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임원도 실제로 대표이사의 지휘·감독 아래 일정한 업무를 하고 보수를 받았다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하므로 퇴직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4일 대한법률구조공단에 따르면 의정부지법 고양지원은 지난해 12월 건설회사인 A 사에서 전무로 근무하다 퇴직한 이모 씨(71)가 회사를 상대로 제기한 퇴직금 청구소송에서 "퇴직금 9400만 원을 지급하라"며 원고승소 판결했다.
이 씨는 1985년 평사원으로 입사해 2010년 상무, 2014년 전무로 승진했다. 이후 2016년 11월부터 이라크 공사현장의 현장소장으로 근무하다 2017년 4월 퇴직했다.
A 사는 이 씨가 임원으로 승진한 이듬해인 2011년 주주총회와 이사회를 열어 임원에 대해 연봉제를 시행하고 퇴직금은 지급하지 않기로 의결했다. 이에 따라 이 씨는 입사 이후 25년 근무에 따른 퇴직금을 일시에 받았다.
이 씨는 6년간 더 근무한 뒤 2017년 퇴사하면서 해당 기간에 대한 퇴직금을 요구했지만 A 사가 거절하자 법률구조공단을 통해 소송을 제기했다.
A 사는 이 씨가 임원으로서 경영에 참여했고, 이라크 공사현장 전반에 대해 최종 결재권을 비롯한 상당한 재량권을 가지고 있었던 점을 들어 법률상 근로자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퇴직 당시 회사와 고용관계가 아닌 위임관계를 맺고 있었다고도 밝혔다.
그러나 법원은 △이 씨가 등기이사가 아닌 점 △대표이사가 지정한 근무지에서 근무하면서 출퇴근 관리를 받은 점 △이라크 현장소장 근무 당시 경영상 판단이 아닌 이미 정해진 업무를 구체적으로 수행하는 데 불과한 점 △2011년 퇴직금 지급 전후로 업무와 지위에 변화가 없는 점 등을 이유로 이 씨가 근로자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법률구조공단 황철환 변호사는 “등기 여부를 떠나 기업 임원이 근로자에 해당하는지에 대한 다툼이 많아지고 있다”며 “큰 추세는 단순히 고액 임금을 받고 상무이사, 전무이사 등의 직위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근로자성이 배제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라고 설명했다.
A 사는 1심 판결에 불복해 올해 1월 항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