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공무원 조직의 민낯

입력 2021-02-1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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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막 '시보'를 뗀 9급 공무원 A 씨는 남몰래 화장실에서 눈물을 훔쳤다. 자신이 준비한 '시보떡'이 쓰레기통에 들어가 있는 걸 본 이후다. 시보는 공무원 임용후보자가 정식 공무원이 되기 전 일정 기간 거치는 공무원 신분이다. 대개 시보가 끝나면 '그간 도와주셔서 감사하다'라는 문구와 함께 떡을 돌린다. A 씨는 형편이 어려워 간소하게 준비했지만 이를 못마땅하게 여겼는지, 팀장은 곧장 쓰레기통에 던졌다.

B 씨는 '과장님 밥 대접하는 날'을 준비하고 있다. 7급 공무원인 자신의 사비로 4급 과장에게 밥을 사줘야 한다. 입맛에 맞는 식당을 섭외하느라 분주한 내 모습이 한심하다. 하지만 이내 ‘나 정도는 괜찮다’고 체념한다. 다른 곳은 팀별로 돈을 걷어 일주일에 한 번 과장 밥을 사준다는 말을 들었다. 말단 직원이 돈을 모아 부서장 점심을 시켜주는 일도 허다하다. 과장이나 국장이 야근하는 날이면 한 사람이 남아 함께 저녁을 먹는 일도 많다고 했다.

길고 긴 ‘공시생’ 신분을 끝낸 젊은 공무원들. 첫 출근 때의 설렘, 세상을 다 가진 느낌이었을 테다.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몸과 마음이 으스러져 간다. '조직'의 일원이 되니 보이는 부조리와 폐습이 괴롭힌다. ‘좋은 게 좋은 거지’라는 지긋지긋한 관성 탓에 수면으로 드러나지도 않는다. 혹여나 윗사람들한테 찍히면 삶이 순탄치 않기에, "왜 너만 왜 유난이냐"는 비난을 듣고 싶지 않기에, 그만두면 갈 곳이 없기에 쓴 술로 속을 달랜다.

일부의 얘기겠지만, 그래서일까. 잊을 만하면 안타까운 소식이 전해진다. 서울시에는 2011년 10월부터 2018년까지 하위직 공무원 16명이 스스로 세상을 등졌다. 얼마 전 서울시립미술관 소속 7급 공무원도, 고용노동부 소속 9급 공무원도 극단적 선택을 했다. 서울 강동구에서도, 전북 임실군 공무원도 마찬가지다.

각각의 사연을 자세히 알 수는 없다. 다만 젊은 공무원들은 조직 문화도 하나의 원인이었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하급 공무원도 모자라 사회복무요원에게 기밀사항을 알려주고 일을 떠넘기는 구청과 주민센터의 행태는 여전하고, 어려운 업무를 책임지고 처리하라고 윽박지르는 상사도 있다.

경직된 조직문화, 업무 떠넘기기에 진상 민원인까지 상대하느라 청춘은 치이고, 깨지고, 좌절한다. 서울의 한 구청 공무원은 “이번에도 '함구령'이 내려졌다. ‘꼰대’들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5급 공무원인 김응준 씨는 저서 '그놈의 소속감'에서 "소셜한 조직이라 트러블이 생기면 피할 곳도 마땅치 않다. 일만 잘해서는 안 되는 조직이란 말을 일주일에 한 번씩 들으며 출근한다"고 썼다.

업무 외적 요소로 평가받는 일이 비일비재하고, 혹여나 문제를 제기하면 ‘트러블 메이커’ 딱지가 붙는 곳. 건강한 토론이 실종된 그곳에서 여러 젊은 공무원이 눈물과 목숨으로 질문을 던졌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느냐고. 이젠 ‘꼰대’들이 대답할 차례다. 과연 그들은 ‘라떼는~’으로 시작하는 그 연륜이 부끄럽지 않게 현명한 대답을 내놓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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