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실 풍경] 코로나와 춤을

입력 2021-02-09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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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훈 닥터최의연세마음상담의원 원장,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의학박사, 연세대학교 명지병원 외래교수

“원장님, 정말이지 코로나로 죽기 전에 굶어서 먼저 갈 것 같아요.” 학원을 운영하는 50대 남성이 불안, 초조와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다. ‘저도 같은 입장이에요.’ 환자도 울고, 나도 운다.

같은 건물의 한 의사 선생님은 수입이 반의반, 거기서 또 절반으로 줄었다고 하소연한다. 복도에서 만나면 서로 힘내자고 격려를 건네는 것도 점차 식상해진다.

사실, 나는 입원실을 운영하고 있어 그들보다도 더 불안하다. 혹여라도 감염자가 나오는 날에는 2주 동안 그 끔찍하다는 ‘코호트 격리’ 조치를 당하게 된다. 자다가도 그 생각만 하면 벌떡 침대에서 일어나 앉게 된다.

‘한순간에, 개원 십 년간의 노력이 한 줌 재가 되어 버리면….’ 이제는 나도 환자들 못지않게 불안, 초조와 불면을 느낀다. ‘참 명색이 정신과 의사란 놈이….’

점심시간이다. 잠시 상념에 잠긴다. ‘처용은 역신이 자신의 집에 왔는데 오히려 춤을 추었지. 말이 쉽지….’

나도 비몽사몽간 코로나바이러스와 어울려 춤을 춘다. 코로나를 안고 한 바퀴 돌면서 생각해 본다. 혹시 우리 병원에 그런 일이 생긴다면, 그럼 문 닫고 오래간만에 푹 쉬는 거야. ‘너 그동안 휴가 한 번 제대로 못 갔잖아.’ 코로나를 안았다가 밀쳤다가 다시 당겼다가 한다. 자세히 보니 그리 무섭지도 또 그리 사랑스럽지도 않은 모습이다.

먼 훗날의 일이다. 손주 서넛이 내 주위를 둘러싸고 앉아 있다. 호기심이 가득한 눈동자로 대답을 재촉한다. “할아버지, 2020년 무렵에 어떤 전염병이 세계를 마비시켰다는 게 사실이에요? 그런 힘든 일을 겪고도 어떻게 견디실 수 있었어요?” 내 얼굴에 미소가 펼쳐진다. “사람은 말이다. 받아들이면 어떤 상황에도 적응할 수 있단다.”

환자가 왔다는 직원의 전화에 기분 좋은 백일몽은 끊어졌다.

“선생님, 코로나 때문에 요즘 불안이 더 심해졌어요.” “많이 힘드시죠? 저 또한 그렇습니다.” 환자도 울고 나도 운다.

면담 중 잠시 밖을 바라본다. 창밖의 하늘은 짙은 회색빛이지만, 구름 사이로 미세한 햇빛이 꿋꿋이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고 있다. 나도 그도 말없이 창 너머를 잠시 바라본다.

최영훈 닥터최의연세마음상담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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