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경아의 라온누리] 붕어빵엔 ‘기다림’이 있다

입력 2021-01-27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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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부 교열팀장

한겨울 소리에선 맛이 느껴진다. ‘탁탁’. 알밤이 불 위에서 껍데기를 벗는 소리. ‘타다닥탁’. 겨울밤 도마 위의 칼소리. 어쩌면 시인 백석이 노래한 ‘국수’를 먹을 수도 있겠다. “아, 이 반가운 것은 무엇인가/ 이 히수무레하고 부드럽고 수수하고 슴슴한 것은 무엇인가/ 겨울밤 찡하니 익은 동치미국을 좋아하고/ 얼얼한 댕추가루를 좋아하고 싱싱한 산꿩의 고기를 좋아하고…”

겨울밤 빼놓을 수 없는 맛있는 소리는 “메밀묵~ 찹쌀떡~”이다. 어린 시절 이불 속에서 나와 내복 바람으로 먹었던 찰떡의 쫄깃함은 아직도 혀끝에 남아 있다. 찹쌀떡을 감싼 뽀얀 전분이 가족 누군가의 입가에 묻으면 한바탕 웃곤 했다. 달곰한 기억을 떠올릴 때마다 행복한 미소가 절로 난다. 지금도 한밤중 “메밀묵~ 찹쌀떡~” 소리가 들리는 동네가 있을까?

20·30대 젊은층은 ‘끼이익’ 소리에 입맛을 다신단다. 붕어빵 만드는 무쇠 틀이 돌아가는 소리다. ‘붕세권’이라는 신조어도 생겼다. 붕어빵 만들어 파는 트럭 근처를 뜻하는 말이다. 붕어빵의 따듯한 ‘살’과 달콤한 ‘내장’에 빠진 젊은이가 많은가 보다. 식어서 축 늘어진 붕어빵은 제맛이 나지 않으니 ‘붕세권’이 뜰 만도 하다.

붕어빵 속에 ‘기다림’이 있다는 걸 젊은이들은 알까? 오래전 아버지들은 퇴근길 누런 봉투 속 붕어빵이 식을세라 품에 안고 부리나케 뛰어 다녔다. 우리 아버지도 그랬다. 다섯 아이가 동그랗게 앉아 한 마리씩 들고 ‘호호’ 불어가며 먹으면, 그제서야 빙그레 웃으셨다. 아버지는 알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 아들·딸들이 대문 앞에서 아버지와 붕어빵을 기다렸음을.

이화은이 읊은 ‘붕어빵 굽는 동네’에는 우리들의 아버지가 살고 있다. “…달아오른 철판 위에서 붕어들이/몸부림칠 때쯤 귀갓길의 남편들/산란의 따끈한 꿈을 한 봉투/가슴에 품어 안는다//…붕어빵 같은 아이들의 따스한 숨소리가/높다랗게 벽지 위에 걸린다/기념사진처럼”

붕어빵도 피자, 햄버거처럼 물 건너온 먹거리다. 일본의 도미빵(다이야키·도미 모양의 빵)이 원류다. 1909년 도쿄에 있는 ‘나니와야’에서 처음 만들었으니 백 살이 넘었다. 도미빵과 붕어빵의 차이가 궁금해 나니와야에 간 적이 있다. 맛은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거의 같았다. 모양은 붕어빵이 도미빵보다 몸통이 오동통하고 꼬리가 부드러워 유순해 보였다. 순하고 착한 우리 민족처럼.

붕어빵이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은 1930년대다. 이후 1950~60년대 굶주린 도시민들의 점심 대용으로 널리 퍼졌다. 90년대에는 복고 열풍이 불면서 ‘붕어빵 르네상스 시대’가 열렸다. 지금은 붕어빵보다 크고 고급스러운 잉어빵, 슈크림을 품은 붕어빵, 치즈를 안은 붕어빵, 김치 붕어빵, 잡채 붕어빵 등 어종도 다양해졌다.

올겨울엔 ‘대동붕어빵여지도’가 화젯거리로 떠올랐다. 붕어빵 마니아들이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에서 착안해 동네의 붕어빵집을 찾아보기 쉽게 정리한 지도다. 붕어빵이 당길 땐 지도 속 동네로 가야 할 정도로 노점이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물가 상승으로 재룟값이 크게 오른 탓이다.

천 원에 다섯 마리 주던 우리 동네 붕어빵집 할머니는 “팥값이 너무 올라 세 마리만 주려니 손이 부끄러워”라며 미안해하신다. “두 마리 주는 데도 있으니 그러지 마세요”라는 말에 “용기를 줬으니 한 마리는 선물” 하며 덤을 준다.

소설가 백수린의 말처럼 붕어빵은 ‘낱개로는 구할 수 없는 빵’이다. 좋은 사람과 나눠 먹기 딱 좋은 간식이다. 눈 내리는 날 길거리에서 갓 구워 김이 모락모락 나는 붕어빵을 누군가와 함께 먹은 기억이 있는가. 참 행복하겠다. 오늘 당장 붕어빵 추억을 만드는 것도 좋겠다. jsjy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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