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구리에 거주하는, 공공기관에 근무 중이라는 42세 양 모 씨는 아들과 함께 ‘현대 EV 스테이션 강동’을 찾았다.
올해 주행거리 연장형 전기차 구입을 염두에 뒀다는 그는 이곳에서 운영 중인 친환경차 시승 체험을 마치고 돌아가던 길이었다.
양 씨는 “18분이면 배터리를 80% 충전할 수 있다니 이제 전기차를 마다할 이유가 없어졌다”라고 말했다.
주유소였던 예전 땅이 전기차 충전과 주방가전 체험이 가능한 복합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했다.
현대자동차와 SK네트웍스는 서울 강동구 길동의 과거 SK주유소 터를 대신해 전기차 충전소 및 복합 문화공간인 '길동 채움'을 지난 21일 열었다.
전체면적 약 1300평, 지하 2층ㆍ지상 4층 규모의 채움은 '사람과 자동차 모두 채워가는 곳'이라는 의미를 담았다.
무엇보다 1층에는 전기차 전용 초고속 충전소 ‘현대 EV 스테이션 강동’이 들어섰다는 게 눈길을 끈다. 이곳에는 현대차가 개발한 전기차 초고속 충전설비 ‘하이 차저’도 8기를 설치했다.
먼저 충전기 겉모양부터 범상치 않다. 우체통처럼 우두커니 서 있던 여느 충전 스탠드와 다르다. 지정된 자리에 차를 세우면 위에 달린 동그란 구조물에서 충전 케이블이 천천히 내려온다. 물론 조작은 운전자가 충전 스탠드에 다린 터치 스크린을 통해 직접 해야 한다.
차 지붕 위에서 불을 밝히는, 충전 케이블이 매달려 있는 동그란 구조물은 이리저리 회전도 가능하다. 차마다 충전구 위치가 다르니 여기에 맞춰 구조물을 움직이는 셈이다.
무엇보다 ‘하이차저’는 출력량 기준 국내 최고 수준의 350㎾급 고출력ㆍ고효율 충전 기술을 담고 있다. 800V 충전 시스템을 갖춘 전기차라면 18분 이내에 10%에서 80%까지 충전할 수 있다.
아직은 국산 전기차 가운데 800V급 충전시스템을 갖춘 차는 없다. 올 상반기 현대차가 선보일 예정인 아이오닉5가 첫 차다. 이후 전용 플랫폼 E-GMP를 바탕으로 한 새 모델들이 차례로 800V급 초고속 충전시스템을 얹을 예정이다.
따져보면 개방형 초고속 충전소는 이번 현대차 강동 센터가 최초다. 독일 포르쉐 전기 스포츠카 ‘타이칸’이 현재 유일하게 800V급 충전 시스템을 갖추고 있지만 포르쉐 서비스센터에만 충전기를 둬 일반 고객은 접근이 어렵다.
전기차 충전소와 카페는 서로 필요조건을 지닌다. 전기차 운전자는 충전되는 동안 차를 마시며 편하게 기다릴 수 있다. 카페 역시 전기차 고객을 끌어들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급속 충전 고객의 경우 충전이 끝나면 카페를 떠나는 만큼, 좌석 회전율도 높일 수 있다.
사회적 거리단계가 일부 완화된 첫 주말, 카페 1~2층 곳곳에는 손님들이 거리를 두고 앉아 커피 향을 피워내고 있었다.
여전히 출입구마다, 또 위아래층을 옮겨 다닐 때마다 자동 체온측정기를 거쳐야 한다. 여기에 손 소독제를 놓고, QR코드 인증 시스템도 마련했다.
3층에는 SK매직의 고객 체험형 브랜드숍 ‘잇츠 매직(it's magic)’이 들어섰다.
엘리베이터가 열리면 가장 먼저 영상물과 갖가지 조형물이 눈길을 끈다. 이들의 콘셉트는 물과 불, 바람. SK매직이 추구하는 주방가전을 상징한다.
정식 오픈을 위해 막바지 준비작업을 진행 중이지만 SK 관계자의 협조를 얻어 체험관을 둘러봤다.
한쪽에는 정수기 체험코너, 반대편에는 주방 가전 체험공간과 개별 식사가 가능한 공유 주방을 마련했다. 마치 잘 꾸며진 요리 교실을 보는 듯한 분위기다.
실제로 SK매직은 이 공간에서 ‘쿠킹 클래스’ 영상을 제작, 유튜브 등을 통해 방송할 계획이다. 셰프가 참여하는 ‘쿠킹쇼’도 선보일 계획이다.
이밖에 4층에는 SK 임직원들을 위한 공유 오피스를 마련했다.
현대 EV 스테이션 강동은 1년 365일 24시간 연중 쉬지 않고 불을 밝힌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아무 때나 전기차나 타고 들어가 충전할 수 없다.
1층 충전소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하이차저’ 애플리케이션(앱)이 필수다. 이를 통해 △충전 예약 및 결제 △충전 대기 중 전자책(e-Book) 및 차량 청소 용품 무상 이용 △충전 요금 23% 할인 등의 혜택을 받을 수 있다.
한쪽에 '현대차 드라이빙 체험 센터'를 세우고 전기차와 수소전기차 등을 앞세운 시승 프로그램도 운영 중이다.
시승은 사전 예약제다. 매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8시까지 가능하다. 전화나 현대차 홈페이지에서 예약하면 된다. 현재는 코나 일렉트릭과 수소전기차 넥쏘를 시승할 수 있다.
현대차 드라이빙 센터에서 근무하는 김현권 크루는 “시승코스를 모두 8가지로 짰다. 단순하게 시승만 하는 게 아니라, 가망 고객들의 주행과 운행 환경을 고려한 코스를 마련했다”라고 말했다.
최대 2시간까지 이어지는 시승 코스는 국도와 도심, 고속도로 등으로 짜여있고 시승 고객이 코스를 고를 수 있다.
현대차는 국내 전기차 시장 활성화 차원에서 타사 전기차 이용 고객에게도 현대 EV 스테이션 강동을 개방했다.
충전 방식만 같다면 국산차와 수입차를 가리지 않고 충전소를 이용할 수 있다. 현재 르노삼성과 르노 전기차를 제외한 대부분의 전기차 모두 자유롭게 충전할 수 있다.
한 가지 안타까운 점도 있다. 포르쉐 전기차까지 충전이 되는데 정작 현대차의 포터 전기차는 충전이 어렵다. 같은 플랫폼을 쓴 봉고3 EV 역시 마찬가지다.
국내 1톤 전기 화물차는 운전석 쪽 적재함 아래쪽에 충전구가 달려있다. 문제는 위에서 내려오는 충전 케이블이 짧아 1톤 전기 화물차의 충전구까지 닿지 않는다.
현대차 관계자는 “초고속 충전소의 출범 초기인 만큼 여기에서 발견한 문제점 들을 단계적으로 해결하고 더 많은 고객이 해당 충전소를 활용할 수 있도록 개선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올해 고속도로 휴게소 12곳과 전국 주요 도심 8곳에 총 120기의 초고속 충전기를 설치할 예정”이라며 “세계 최고 수준의 전기차 개발과 보급에 앞장서는 동시에 전기차 충전 인프라 확충에도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