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르반테스의 소설 ‘돈키호테’에서 돈키호테가 죽자 그와 같은 마을 사람이며 학사인 삼손 카라스코가 그를 위해 지은 묘비명의 일부다.
풍차에 돌진하는 등 괴짜와 광기 행보로 유명한 돈키호테지만, 그의 결말을 아는 이는 의외로 많지 않은 것 같다. 그는 그가 나름 기사로서 가장 유명해졌다고 생각하던 때 불현듯 나타난 ‘하얀 달의 기사’와의 결투에서 패하면서 고향으로 되돌아간다. 돈키호테는 결투에서 패한 해변가에서 “여기가 트로이였어! 여기서 나의 비겁함이 아닌 나의 불운이 영광들을 가져가 버렸지”라며 절규한다.
하얀 달의 기사는 바로 앞서 언급한 삼손 카라스코. 카라스코는 이 결투 석 달 전쯤에도 그의 광기 행보를 막기 위해 ‘거울의 기사’로 변장해 돈키호테와 결투를 벌였지만 예상 밖으로 패한 바 있다.
돈키호테는 결투의 조건을 지키기 위해 기사를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왔고, 얼마 지나지 않아 병들어 죽었다. 그가 이렇게까지 된 데는 결투에서 패했다는 것, 그가 사랑했던 둘시네아가 마법에서 풀려 자유롭게 하고 싶다는 소망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 때문일 것이라고 소설은 추정하고 있다. 편력기사로서의 꿈을 꿨던 돈키호테. 하지만 주변사람들은 그의 허황된 꿈과 행동을 조롱했다.
3200선을 돌파하며 고공행진을 펼치던 코스피지수가 17거래일 만에 3000선을 밑돌았다. 지난달 25일 3208.99(종가기준)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던 코스피지수는 불과 4거래일 동안 232.86포인트(7.26%)나 폭락했다. 같은 기간 외국인은 5조6225억 원어치를, 기관은 3조2819억 원어치를 각각 순매도한 반면, 개인은 8조8919억 원어치를 순매수했다. 외국인과 기관의 쌍끌이 매도를 개인이 나홀로 매수하며 지수방어에 나선 셈이다.
코스피지수는 작년 10월 말 2260선에서 불과 3개월 만에 1000포인트가량 급상승했다. 이번 조정이 대세하락으로 이어질지 잠깐 동안의 조정일지는 아직 단정짓기 어렵다.
코스피 3000 시대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영끌(영혼까지 끌어내 투자)과 빚투(빚내 투자)로 대표되는 개인투자자들의 투자가 견인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초저금리와 풀린 유동성으로 갈 곳 없는 돈과, 이번이 아니면 투자 기회는 없다는 심정이 맞물린 탓이다. 이는 국내 주식투자인 동학개미운동에서 해외 주식투자까지 나서는 소위 서학개미운동으로까지 확산했다.
그 사이 가계 빚도 눈덩이처럼 불어 국내 경제성장 규모를 넘어섰다. 지난해 3분기 말 기준 명목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신용은 101.1%로 사상 처음으로 100%를 넘었다.
과열 조짐에 대한 경고도 강화되고 있는 중이다. 세계적인 투자가 짐 로저스는 거품 붕괴 우려를 설파하고 있다. 꼭 거품 붕괴까지는 아니더라도 주요 투자자들은 물론이거니와 당국에서까지 경고신호를 울리기 시작했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도 지난달 15일 금융통화위원회 기준금리 결정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자산가격 버블은 오래전부터 많은 논의의 대상이 됐던 이슈로 사전적으로 판단하기는 어렵다”면서도 “주가 상승 속도가 과거에 비해 대단히 빠른 것은 사실이다. 조그마한 충격에도 흔들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코로나19가 세계적으로 다시 확산하고 있으며, 변종 바이러스까지 발생하고 있다. 백신 접종이 시작됐지만, 공급이 원활치 않고 부작용 우려도 들려오고 있다.
지금의 코스피 상승세는 2017년 말부터 2018년 초까지 이어진 비트코인을 비롯한 가상화폐 급등을 연상시키기 충분하다. 당시 필자는 ‘[김남현의 경제 왈가왈부] 가상화폐, 화폐는 가고 투기만 남았다?!’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당시 거품을 경고하고 투자의 정석을 소개한 바 있다.
그중 한 대목을 소개하면 ‘투자는 벌기 위해 시작하지만 결국 잃지 않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주식이든 부동산이든 투자를 하려면 그보다 더 비싼 값으로 사줄 수 있는 매수 주체가 있다는 기대가 있어야 한다.
지금 개미투자자들의 나홀로 매수세는 돈키호테의 광기와도 같다. 카라스코의 도전이 아니더라도 불현듯 찾아온 패배에 많은 것을 잃을 수도 있다. 2018년 초 가상화폐의 붕괴까지는 아니더라도, 지금은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할 때다.kimnh21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