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상훈 SK증권 리서치센터장을 만나다

입력 2008-12-15 17:14 수정 2009-01-14 1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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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스트 출신 리서치 센터장의 '2008년 증시 돋보기'

#전문

처음 문을 열고 시야에 들어온 것은 깔끔한 분위기 속 여의도 공원이 한 눈에 내려다 보이는 그의 집무실.

이 곳에서 컴퓨터 모니터와 어지럽게 놓인 자료를 번갈아 쳐다보며 인기척도 못 느낄 정도로 일하던 오상훈 SK증권 리서치센터장은 그제서야 기자와의 인터뷰 약속이 기억난 듯 반갑게 인사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년도 경제전망과 관련된 보고서 작성에 정신없는 요즘이라며 주요 산업별 동향 및 경제지표를 분석하는데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르겠다고 웃으면서 기자에게 반갑게 악수를 청하는 오 센터장과의 인터뷰는 그렇게 시작했다.

#본문

오상훈 리서치센터장은 이코노미스트 출신이어서 그런지 철저한 펀더멘탈리스트로 업계에서 통하고 있다. 아울러 관변 및 민간연구소, 주식시장 등을 두루 거친 경력을 갖고 있어 증권업계에서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로 평가받는다.

그는 여타 증시 전문가들보다 주식ㆍ채권시황, 기업 분석 및 전망과 관련해 유독 국내외 시장 변화 및 경제 흐름과 같은 거시경제적 환경 변화를 상당히 중요시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한국개발연구원(KDI) 재직 당시부터 시장 경제 변수들간의 반응과 그 관계를 파악하는 계량분석 작업을 10년 이상 지속해오며 각 변수간 연관성 및 규칙성 등이 상당히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는 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오 센터장은 서강대 대학원 경제학과를 졸업한 이후 KDI 및 SK경제연구소(옛 선경경제연구소)에서 방대한 거시계량모형을 구축하는 작업을 통해 단기 및 중장기 한국 경제 전망을 예측하는 작업을 두루 수행하면서 실물경제 전망을 예측하는 감각을 키웠다.

이후 SK증권 투자전략팀장 시절 채권시장 분야에서 거시경제 분석에 바탕을 둔 시장 분석에서 베스트 애널리스트로 명성을 쌓았다.

지난 노무현 정부 시절에는 중소기업 연구원에서 중소기업을 대변하는 이코노미스트로서 중소기업 실물경기 전망 및 혁신형 중소기업의 경제적 파급효과, 금융환경 변화에 따른 중소기업 금융발전 방안 등과 같은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올초 친정격인 SK증권에 모 그룹의 요청으로 재차 시장으로 복귀한 이후 벌써 1년이 다 되어 간다.

오 센터장은 그동안 민간 연구기관과 국책 연구기관을 두루 거치면서도 이코노미스트로서 시장을 바라보는 일 만큼은 변한 것이 없었다며 시장으로 돌아온 뒤 지난 일년간의 소회를 이같이 털어놨다.

다음은 오상훈 SK증권 리서치센터장과의 일문일답.

-사상 유례 없는 글로벌 금융위기로 큰 홍역을 치른 2008년 주식시장이다. 올 한해 어떤 느낌이었나?

▲한 마디로 有始有終(유시유종),前代未聞(전대미문)이라고 표현하면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전세계 증시는 지난 2003년 초반을 바닥으로 이후 5년간 2배 이상 상승세를 보여왔는데 단 일년만에 5년전 수준으로 회귀했다.

시가총액 기준으로 보면 올들어 글로벌 증시에서 시가총액 기준으로 25조달러 규모의 금액이 증발해 버렸는데 이는 지난해 세계 GDP의 절반 수준에 해당한다.

이러한 증시 폭락세는 2000년 IT버블 붕괴, 2001년 9.11테러사태, 2003년 이라크 전쟁 등 2000년대초 3대 경제악재에 대응하여 각국 중앙은행들이 펼쳐왔던 과잉통화 정책이 급기야 증시, 원자재, 부동산 버블을 잉태했고 이는 시차를 두고 한계에 이르면서 버블이 터진 것으로 시장 참가자들은 이해하면 될 것이다.

과거에도 항상 반복되어 왔듯이 무엇이든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게 마련이다. 미국발 서브프라임 사태로 촉발된 파장이 글로벌 금융시장을 넘어 실물 경기침체로 이어진 현 상황은 100년만에 한 번 올까말까한 충격으로 본다.

