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석] 언론인이 본 언론가 '율곡'…임철순 "소통 안 되는 사회, '언로'가 막힌 탓"

입력 2021-01-28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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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역시 '현직'…팩트 먼저 확인하고 기울지 않는 논평하는 언론 돼야"

▲'한국의 맹자 언론가 이율곡'의 저자 임철순 주필이 서울 동작구 대방동 이투데이빌딩 eT라운지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고이란 기자 photoeran@
▲'한국의 맹자 언론가 이율곡'의 저자 임철순 주필이 서울 동작구 대방동 이투데이빌딩 eT라운지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고이란 기자 photoeran@
'율곡전서'에 실린 상소문은 130편에 달한다. 12년이 채 안 되는 벼슬살이 기간이었지만 율곡 이이는 명종·선조에게 수없이 글을 써 올렸다.

율곡은 왕의 면전에도 직언과 고언을 쏟아낸 인물이었다. "흥성했던 시기로 돌려놓겠다는 뜻을 세우고 학문을 통해 뜻을 강하게 하고 공정한 도량을 넓히고 현명한 선비들로부터 훌륭한 조언을 받고 신하가 임금께 말을 아뢸 때 시간에 구애되지 말고 직접 아뢰게 하시라"는 내용이 담긴 상소 '만언봉사(萬言封事)'를 선조에게 올리기도 했다.

1974년 한국일보에서 기자 생활을 시작해 편집국장과 주필을 지내고 2018년까지 이투데이 이사 겸 주필을 역임한 임철순 씨는 이러한 율곡의 면모를 주목했다. 그리고 임 씨는 율곡을 '조선의 주필'이라 말했다.

최근 이투데이 사옥에서 만난 임 씨는 "시대가 변해도 언론의 기능과 소통의 의미는 달라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왕이 생각하는 바를 말하고 신하가 의견을 내면서 서로 소통하고 의사 교환할 수 있는 '언로(言路)'가 막혀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임 씨는 율곡이야말로 언론인에게 필요한 자질을 두루 갖추고 시종여일 언론의 역할에 충실했던 사람이라고 정의했다. 실제 율곡은 관직 생활 대부분 언론 기관인 삼사(三司)에서 보냈다.

"율곡의 '식시무(識時務)'에 대해 말하고 싶었습니다. 때를 맞춰서 해야 하는 일이 있다는, 중요하게 다뤄야 할 일이 있다는 의미죠. 또 율곡은 선조에게 '옳은 것이 그른 것을 이기지 못하고 공공의 것이 개인적인 것을 이기지 못하니 나라가 되겠습니까'라고 강조합니다. 이 말들이 필요한 때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율곡에게 '언론인'이 아닌 '언론가'라는 수식어를 붙였다. 율곡이야말로 언론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을 갖춘 사람이자 사상가, 철학가라는 판단에서다. 나아가 임 씨는 율곡을 '한국의 맹자'라고 했다.

▲임 주필은 "시대가 변해도 언론의 기능과 소통의 의미는 달라지지 않았다"며 "옳은 것을 향해 의견을 모으고 행동해야 진정한 언론인"이라고 강조했다. 고이란 기자 photoeran@
▲임 주필은 "시대가 변해도 언론의 기능과 소통의 의미는 달라지지 않았다"며 "옳은 것을 향해 의견을 모으고 행동해야 진정한 언론인"이라고 강조했다. 고이란 기자 photoeran@

"율곡은 조선의 왕이 명종에서 선조로 바뀌었어도 세상이 달라지지 않자 변화해야 할 점, 문제점들을 계속해서 상소했어요. 언론인도 왕조가 바뀌었다고, 대통령이 달라졌다고 태도가 변해선 안 되잖아요. 옳은 건 항상 있습니다. 그것을 향해 의견을 모으고 행동을 해야 진정한 언론인입니다. 율곡이 보여줬죠."

율곡은 "정론(正論)이 아니라 부의(浮議)가 세간에 돌아다니면 나라가 혼란스럽다"고 했다. 조선 시대 역시 실체를 알 수 없는 '가짜뉴스'에 사회가 혼란을 겪었음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조선 시대의 부의는 덜 정교했죠. 하지만 그때랑 비교했을 때 지금은 굉장히 정교하게, 의도를 갖고 생산 제작되잖아요. 조선 시대엔 '가짜네'하고 끝나지만 지금은 전승되고 그것을 바탕으로 또 다른 이야기가 만들어지죠. 그럴 때일수록 생각이 제대로 박힌 언론인들이 할 일이 더 많아진다고 봅니다."

임 씨는 율곡 이후 그의 정신을 이어받은 인물은 '아직 없다'고 했다. 스스로 정신을 이어받았는지에 대해서도 "아니다"라고 했다. 임 씨는 시대의 문제에 대해 권력자에게 할 말을 다 했느냐고 바꿔서 말한다면 자신은 한참 미달이라고 했다. 그러므로 율곡의 정신을 퍼뜨리고 싶었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문제를 지적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해결책을 제시하는 겁니다. 문제라는 말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그럼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 말한 사람은 조선왕조 시대엔 율곡밖에 없었죠. 물론 '성호사설' 등 재야에서 책으로 이런저런 이야기, 방책을 제시하는 이들은 있었지만 현장에서 현직을 맡아 책임을 다한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임 주필은 언론인들이 해야 할 일이 많다고 했다. 그는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는, 책임을 다한 언론인이 되길 바란다"고 후배 언론인들에게 조언했다. 고이란 기자 photoeran@
▲임 주필은 언론인들이 해야 할 일이 많다고 했다. 그는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는, 책임을 다한 언론인이 되길 바란다"고 후배 언론인들에게 조언했다. 고이란 기자 photoeran@

임 씨는 후배 언론인들에게 '냉엄하고 객관적으로 보도할 것'과 '전체적인 맥락이나 역사적인 줄기에서 어떤 의미인지 해설하고 옳고 그름을 논평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팩트 전달에서 문제가 있어선 안 되고, 공정 보도를 해칠 수 있는 특정 진영에 서지 말 것을 당부했다. 중요한 사건이 있는데, A 신문은 대서특필하고 B 신문은 다루지도 않는다면 '언론'이 아니라는 게 임 씨의 생각이다.

"자신이 서 있는 위치에서 무엇이 진실인지 무엇이 거짓인지 가려서 알려주는 일부터 해야겠죠. 그게 안 되면 논평들은 의미가 없어집니다. 이 모든 기능을 아무런 갈등 없이 회복하는 것, 이게 언론인에게 필요한 자세입니다."

임 씨는 자신 역시 '현직 언론인'이라고 했다.

"사람은 젊은 시절엔 자신이 뭘 할지 몰라요. 하지만 어느 순간 자신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삶과 삶의 방식이 결정됩니다. 그것에 대해 회의를 하고 살 것인지, 아니면 충실하게 살 것인지는 알 수 없겠죠. 저는 지금도 언론인이라고 낙인 찍혀있습니다. 앞으로 다른 뭐가 될진 알 수 없지만요. 다만 가능성은 늘 품고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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