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는 핵 주변을 돌며 공유결합을 할 수 있는 원자가전자(原子價電子, valence electron)가 4개인 구조로, 4개의 다른 원소와 결합할 수도 있고 3개 또는 2개의 다른 원소와 결합할 수도 있다. 그중 3개의 결합을 이루는 구조는 나머지 전자 하나가 이동 가능해 전기가 통하는 전기전도성 소재로 활용된다. 이렇게 3개의 결합으로 가장 안정된 육각형 결정구조가 2차원 평면에 이어진 구조의 탄소 동소체가 바로 그래핀이다. 그리고 그래핀이 차곡차곡 쌓인 구조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흑연이며, 흑연은 광산에서 채취할 수도 있고 고기를 구워 먹을 때 사용되는 숯에서도 발견된다.
흑연 구조에서 그래핀은 일정 거리(3.35Å, Å=10-10m)를 두고 떨어져 쌓여 있다. 원자는 기본적으로 척력(斥力)을 가지고 있다. 두 개의 원자가 붙게 되면 서로 밀쳐내게 된다. 두 개의 원자가 일정 거리 이하로 가까워지면 전자가 돌고 있는 전자궤도가 서로 중첩되기 시작하기 때문에 척력이 발생해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게 된다. 이러한 원자 간 척력은 아주 짧은 거리(~3.5Å)에서 발생하고, 이를 어길 경우 척력이 급격하게 증가하여 서로 반발하게 되므로 원자 간의 일정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다. 우리가 어떤 물건을 만지더라도 원자 개념에서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만지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발생하는 ‘반데르발스 힘(van der Waals' force)’은 아주 작은 힘이지만 서로 밀치기도 하고 서로 달라붙게도 한다. 그래서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원자 개념에서는 우리와 거리를 두고 있지만 약한 인력에 의해 손에 붙게 되고 이것이 호흡기를 타고 들어가면 증상을 유발하게 된다.)
우리가 사용하는 연필의 흑연은 그래핀이 일정 거리를 두고 쌓여 있는 구조이기 때문에, 글씨를 쓰면 흑연이 미끄러지면서 층이 분리되고 이것이 종이에 묻어 글씨가 써지는 것이다. 그래서 연필 글씨를 고배율로 관찰하면 그래핀을 발견할 수 있다. 흑연으로부터 그래핀을 최초로 분리해내 2010년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러시아 출신 물리학자 안드레 가임과 콘스탄틴 노보셀로프 역시 연필심에 스카치 테이프를 붙여 떼어낸 뒤, 테이프에 달라붙은 흑연 가루를 반복해서 유리 테이프로 떼어내는 방식으로 그래핀을 얻을 수 있었다.
탄소 원자 간 또는 그래핀 간의 거리 두기 구조로 이루어진 흑연은 휴대폰이나 전기자동차에 사용되는 리튬이차전지의 음극 재료로 쓰인다. 이차전지의 충전기를 전원에 연결하면 양극에 있는 리튬이 빠져나와 분리막을 통과하여 음극으로 이동하며 에너지가 축적된다. 이때 에너지를 축적할 수 있도록 하는 물질이 바로 음극의 층상구조를 이루고 있는 흑연이다. 이러한 이차전지의 음극과 양극 사이에서도 거리 두기가 필수이다. 음극과 양극은 이온이 지나다닐 수 있는 전해질로 채워져 있는데, 만약에 음극과 양극이 붙어 있게 되면 서로 간에 전기가 통해 버리기 때문에 전지가 망가지거나 폭발하게 된다. 그래서 강제로 거리 두기를 실현하기 위해 분리막을 중간에 두게 된다.
이처럼 거리 두기는 코로나 시대 우리 일상뿐만 아니라 원자들, 전극들 간에도 필수적이다. 아주 미세한 과학의 영역이지만 거리 두기로 물리적 원리가 구현되고 그 응용을 통해 인간 생활의 가치가 높아지는 것처럼, 코로나 시대 사회적 거리 두기의 실천이 성공적 방역과 일상으로의 복귀를 앞당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