-올 하반기 국내증시 폭락을 금융시장의 최일선에서 지켜본 증권사 리서치센터장으로서 현 상황을 어떻게 진단하고 있으며 시장분석 과정에서 겪었던 어려움이 있다면?

▲국내증시는 올들어(코스피 기준) 40% 이상 하락하며 그야말로 폭락 장세를 연출했다. 사실 경기침체 현상이 향후에도 상당히 깊고 장기화될 것이라는 생각을 올초부터 견지해왔다.

시장참가자들이 실망스러워 할지도 모르겠지만 국내 주식시장 역시 이러한 추세적인 변화로부터 자유롭지 못할 것이라는 상당히 비관적인 입장을 줄곧 해왔으나 실제 외부에 이러한 인식을 내비칠 때는 절제된 표현에 의존할 수 밖에 없었던 현실적 어려움이 가장 힘들었다.

증시 상승 국면에서는 선제적인 얘기들이 투자자들에게 약이 될 수도 있겠지만 증시 하락 국면에서는 이러한 선제적 발언이 반대로 독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시장 참가자들에게 올바른 투자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가이던스를 제공해야 하는 여러 전문가들 중 한명으로서 돌이켜보면 조금더 목소리를 높이지 못했던 부분이 개인적으로 아쉬웠다.

다만 국내 주식시장 특성상 여러 대외적인 환경 변화에 매우 민감하기 때문에 말 한마디에도 그만큼 신중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을 이해해 주셨으면 한다.

#page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올들어 증권사들이 앞다퉈 내놓은 시장 전망이 완전히 빗나감에 따라 애널리스트들이 내놓은 분석 보고서에 대한 시장의 신뢰가 상당히 떨어진 게 사실이다. 리서치센터 수장으로서 어떻게 바라보는가?

▲애널리스트들이 주가를 설명하려고 실적 추정에 나서고 있지만 실제 작업은 경기상황에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주가가 경기보다 빨리 움직이기 때문에 실적 추정의 변화가 주가에 선행해서 나타나 분석에 어려움을 토로했던 최근 모 애널리스트의 자기 반성에 나 역시 공감한다.

그러나 애널리스트의 분석 보고서는 투자자들이 가이던스로 이용해야지 절대적인 투자 예언서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해두고 싶다. 애널리스트 리포트는 마치 어떤 목적지를 갈 때 참고하는 지도와 같은 존재이다.

가장 가깝고 빠르며 편하게 목적지까지 도달하는데 참고할 지도일 뿐이기 때문에 이곳에 나와 있지 않은 그날의 날씨, 기후, 교통 여건 등의 변수까지 완벽하게 고려할 수는 없다.

수 많은 지도 가운데 투자자들이 가장 적합한 지도를 고르는 안목도 필요하다고 판단되며 투자자들의 취향에 따라 지도의 선택 역시 충분히 변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판단된다.

-올 한해 기억될 만한 뉴스가 있다면 무엇이 있으며 시장 참가자들이 내년에도 투자 판단에 있어 지속적으로 지켜봐야 하는 뉴스는 무엇들이 있는지 말해 줄 수 있는가?

▲먼저 가장 기억나는 뉴스는 무엇보다 미 금융시장을 공포로 몰아넣는 금융위기와 투자은행(IB)들의 잇따른 파산사태를 들 수 있다.

올 상반기 150달러대까지 치솟았던 국제유가와 이로 인해 신음했던 세계 경제도 기억에 남는다. 원화 약세로 인한 중소기업의 키코사태와 이로 인한 줄도산 우려와 관련된 기사, 국내 건설업체들의 대주단 협약 가입과 이후 진행 방향에 대한 기사, 최근 버락 오바마 민주당 후보의 대통령 당선과 그가 향후 펼쳐나갈 정책 등과 관련된 기사들이다.

향후 투자자들의 지속적인 모니터링이 필요한 뉴스로는 미 자동차 업계 '빅3' 구제금융안 지원 여부이다. 만약 '빅3' 지원이 물거품될 경우 재차 글로벌 금융시장에 한 차레 쓰나미가 불가피하게 들이닥칠 것으로 판단되기 때문이다.

아울러 글로벌 경기침체로 인해 각국이 경기부양 카드로 사용하는 유동성 지원 카드를 두고 과잉 유동성 공급의 끝은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한 고민과 유동성 함정 우려 등의 기사 등을 유심히 지켜볼 필요가 있다.

-시장이 불안할 때 투자자들이 종목을 고르는 데 있어 눈여겨 봐야 할 부분이 있다면?

▲애널리스트들은 통상적으로 미래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기초로 기업의 이익 성장을 추정한다.

