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전노예 피해자 손배소 2심도 패소…"법관의 잘못, 책임 묻지 말라는 것"

입력 2021-02-16 16:11 수정 2021-02-16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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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전 장애인 인권침해 대책 마련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의 염전노예 사건 가해자 엄중처벌 촉구 기자회견. (뉴시스)
▲염전 장애인 인권침해 대책 마련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의 염전노예 사건 가해자 엄중처벌 촉구 기자회견. (뉴시스)

'염전노예' 피해자가 가해자인 염전 주인에 대한 형사재판이 부실했다며 국가를 상대로 낸 국가배상 소송 항소심에서도 패소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항소8-2부(재판장 이순형 부장판사)는 16일 염전 노예 피해자 A 씨가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 항소심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

“재판장이 처벌불원서 검증 없이 반영”

A 씨는 2001~2014년 전남 신안군의 B 씨의 염전에서 감금과 폭행에 시달리며 노동력을 착취당했다. 재판에 넘겨진 B 씨는 2014년 1심에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으며 이후 2심 판결이 그대로 확정됐다.

당시 B 씨의 변호인은 피해자인 A 씨의 처벌불원서를 판결 선고 3일 전에 제출했다. 이를 아무런 검증 없이 반영한 재판부는 B 씨에게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하고 당시 '반의사불벌죄'였던 근로기준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는 공소를 기각했다.

그러나 이 처벌불원서는 B 씨의 변호인이 '처벌을 원치 않는다'고 인쇄된 종이에 A 씨의 자필 서명과 무인(拇印)을 받아 작성한 것으로 드러났다. A 씨는 지적장애 2급으로 자신의 이름 외엔 한글을 읽지 못한다.

이 사건의 2심 재판부는 "피고인은 당심에 이르도록 피해자와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며 1심에서 인정한 처벌불원서의 효력을 배척했다. 그러나 검찰이 근로기준법 위반 혐의에 대해 항소하지 않으면서 유죄 판결은 내려지지 않았다.

그로부터 3년 뒤인 2017년 A 씨 법률대리인은 B 씨 재판에서 처벌불원서를 써준 적이 없음에도 해당 재판부가 확인도 없이 오인해 집행유예를 선고하는 등 부실한 재판을 했다며 국가를 상대로 1억 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법관의 잘못은 따질 수 없다?…증인 신청 불허

1심 재판부는 A 씨 측이 주장하는 사실관계를 모두 인정하면서도 대법원 판례를 인용해 '법관에게 부정한 목적이 있었는지', '주의 의무를 현저히 위반한 것인지' 인정할 증거가 없다며 원고의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A 씨는 항소심에서 당시 사건 관련 법관 등을 증인으로 신청했으나 재판부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에 재판부 기피 신청도 냈지만 대법원에서 기각됐다.

A 씨는 법관이 장애인 피해자의 처벌불원서를 별다른 검증도 없이 받아들인 것이 장애인차별금지법상 차별 행위라며 청구 취지를 추가했다.

그러나 항소심도 "원고의 항소 및 당심에서 추가된 청구 모두 기각한다"며 원고 패소 판결했다.

선고 후 A 씨의 소송대리인 최정규 변호사는 "당시 사건 (1심) 재판부는 한글도 전혀 읽을 수 없는 지적장애 2급인 A 씨의 처벌불원서는 인정하면서 이보다 가벼운 지적장애 3급의 다른 피해자의 처벌불원서는 인정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어 "법관의 잘못에 대해서는 충분한 근거를 가지고도 물어볼 기회를 허락받지 못하는데 무엇을 더 입증할 수 있겠느냐"며 "결국 재판부의 논리는, 법관의 자유 판단에서의 잘못에 대해 절대 민사상 책임을 질 수 없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최 변호사는 "누구나 잘못 할 수 있지만, 그에 따른 책임을 져야 한다"며 "법관이 잘못했을 때 더 엄격한 책임을 진다는 전제하에 국민이 판사들에게 권한을 부여한 것인데, 이런 상황이라면 어느 시민이 법관에게 판결 권한을 맡길 수 있겠는가"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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