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실 풍경] “하루만 더 입원하게 해주세요.”

입력 2021-01-26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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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유미 전북대병원 산부인과 의사

대학병원 산모들의 주치의인 나에게, 요즘 고민이 있다. 산모들을 어떻게 설득해야 퇴원시킬 수 있을까. 하루에도 몇 번씩 설득해 보려 노력하지만, 역으로 내가 설득되는 일이 부지기수다. 코로나 시대에 분만실도 많은 변화를 겪고 있는데, 우리 진료실에서 요즘 가장 자주 볼 수 있는 풍경 중 하나가 입원 기간을 연장해 달라는 산모들의 부탁이다.

이유는 이렇다. 최근 코로나19 감염 확산으로 병원 내 신생아집중치료실 면회가 전면 금지됐는데, 이 기준이 엄마 아빠에게까지 적용되어 ‘원내에 재원 중인 산모’에 한에서만 하루 1회 신생아 면회를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퇴원한 이후에는 아무리 엄마 아빠여도 면회가 불가하다는 이야기이다. 이 때문에 산모는 분만 후 잘 회복하여 퇴원할 수 있게 되어도 이런저런 문제로 신생아가 같은 날 퇴원하지 못한다면, 퇴원과 동시에 이 둘은 생이별을 해야 한다. 병원 내 면회금지 제도가 연장되면서 심지어는 백일이 다 될 때까지 아빠 얼굴 한 번 못 본 아기들도 있다.

의사이기 이전에 두 딸아이의 엄마이기에, 산모들의 딱한 사연을 듣고 나면 이내 백기를 들고 만다. “응급 상황 때 사용할 병실이 정말 안 남았는데, 진짜 딱 하루만 더 계셔야 해요, 더는 안 돼요.” 나는 다음번에 또 질 것을 알면서도 괜한 으름장을 놓으며 병실을 나섰다. 이 지독한 바이러스로 어제까지 엄마의 태반과 양수로 삶의 모든 것을 공유하던 모자지간이 어느 날 갑자기 생판 남이 되어 버린 것 같아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태아’에서 ‘신생아’로 생애 첫발을 내딛는 아기들에게 이런 혹독한 현실부터 맞닥뜨리게 해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코로나19로 병원은 ‘전장’이 되었고, 분만실과 신생아실은 ‘최전선’이 되었다. 지금 이 순간 바이러스의 빠른 감염력, 높은 치사율보다 무서운 것은 이 작은 바이러스로 무엇보다 축복받아야 할 분만과 출생의 순간마저 격리되고 차단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 아기의 하루는 어땠을까. 가져다 준 모유는 잘 먹었을까. 춥지는 않을까. 오늘 막 퇴원하는 산모가 굳게 닫힌 신생아실 앞을 차마 떠나지 못하며 서성이고 있었다. 그녀의 뒷모습을 보면서 주치의인 나는 어떤 위로도, 치료도 해줄 수 없었다. “하루만 더 입원하게 해주세요.” 그녀의 부탁을 한 번만 더 들어줄 것을 그랬다.홍유미 전북대병원 산부인과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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