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공단 폐쇄 5년] “버티기 힘들다. 차라리 청산 기회라도 달라“

입력 2021-02-08 18:32 수정 2021-02-09 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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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공단 입주기업 녹색섬유가 폐쇄되기 전 공장에서 북한 근로자들이 일하고 있는 모습.
▲개성공단 입주기업 녹색섬유가 폐쇄되기 전 공장에서 북한 근로자들이 일하고 있는 모습.

창고 겸한 공장서 생산·유통까지
근로자 200명서 현재 6명으로
정부 지원책은커녕 사과도 없어
"명예롭게 퇴장하게 대한 마련을"

2016년 설 명절은 개성공단 입주업체 임원이었던 박용국 씨에게 악몽이었다. 설 연휴에 개성공단 전격 폐쇄 결정이 내려져서다. 공장 정리를 위해 정부가 제시한 시간은 불과 2박 3일이었다. 급박한 상황이었다. 공단 내 중기 업체인 녹색섬유의 개성공단 법인장이었던 박 씨는 물류기사와 단둘이 급히 개성공단으로 향했다. 공장에 도착하자마자 중요한 재재와 반제품, 완제품을 탑차에 실어 서울로 보낸 뒤 사무실에 홀로 남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북한 당국자가 오후 5시까지 남한으로 떠나라고 지시했다. 그는 결국 대부분의 자재를 챙기지도 못한 채 서울로 돌아왔다. 그것이 그의 마지막 출근길이었다.

그렇게 5년이 흘렀다. 그가 이사로 있는 작업복 제작업체 녹색섬유는 현재 간신히 버티고 있다. 매출은 공단 폐쇄 후 5분의 1로 줄었다. 주력 생산공장이 사라지자 거래처도 모두 떨어져 나갔다.

개성공단에서 한때 남쪽 직원 스무 명에 북한 근로자 300명으로 운영했던 공장의 현재 직원 수는 단 6명뿐이다. 건물만 3966㎡(1200평)에 달했던 공장은 온데간데없고, 지금은 창고 겸 사무실로 쓰는 성동구의 좁은 공간에서 생산부터 유통까지 하고 있다. 벽엔 빛바랜 개성 공장 사진과 통일부 표창장만 쓸쓸히 걸려 있다.

4일 이투데이와 만난 박용만 녹색섬유 대표는 담담했다. 5년이란 세월의 더께에 무뎌진 것 같았다.

그는 “개성공단 입주기업 대다수가 우리처럼 명맥만 유지하고 있다”며 “휴폐업 상태인 기업이 많다”고 전했다.

보석함 제작업체 A사는 폐업했다. 세무조사와 개성공단 폐쇄라는 악재가 겹쳤다. 7억 원에 달하는 세금을 추징당했지만 공장이 문을 닫아 자금을 끌어올 수 없었다. 회사와 개인 자산까지 정리해 상당 부분을 납부했지만, 결국 회사를 처분해야만 했다.

자동차 연료펌프 제조기업인 대화연료펌프는 개성공단이 폐쇄된 지 3년 만에 부도났다. 개성공단이 문을 닫기 직전, 회사 연매출은 500억 원 수준이었다. 공장 증설뿐만 아니라 인도 등 해외 진출도 계획하고 있었다. 공단 폐쇄가 길어지면서 당진에 대체공장을 가동했지만 버틸수록 적자만 늘어갔다. 높은 임금 수준을 견디지 못해 결국 회생절차를 밟았다.

박 대표는 “4년 동안 (국가에) 호소도 하고 기자회견도 했지만 돌아오는 메아리는 없었다”고 하소연했다. 개성공단 입주기업을 위한 지원책은커녕 마땅한 사과도 없었다는 것이다. 답답한 마음에 2016년 헌법재판소에 위헌확인 헌법소원심판도 청구했지만, 지금까지 정식심리는 단 한 번도 열린 적이 없다.

차라리 개성공단을 청산하길 바라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다. 빚을 다 갚아야만 청산 절차를 밟을 수 있어서다. 대출 만기는 매년 돌아오고 있다. 매번 시중은행과 국가에 만기 연장을 호소하는 것도 일이다.

통일에 미력이나마 보탠다는 자부심도, 남·북한 국민이 힘을 합쳐 일한다는 보람도 이젠 힘을 잃었다. 개성에 남겨 놓고 온 자재들에 대한 아쉬움도 없다.

그는 “이젠 더 버틸 수가 없다. 청산을 해야 이자도 늘어나지 않고 다른 일도 할 수 있을 것”이라며 “명예로운 퇴장을 할 수 있게 정부가 대안을 만들어 달라”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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