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발언대] 혁신성장 막는 현장규제, R&D 감사의 역할

입력 2021-01-19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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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근철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KEIT) 상임감사

현 정부의 핵심 국정과제는 혁신성장과 규제개혁이다. 혁신성장을 위해 지난해 24조2000억 원, 올해 27조2000억 원의 예산을 정부 연구·개발(R&D)에 투입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해 실시한 한 언론사의 설문조사 결과 정부 규제개혁 성과에 대한 부정적 응답이 75% 수준으로 나타났다.

R&D 혁신을 저해하는 규제를 개혁하지 않고서는 혁신성장 정책도 성공할 수 없다. 정부도 기존 틀을 유지한 채 개별 규제만 개선하는 것에 한계점을 느끼고, 규제혁신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전환할 것을 발표했다.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KEIT)도 이에 발맞춰 우수 R&D 기관에 대해 규제를 완화하는 R&D 샌드박스를 지난해 7월 도입했다. 그동안 우수하게 연구개발을 추진한 기업은 R&D 샌드박스 트랙을 적용받아 국가연구개발사업 추진 과정에서 연구비 집행이나 정산, 연구목표와 컨소시엄 변경 등에서 자율성을 대폭 보장받게 됐다.

그러나 이러한 규제 개선 노력에도 불구하고, R&D 현장규제는 여전히 반복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 의지와는 다르게 현장에서는 규제 개선 정책이 소극적으로 반영되고 있다. R&D 현장규제란 법령이나 제도에는 존재하지 않지만 업무 관행 또는 문제 발생 최소화 등을 이유로 업무 일선에서 과도하게 연구자의 자율성을 침해하는 행정적 규제를 말한다. 이러한 현장규제는 연구자에게 ‘제도적 갑질’로 작용하고 있다.

2019년부터 지난해까지 시행된 감사원의 ‘국가연구개발사업 연구수행규제 개선실태’ 성과 감사에 따르면, 정부의 전자문서 활용 촉진 정책에도 불구하고 대학과 정부출연 연구기관 81.3%가 연구비 증빙자료 전체를 종이서류 형태로 보관토록 규제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감사원 조사 결과 정부 정책과는 다르게 종이서류를 보관토록 강제하는 가장 큰 이유는 정산 및 감사에 대비하기 위한 것으로 나타났다.

KEIT 감사실은 과도한 규제를 개선하기 위해 연구자 640여 명의 설문 결과와 6차례에 걸친 간담회 의견을 바탕으로 ‘R&D 현장규제 제도개선’ 컨설팅 감사를 추진했다. 감사실은 컨설팅 감사를 통해 감사 대비를 위한 소극행정으로 개선되지 못한 사항들을 발굴하고 검토했다.

이와 함께 2019년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에서 추진한 민간전문가 중심의 ‘과학기술 현장규제 점검단’ 발굴 의견 566건을 이어받아 범부처 차원에서 실질적 현장규제 개선이 이루어지도록 노력했다.

결과적으로 KEIT 감사실은 전자문서 형태로 제출한 연구비 증빙자료에 대한 종이서류 중복 제출을 요구하는 현장규제를 원칙적으로 금하고, 연구자 개인정보 유출 차단을 위하여 서류 제출 절차를 변경하는 등 총 13건의 R&D 현장규제를 개선했다.

지금까지 우리나라 정부 R&D 과제 감사는 ‘연구비는 눈먼 돈’이라는 국민의 인식을 불식시키기 위해 연구비 부정을 적발하고 환수 및 제재 조치를 강화하는 데 집중해 왔다. 적발 위주 감사는 감사에 대비하기 위한 과도한 R&D 현장규제를 양산해 정부의 규제개혁 정책의 실효성을 떨어뜨릴 뿐만 아니라, 연구자에게는 제도적 갑질로 작용하는 부작용을 안고 있다.

R&D 감사가 변화할 때다. 단순 적발 위주의 감사에서 벗어나 컨설팅 중심으로 변화해야 한다. 정부 규제개혁 정책이 R&D 현장에 적절히 적용되고 있는지, 잘못 적용돼 제도적 갑질로 작용하진 않는지 등을 점검하고 개선해 연구자가 R&D 혁신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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