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서울시, '노후도 기준 개선' 용역 착수… "재개발 구역 219곳 더 늘듯"

입력 2021-02-2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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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사는 (2021-02-23 16:55)에 Channel5를 통해 소개 되었습니다.

#.부동산 개발업체 H사(社)를 운영하는 K씨는 2016년 780억 원을 주고 서울 용산구 원효로3가에 있는 옛 국립전파연구원 부지 약 1만6000㎡를 샀다. 용산역과 인접한 노른자위로 평가받는 땅이었다. K씨는 이 땅에 300여 가구 규모 아파트를 지으려 했다. 하지만 K씨 구상은 아파트를 짓기 위한 첫 관문인 지구단위계획 수립 단계에서부터 좌초됐다. 노후도 기준을 충족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방자치단체에선 지구단위계획을 수립하려면 노후도 요건이 충족되는 2025년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통보했다. K씨는 아파트 건설을 포기하고 땅을 한 자산운용사에 매각했다. 이 자산운용사는 이 땅에 청년주택을 지으려 하지만, 현재의 노후도 기준이 유지된다면 건물이 낡아갈 때까지 땅을 놀려야 하긴 마찬가지다.

서울시 "현행 기준 도입된지 17년 지나 재검토 필요"

'지구단위계획구역 노후도 산정 기준 개선' 용역 발주

서울시가 지난 18일 '지구단위계획구역 내 공동주택 노후도 산정 기준 개선 방안 마련' 연구용역을 발주하면서 부동산 개발업계에선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부동산 개발을 막았던 낡은 규제가 개선될 것으로 판단해서다. 노후도 요건 완화가 재개발 등 다른 개발사업으로도 이어지리란 관측도 나온다.

서울시 도시계획조례에 따르면 지구단위계획구역 안에서 아파트 등 공동주택을 짓기 위해선 △사용 검사 후 20년이 넘은 건물이 구역 내 건물의 3분의 2 이상이거나 △구역 내 건물 절반 이상이 사용 검사 20년을 넘은 상태에서 준공 후 15년이 지난 다세대ㆍ다가구주택 비중이 30%를 넘어야 한다. 완화ㆍ면제 규정이 있긴 하지만 임대주택ㆍ장기전세주택 등 공급 유형을 제한하고 있다. 난개발 방지라는 명분으로 2004년 지구단위계획구역에 노후도 산정 기준이 도입된 이래 지금까지 유지돼 온 틀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노후도 산정 기준이 마련된 지 17년이 넘다 보니 제도를 재검토할 시기가 도래했다"며 "다른 공동주택 건설사업과 비교해 노후도 산정을 어떻게 하는 게 적정한지에 대해 검토하려 한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특히 저(低)이용 부지 개발에 관심을 두고 있다. 토지 넓이에 비해 건축물 절대량이 적어 노후도 산정에서 불리하거나 개발이 막힌 부지들이다. 이 같은 부지에 대해 노후도 산정 기준을 유연화ㆍ다양화하면 유휴지 개발이 탄력을 받을 수 있다. 서울시 측은 "주택 정책 측면에서 저이용 부지의 경우 (용역 과정에서) 노후도 산정을 전향적으로 검토해볼 수도 있겠다"고 했다. 시는 올해 말까지 용역 결과를 받아 내년부터 새 노후도 산정 기준을 적용할 계획이다.

▲서울의 한 노후 주거지 모습. (박종화 기자. pbell@)
▲서울의 한 노후 주거지 모습. (박종화 기자. pbell@)

정비사업ㆍ역세권 청년주택 기준도 함께 들여다볼 듯

이번 용역에선 지구단위계획뿐 아니라 재건축ㆍ재개발 등 정비사업과 소규모 주택 정비사업, 역세권 청년주택 건설사업에 적용되는 노후도 산정 기준도 함께 들여다본다. 주택 건설이란 목적은 같지만 노후도 산정 기준은 제각각이어서다. 이들 사업에서도 노후도 요건은 개발사업을 위한 첫 문턱 역할을 하고 있다.

최근 정부와 서울시가 추진하는 공공재개발(공공 참여형 재개발) 사업만 해도 수십 개 구역이 노후도 미달을 이유로 사실상 탈락했다. 민간 재개발 추진 구역에서도 신축 빌라를 지으려는 건축주와 노후도 요건 충족을 위해 이를 막으려는 주민 간 갈등이 빈번하다.

서울시 관계자는 "유형별 공동주택 건립사업에 적용되는 노후도 산정 기준 개선 방안도 함께 검토할 것"이라면서도 "실제 적용 여부는 사업별 담당 부서에서 결정할 것"이라고 했다.

다만 서울시 내부에선 노후도 요건 완화에 전향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주택 공급 확충을 위해선 정비사업 등을 활성화해야 한다는 필요성에서다. 서울시는 최근 내부 시뮬레이션에서 노후도 요건 등을 완화하면 재개발 가능 구역이 지금(487곳)보다 219곳 늘어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서진형 대한부동산학회장(경인여대 교수)은 "건물이 무너지기 직전이 돼서야 개발에 나설 게 아니라 주거 환경 개선이 필요한 지역엔 적절한 개발이 가능하도록 합리적인 노후도 산정 기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구단위계획
도시 내 특정 지역을 체계적으로 관리ㆍ개발하기 위해 수립하는 도시계획. 계획 수립 시점에서 약 10년 후를 미래상을 설정하고 그에 맞는 평면적 토지이용계획과 입체적 시설ㆍ건축물 계획을 아울러서 수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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