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헬 구리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사무총장이 17일 한국의 4차 긴급재난지원금 보편·선별 지급 논란에 대해 “국내외 여러 경제전문가가 지적한 바와 같이 지원이 가장 필요한 계층으로 대상이 정해진 표적 지원책은 보다 큰 승수효과를 유발해 전 국민 지원금에 비해 민간소비를 큰 폭으로 촉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구리아 사무총장은 이날 한국개발연구원(KDI) 주최 ‘WHAT’S NEXT? KDI가 본 한국경제 미래과제’ 국제컨퍼런스를 기념해 진행된 한국 취재진과 사전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하면서 “이 어려운 시기에 지원책에서 누락되는 대상을 최대한 줄일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어 “늘 그렇듯 실제로 누가 지원대상에 포함되고, 얼마나 많은 지원이 필요한지에 대한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이 난제”라며 “하지만 어느 정도의 표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것은 명백하다”고 부연했다.
구리아 사무총장은 “공공의 재원인 만큼 효율적으로 사용될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특히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고령화가 진행되는 국가로, 향후 공적지출 확대에 대한 압박이 상당할 것이기 때문에 더욱 중요하다”고 말했다.
앞서 더불어민주당과 기획재정부는 4차 재난지원금 지원대상을 놓고 대립했다. ‘선별+보편 지급’을 요구하는 민주당과 달리 기재부는 ‘선별 지급’을 주장했다. 현재는 문재인 대통령이 기재부의 손을 들어주면서 선별 지급으로 가닥이 잡힌 상태다.
아울러 구리아 사무총장은 급격한 고령화에 따른 공공재정 확대 압력에 대응해 “스마트한 세제개혁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그는 “고령화로 인해 연금, 건강 및 요양비용이 증가함에 따라 공공재정이 상향조정 압력을 받을 것”이라며 “동시에 노동시장에 경제활동인구가 감소하면서 개인소득세(PIT)와 사회보장기여금(SSC) 수입이 줄고, 세수는 하향조정 압력을 받게 된다”고 우려했다. 이어 “이외에도 연금 수령액이 경제활동 시 받는 급여보다 낮기 때문에 세수가 감소한다”며 “이 같은 재정 압력을 고려할 때 국내총생산(GDP) 대비 세수 비중을 현 수준(2018년 기준 26.8%, OECD 평균 33.9%)으로 낮게 유지하는 것은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구체적으론 “법정세율 인상 대신 과세기준 확대를 통한 한국의 조세제도 효율성 증진은 흥미로운 정책 접근법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더불어 여성 등 취약계층의 노동시장 참여를 높일 수 있도록 조세정책을 개편하고, 추가적으로 경제 디지털화와 기후변화 관련 세금의 역할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최저임금 인상에 대해선 저소득층의 소득 증대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저숙련 일자리가 감소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고 밝혔다.
구리아 사무총장은 한국의 디지털·그린 뉴딜을 양대 축으로 하는 ‘한국판 뉴딜’에 대해 “한국은 디지털 뉴딜과 그린 뉴딜 어젠다를 모두 제시할 수 있는 리더가 되기 위해 필요한 모든 디지털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특히 “뉴딜 내에서 녹색 및 디지털 산업에 대한 지원을 통해 거둘 수 있는 혜택에 대한 내용을 경제 참여자 전반에 널리 공유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서비스 및 제조업 분야를 묶어내고, 중소기업과 근로자가 소외되지 않도록 신경 써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이날 콘퍼런스에서는 산업·시장, 노동·교육, 공공·재정 등 3개 분야에 대한 전문가들의 발제·토론이 진행됐다. 남창우 KDI 연구위원은 향후 미래의 산업 발전방향으로 신기술 집약적 산업과 선도형 신산업을 제시하고, 이를 위해 산업정책과 규제개혁이 동시에 시행돼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진국 연구위원은 공정한 시장생태계를 조성하기 위해서 대규모 기업집단의 지배구조를 소유경영과 전문경영의 장점이 함께 발현되는 융합형·한국형 기업지배구조로 진화하고, 부당 내부거래, 일감 몰아주기 등 사적이익 추구행위를 원천 봉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OECD 특별세션에서 로미나 보아리니 OECD WISE 센터 소장은 “새로운 경제패러다임으로의 전환은 포용적·혁신적 국가를 지향하고 사람들의 웰빙과 지속 가능성에 중심을 둬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에 대해선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해소하고 저숙련·비정규직 근로자들을 위한 사회안전망을 구축해야 한다”며 “기업생태계는 제조업·서비스업 간, 중소기업·대기업 간 협력을 강화할 수 있는 지원체계를 마련하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