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아진 공동 발의 문턱도 한몫
미래연구원, 부실법안 감점제 검토
국회 미래연구원은 최근 보고서를 통해 “20대 국회에서 법안 발의 건수의 폭발적 양적 증가에 비해 질적 저하가 심각하다”는 문제를 제기했다.
매 국회가 거듭될수록 의원들의 보여주기식 법안 발의가 급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문제를 탓하기에 앞서 이 같은 현상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국회 내부 시스템, 더 나아가 오랜 기간 이어져 온 정치적 배경을 살펴봐야 한다.
수십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오랜 권위주의와 민주화 과정에서 법안 급증 현상이 비롯됐다고 볼 수 있다.
서복경 서강대 교수는 국회미래연구원이 지난해 개최한 ‘입법의 민주적 권위 실현 방안 연구를 위한 세미나’에서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박정희·전두환 군사정부 억압 등 오랜 권위주의 체제에 따른 과거사 관련 입법, 급격한 산업화에 따른 시장 규율 및 사회 안전망 관련 입법 등이 활발해지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민주화 이후엔 시민사회의 입법 요구가 증가하며 정부, 원내정당들의 책임감이 커졌다”며 “과거 1인 보스 중심의 정당운영체제와 달리 의원들의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개별 의원 입법이 증가한 것도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공동발의 문턱이 낮아진 점도 한몫했다. 실제 2003년 공동발의 최소인원 기준이 20명에서 10인으로 개정된 이후 의원들의 법안 발의 비율이 급증했다. 16대엔 공동발의 건수가 전체 대비 8.7%에 불과했지만 20대 들어선 48.5%로 5배 이상 늘었다.
다소 부정적인 요소도 있다. ‘의원발의 수=공천 기준’이라는 규정이 ‘단순 용어 변경 발의’, ‘쪼개기 법안 발의’, ‘중복 발의’ 등의 급증 배경이라는 지적이다. 재선을 원하는 국회의원 처지에서는 다수 법안 발의가 곧 공천 및 당선 가능성에 대한 보험기능을 한다는 것이다.
한 국회입법조사처 관계자는 “법안 발의수가 공천 가능성을 높여주는 기준이 되다 보니, 전문가인 우리도 부실 법안 발의에 제동을 걸기가 어려운 것도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잘못된 평가 기준도 문제다. 그동안 무조건 더 많은 법안을 통과시켜야 좋은 국회라는 기준, 즉 법안 처리율만으로 입법활동을 평가해왔다. 이는 결국 △짧은 민주주의 역사 △불안정한 정당 제도 등에 기인한다.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참여연대 의정감시센터는 1994년 창립 이래 지속적으로 국회를 모니터링하고 감시해왔다.
18대 국회부터는 의정활동 평가지수를 개발 등 의정활동을 평가하기 위한 본격적인 논의에 들어갔다. 그 이후엔 더 나은 입법 제고를 위해 평가지수 개발을 중단하고 정성평가로 전환했다.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들은 의원활동 평가를 위해 꾸준히 노력해왔지만 법안 발의 건수의 양적 증가에 대한 명확한 원인을 찾아내거나, 대안을 마련하지는 못했다.
이 같은 한계점을 보완, 해결하기 위해 미래연구원은 ‘입법 남용 해법’을 담은 보고서를 발간하기로 했다.
대안 중 하나로 부실법안 감점제를 검토 중이다. 감점제가 도입될 경우, 부실법안이라고 판단될 경우 해당 의원 평가에서 감점 처리할 수 있다.
이를 위해 미래연구원은 미국 등 해외 법안평가지표를 벤치마킹해 부실법안을 포착하는 방안도 도 염두에 두고 있다. 다만, 국내에 반영하기까지 어려움도 많다. 박상훈 미래연구원 연구위원은 “평가를 받는 여야 의원 모두 인정할 만한 권위와 중립성을 갖는 기관을 마련하기 까다로워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국회 관계자는 “우리나라에는 여야 의원들이 외부 입법평가를 기피하는 성향이 있어 제역할을 하는 입법평가기관 마련은 어렵다”는 시각도 내비쳤다.
법안의 임기만료 폐기 원인도 구체화할 필요성도 제기됐다. 서 교수는 “상정조차 되지 못한 법안이 폐기된 경우부터 소관위 심의를 거쳤으나 갈등이 심해 의결에 이르지 못해 폐기된 경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경우의 수도 면밀히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