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택배산업 성장의 명과 암

입력 2021-01-28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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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 유럽여행 중에 만난 가이드는 한국에서 그리운 것 중 하나가 ‘택배’라고 했다. 그곳에서는 식재료를 배송시키면 다 상한 뒤에나 도착하고, 물건이 분실되는 경우도 많아서다. 그는 몇 번 그런 일을 당하고 난 뒤에는 주변 사람들에게 택배로 물건을 보내지 말라고 신신당부한다고 했다.

반면 우리 일상에서는 주문한 물건이 예고된 시간에 배송되는 게 당연하다. 당일, 새벽 배송도 생활 속에 자리 잡았다. 분실 염려도 거의 없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상황 속에서도 다른 나라와 달리 ‘사재기’로 인한 혼란을 겪지 않은 데는 택배를 통해 생필품을 조달할 수 있는 시스템이 큰 역할을 했다. 직접 만남이 어려워지면서 이번 명절에는 택배를 통해 정성을 표현하는 이들이 더욱 많을 것으로 보인다.

택배산업은 급격히 성장했다. 국내 택배 물동량은 2010년 11억9800만 박스에서 2019년 27억8900만 박스로 10년 새 2.5배가량 늘었다. 지난해에는 30억 박스를 넘어선 것으로 추정된다.

어두운 면도 존재한다. 비대면 소비가 확산하면서 택배 물량이 크게 증가하자 택배기사의 사망 사고가 이어졌다. 택배노조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에서 택배기사 16명이 과로로 숨졌다.

지난해 말 택배회사들은 고개 숙여 사과하고 대책을 내놓았다. 21일에는 노사정이 참여하는 사회적 합의 기구에서 분류작업 인력 투입, 분류작업 업무의 택배사 책임 명시, 심야 배송 제한 등을 담은 합의문을 도출했다.

그러나 양측이 모두 만족하는 합의점에는 이르지 못한 모양새다. 노사정 합의는 엿새 만에 사실상 무효가 됐다.

다시 한번 대화와 양보가 필요하다. 어렵게 이룬 사회적 합의를 쉽게 깨버려서는 곤란하다. 사측은 수행해야 할 책임을 게을리하지 않았는지, 노조는 너무 많은 요구를 한 것은 아닌지 되돌아봐야 한다.

아울러 소비자도 대가를 정당하게 치러야 한다. 근로시간 단축, 분류인력 투입을 위해서는 비용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편리함은 당연한 게 아니라 그 뒤에 누군가의 노동과 희생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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