관료들이 미국이 돌아오는 것에 대해 환영과 반대 중 어떤 입장을 보일지는 불명확하다. 그리고 과거 TPP 협상 중 미국의 철수에 의해 상처를 입은 회원국들은 미국의 광범위한 수정 요청을 경계한다. 또한 의회 승인 과정의 불확실성에 익숙한 국가들은 그들의 대통령 선거 주기가 미칠 영향에 대해서도 우려를 나타낸다.

앞서 언급한 도전과 기회를 염두에 두고, 바이든 행정부가 CPTPP 재참여를 위해 추진해야 할 몇 가지 핵심적인 과제들이 있다. 우선 본격적인 협상을 앞두고 중간 단계에서 부문별 협상을 시작하는 것이다. CPTPP 회원국과 협상 내용 및 수준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상호 신뢰를 재구축하며, 추진력을 마련하기 위해 제한된 분야에서의 협상을 시도할 필요가 있다. 초기 협상을 위한 유망 분야로는 코로나19 사태로 가속화하고 있는 디지털 무역, 글로벌 공급망에서 무역 제한과 취약성을 드러낸 의료 및 기타 필수 제품의 거래, 민주당 행정부의 특별한 관심사인 무역과 환경·기후 분야가 될 것으로 보인다.

내부적으로는 첫째, 경쟁력 향상과 구조조정을 위한 정책 및 프로그램에 자원을 투자함으로써 무역협정, 특히 CPTPP에 대한 내부적인 지원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다. 그러한 노력은 더 공평한 소득분배를 보장하는 목표를 달성하는 데 있어서 무역협정의 역할과 부담을 완화할 수 있다. 둘째, 미국 대중들에게 아태지역의 파트너들과의 폭넓은 무역 협력이 중국의 국가 주도 자본주의에 대항하고, 미국의 무역을 다각화하는 대안적인 경제 모델을 구축하는 데 필수적이라는 것을 설명해야 한다. 셋째, 의회뿐 아니라 경제 주체인 기업, 노동계, 시민사회단체 등의 의견을 바탕으로 CPTPP 재협상을 위한 구체적인 제안과 우선순위를 만들어야 한다. 넷째, 무역은 선진 경제로 성장시키기 위한 가장 중요한 방법 중 하나이며, 무역협정은 수출과 외국인 직접투자를 통해 창출되는 고임금 일자리로 이어진다는 점을 국민들에게 설득해야 한다.

대외적으로는 먼저 CPTPP 회원국들이 가진 제약조건, 우선순위, 그들의 관심사항 등에 대한 이해를 제고하기 위해 해당 국가들과 긴밀히 협의할 필요가 있다. 특히 일본과 호주는 미국의 CPTPP 재참여를 위한 노력에 주요 전략적 파트너로서 고려되어야 한다. 특히, 발효와 함께 협정을 이행하고 있는 7개 회원국의 견해는 미국의 참여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다음으로는 통상당국이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주요 20개국 정상회의(G20), 세계무역기구(WTO) 등의 협의기구에서 CPTPP 국가들과 긴밀히 협력함으로써 무역과 통상 문제에 대한 미국의 관심을 증대시킬 필요가 있다. 2017년 미국의 TPP 탈퇴 전까지 참여국들의 필요와 요구에 따라 진행한 8년간의 협상에서 도출한 합의 내용은 향후 진행될 재협상에 의미 있는 밑거름이 될 것이다.

이러한 대내외적 추진과제의 이행은 미국의 CPTPP 재참여를 위한 길을 열어줄 것이다. 그리고 향후 미국의 CPTPP 재참여와 아태지역 및 유럽연합(EU)과 같은 다른 주요 무역 상대국과의 보다 광범위한 협력과 참여의 토대를 마련할 것이다. 미국과 CPTPP 회원국에 필요한 유연성과 창의성을 끌어내는 힘의 원천으로도 작용할 것으로 기대된다. 가능성이 가장 높은 미국의 CPTPP 재참여 모델은 조건 없는 CPTPP 가입과 보다 광범위한 재협상 사이의 중간 형태가 될 전망이다. 이를 위해 미국은 핵심적이고 중요한 수정 제안에 집중하고, 협정의 업그레이드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 한편으로 CPTPP 회원국들은 기존 협정의 틀에서 벗어나 변화에 더 개방적이고 적극적인 입장을 보여야 한다.

CPTPP 협정에 대한 이전의 반대와 국내외적 도전 및 과제를 감안할 때, 일부에서는 CPTPP 복귀에 상당한 노력과 수고를 기울일 가치가 있는지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그런 우려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CPTPP 재참여는 글로벌 경제성장과 혁신의 원동력이 되는 아태지역의 무역 및 통상 리더십을 회복하는 데 있어서 해당 지역의 동맹국과 협력할 수 있는 가장 영향력 있는 방법 중 하나이다. 아울러 사회주의 시장경제에 대항한 대안적 경제 모델의 비전과 목표를 제시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새롭게 출범하는 바이든 행정부가 CPTPP 재참여에 대한 정책 옵션을 우선순위에 두고 검토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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