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모두가 안전할 때까지 아무도 안전하지 않다

입력 2021-02-02 18:18 수정 2021-02-03 2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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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영 부국장 겸 유통바이오부장

2021년이 밝아온 후 전 인류의 최대 관심사는 언제쯤 코로나19 팬데믹에서 벗어나 정상적인 일상을 되찾게 될 것인지다. 전 세계 인구 1억 명 이상이 감염됐고 224만 명이 목숨을 잃은 코로나 바이러스와의 지루한 전쟁을 끝내려면 방역의 최종병기가 바로 백신이다. 특히 팬데믹을 완전하게 종식하려면 세계 곳곳에서 비슷한 시기에 백신이 고르게 공급돼 집단 면역이 형성돼야 한다.

전 지구적 위기에 세계 각국과 글로벌 빅파마들이 ‘mRNA’라는 새로운 백신 개발 기술을 적용하는 등 기대 이상으로 이른 시간 내 백신을 개발했거나 개발 중이고, 각국이 임상 시험 속도를 앞당기는 등 행정적 절차를 간소화해 빠르게 백신을 도입하는 데 성공했다. 지난해 말부터 미국과 영국 등을 시작으로 화이자와 아스트라제네카 등의 백신 접종이 진행되고 있다.

그런데 백신 접종이 시작되면 코로나의 족쇄에서 어느 정도 풀려날 줄 알았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아 보인다. 백신이 충분히 공급되느냐 하는 ‘물량’의 문제, 그리고 누구에게 먼저 공급되느냐 하는 ‘분배’의 문제로 또다시 시험에 빠진 느낌이다.

전 세계에 비슷한 시기에 백신이 공급돼 집단 면역이 형성돼야 코로나가 종식된다는 대전제 앞에서 백신은 세계보건을 위한 공공재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더 먼저 일상으로 복귀하고 경제를 회복시키려는 각국의 욕심 앞에서 백신은 서로 뺏고 빼앗는 경쟁 상품이 되고 있다.

이미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이자 빌앤멜린다 게이츠 재단 공동이사장은 팬데믹으로 번지기 시작할 무렵부터 “이르면 1년 안에 백신을 개발할 수 있으나 백신의 대량 생산이 시작되더라도 분배 문제로 갈등이 커질 것”이라고 우려한 바 있다.

이런 상황이 어느 정도 예견됐던 만큼 국제 사회는 지난해 봄 코백스 퍼실리티(COVID-19 Vaccines Global Access)라는 190개국이 참여한 다국적 연합체를 만들어 협력을 준비했다. 최소 20억 회분을 2021년 말까지 공평하게 공급해 국가별로 인구의 20% 접종을 위한 물량을 배분하면 코로나 확산세가 잡힐 것으로 봤다.

하지만 국제 협력은 구속력이 없다. 지키면 좋지만 반드시 지키지 않아도 불이익이 없다. 결국 모든 국가들이 달려들어 전쟁하듯 백신 도입 경쟁에 나서면서 세계 인구의 16%에 불과한 부국들이 지구촌 백신 공급물량의 총 60%를 확보한 상태다. 백신이 부국으로 쏠리면서 백신 수급 사정도 한층 불안정해졌다.

현재의 접종률로는 올 연말까지 세계 인구의 10%, 2022년 말까지도 20% 정도만이 백신 접종을 하는 데 그칠 것(글로벌 투자은행 UBS)이라는 우울한 전망이 나왔다. 세계 각국이 ‘백신 평등주의’의 도덕과 윤리를 내던지는 대신 돈으로 ‘백신 민족주의’를 성공시킬 조짐이다.

백신 접종의 격차는 먼저 접종한 나라에 일상 생활 복귀까지는 제공할 수 있겠지만 글로벌 경제 회복은 요원하게 만들 것이라는 경고도 나온다. 국제상공회의소가 발표한 보고서는 백신 접종이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사이에 균등하게 분배되지 않으면 세계 경제가 9조 달러에 달하는 경제 손실을 입게 될 것이라고 추산했다.

사실 인류 역사상 수많은 바이러스가 만들어졌지만 현대 의학이 자연에서 완전히 없앤 바이러스는 천연두 단 한 종뿐이라고 한다. 3000년 동안 천연두는 지구상 그 어떤 질병보다 더 많은 목숨을 앗아갔고 심지어 십자군 전쟁, 콜럼버스의 신대륙 정복 등 세계사의 장면을 바꿔놓은 주인공이기도 했다.

코로나19 바이러스도 결국 인류 곁에서 오랜 세월 우리와 대대손손 함께 살아가게 될 것이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백신을 확보하는 것’보다 ‘모든 사람이 백신을 접종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역학자 래리 브릴리언트 박사는 이런 말을 했다. “한 국가가 예방접종을 받지 않은 상태로 방치되면 어디에선가 질병은 튀어나온다.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이 안전할 때까지 아무도 안전하지 않다.”

정답은 모두가 알고 있다. 하지만 완벽한 코로나 백신과 치료제가 등장해 일상으로 회복하기까지 세계 각국은 ‘전 세계에 대한 도덕적 의무’와 ‘자국민 안전을 보호하려는 국가 우선주의’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며 거듭 시험에 빠져들게 되고, 안타깝게도 회복 시기는 더 늦춰질 가능성이 커 보인다. hy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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