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합리한 환경 수면 위 오를수도
국회의원 보좌진에 대한 부당대우 천태만상의 근본적 원인은 인사권에 있다. 국회의원 한 마디에 잘려나갈 수 있어서 갑질에 함부로 맞서거나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내지 못하기에 근무환경 개선도 지지부진하다.
이 때문에 모든 보좌진이 온당한 대우를 받는 계기라도 만들기 위해선 ‘파리목숨’ 공포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 방법으로 현재 제기된 게 면직예고제와 노동조합 설립이다.
보좌진은 국가공무원법상 별정직 공무원인데, 행정부 소속이면 면직심사위원회를 거치지만 국회의 경우 관련 규정이 없다. 의원이 입만 떼면 보좌진이 실직자가 될 수 있는 이유다. 이에 적어도 ‘하루아침에’ 실직자가 되는 일은 없게 하도록 제안된 것이 면직예고제다.
과거 국회에서도 발의됐지만 좀처럼 진척을 이루지 못했다. 현 21대 국회에선 추경호 국민의힘 의원이 면직예고제를 담은 국회의원수당법 개정안을 내놓은 상태다. 의원이 직권면직 요청서를 면직일 30일 전까지 국회 사무총장에 제출토록 하고, 그렇지 않으면 면직 보좌진에 30일분의 보수를 지급토록 하는 내용이다.
국민의힘 보좌진협의회(국보협) 회장인 정경희 의원실 박준수 보좌관에 따르면 류호정 정의당 의원 비서 부당해고 논란으로 사회적 관심이 커진 때인 만큼 더불어민주당 보좌진협의회와도 논의해 내달까지 이어지는 임시국회 내 통과를 목표로 나선다는 계획이다. 구체적으로 해당 법안이 계류된 국회 운영위원회 여야 위원들을 직접 설득한다는 것이다.
다만 다수의석을 차지한 민주당 의원들이 미온적인 태도라 전망이 밝지만은 않다. 국민의힘 소속 한 운영위원은 통화에서 “의원 전반이 필요성을 인정해 적극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반면 민주당 한 운영위원은 통화에서 “류 의원 논란으로 필요성은 알고 있지만 해당 법안에 대해선 우리 당 의원들이 잘 알고 있지는 못해 논의한 바가 없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면직예고제는 통과된 대도 일방적인 해고 통보를 막을 수는 없어 실효성이 크지는 않다. 이 때문에 최근 국보협이 추진하는 게 노조 설립이다.
그간 보좌진 노조 설립은 전혀 고려돼오지 않았다. 과거 공무원노조법상으로는 6급 상당의 공무원과 전직의 가입이 막혀있어서다. 보좌진은 4급 상당인 보좌관 2명과 5급 상당의 비서관 2명, 6~9급 상당 각 급 1명씩, 인턴비서 1명 등 9명으로 구성돼 절반이 노조에 참가할 수 없는 셈이다. 면직이 잦은 점도 고려하면 노조가 제대로 운영되기 힘들다.
그러다 국제노동기구(ILO) 협약에 따른 노동법 개정이 이뤄지면서 보좌진 노조 설립 가능성이 생겨났다. 급수 및 전직 가입제한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국보협은 해당 법이 시행되는 7월이 되면 본격적으로 노조 설립을 추진할 계획이다.
국보협의 구상은 당적과 상관없이 모든 국회 보좌진이 가입하는 노조로, 단체협약을 맺는 대상은 국회사무처다. 보좌진 임면 권한은 개별 의원에 있지만 실제 임면과 월급 지급을 이행하는 건 국회사무처이기 때문이다.
물론 노조를 설립한다고 한들 의원의 임면권에 법적으로 개입하기는 어렵다. 다만 존재 자체만으로 보좌진에 대한 대우는 개선될 것으로 보인다. 우선 불합리한 근무환경이나 부당해고 등 사례들이 지금처럼 파편화돼 덮이지 않고 노조에 공식적으로 보고되기에 문제가 제때에 수면 위에 오를 가능성이 크다. 또 법 내 노조로서 집단적 요구나 항의를 할 수 있으므로 의원이 지는 사회적·정치적 책임이 커져 일방적인 언사는 자제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