그러나 현재의 경기침체 국면에서 향후 각국의 GDP성장률 전망과 수치가 부정적인 평가 일색이기 때문에 기업의 이익 성장 전망을 예측하는데 예전보다 상당히 어려움이 많다며 고충을 털어놨다.

경기침체 국면이 장기화되고 주식시장 투자심리가 크게 후퇴할 때는 주가를 PER(주가수익비율), PBR(주가순자산비율)만으로 분석하는 것은 분명 한계가 있다.

이 보다는 해당 기업들의 보유현금비율, 차입금 의존도, 이익증감의 방향(모멘텀 혹은 재료찾기), 사업의 안정성 등 기업의 생사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잣대가 보다 효율적이다.

-내년도 주식시장 참가자들이 마음속에 새겨둬야 할 점은 뭐라고 생각하는지 사자성어로 언급한다면?

▲투자자들에게는 미안한 얘기로 들리겠지만 다기망양(多岐亡羊)이라고 말하고 싶다.

길이 여러 갈래여서 양을 잃어버리기 쉽다는 의미인데, 주식시장에 이를 적용해보면 국내증시를 둘러싼 불확실한 변수들이 너무 많아서 시장 참가자들이 원하는 수익을 취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대내외적인 실물경기 하강의 본격화로 인한 국내 기업들의 실적 악화, 신용위기의 지속에 따른 자금시장 불안, 외환시장의 안정 여부 등 위험 요인이 복병처럼 도사리고 있어 리스크 관리에 만전을 기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욕속부달(欲速不達)이라는 말을 마음에 새겨둘 것을 권유한다. 너무 서두드면 일이 잘 되지 않는다는 말 뜻처럼 경기침체가 장기화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는 만큼 주식시장 회복에 대한 섣부른 기대보다 이러한 시장불안을 역으로 이용, 앞서 언급한 투자지표를 참고 삼아 옥석을 가려내는 능력을 키워보는 것도 의미있는 작업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투자자들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도서가 있다면 무엇을 권하겠는가?

▲'가치투자, 주식황제 존 네프처럼 하라'라는 책이다. 장세가 어려워질수록 기본으로 돌아가서 투자마인드를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약세장에서의 가치투자에 대한 매력도는 한층 더 높아질 수 있다.

존 네프는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워렌버핏, 피터린치와 더불어 주식투자계의 3대 전설로 손 꼽히는 사람 중 한 명이다.

그는 저PER 투자 원칙을 유지하되 상황에 탄력적으로 대응하면서 수익을 추구하는 가치투자 원칙을 고수해 온 사람으로 유명하다.

특히 이 책을 읽으면서 단 한방의 홈런을 노리기보다는 여러 안타를 통해 전체 수익을 추구하라는 조언이 가슴에 와 닿았던 기억이 난다.

대박보다는 수많은 안타들이 경이로운 수익률을 안겨줄 수도 있다는 점을 국내 주식투자자들이 이 책을 통해 되새겼으면 한다.

-마지막으로 경기침체 속 취업난이 심각한 가운데서도 여의도에 입성하려는 젊은이들의 열기는 여전하다. 증권업을 포함한 금융업이 갖는 매력과 이 가운데 애널리스트가 어떤 직업인지 한 마디 해달라.

▲상대적으로 높은 연봉에 금융권 전문 인력이라는 세간의 평가에 비춰본다면 금융업에 종사한다는 것은 분명 매력적인 측면이 없지 않다.

그러나 철저한 자기관리와 개발, 리스크 관리에 대한 문제 의식이 뒷받침되지 않을 경우 모든 것을 한 번에 잃어버릴 수도 있다는 점 또한 여타 업종과 비교했을 때 더욱 두드러지는 특징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특히 애널리스트는 산업과 기업을 정확하게 분석하고 기업의 적정가치를 평가, 해당기업의 주가에 대한 투자의견을 제시하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다.

또한 본인이 작성한 보고서를 기반으로 기관 투자가 등에게 마케팅 역량도 반드시 필요하다. 따라서 기업 분석과 관련된 기본적 지식과 능력을 갖춘 인재가 환영받는다.

경제와 산업 그리고 기업을 평가할 수 있는 안목을 키워야하고 해당 기업에 대한 수익측정모델을 다룰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경영과 회계학적 지식도 필수적이다.

증권시장에 대한 일반 투자자 이상의 이해를 요구받기 때문에 단순한 열정을 넘어 지속적인 관련 지식의 축적과 실무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는 점을 반드시 유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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