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합헌…"실효적 구제방법 없어 형법에 의지"

입력 2021-02-25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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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남석 재판관 등 4명 “표현의 자유 침해” 반대 의견

▲유남석 헌법재판소장과 재판관들이 25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 입장해 자리하고 있다. 이날 헌재는 양심적 예비군 훈련 거부를 처벌하는 법 조항에 관한 위헌법률심판제청 사건, 전남·경남 해상경계성 설정에 관한 권한쟁의심판 사건,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에 관한 헌법소원심판 사건 등에 대해 선고했다. (뉴시스)
▲유남석 헌법재판소장과 재판관들이 25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 입장해 자리하고 있다. 이날 헌재는 양심적 예비군 훈련 거부를 처벌하는 법 조항에 관한 위헌법률심판제청 사건, 전남·경남 해상경계성 설정에 관한 권한쟁의심판 사건,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에 관한 헌법소원심판 사건 등에 대해 선고했다. (뉴시스)

명예훼손적 표현의 전파 속도와 파급효과가 광범위해지고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한 실효적인 구제 방법이 없다. 피해자로서는 형법상 명예훼손죄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것이 오늘날의 현실이다.

사실을 적시해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경우 형사 처벌하는 현행 형법 조항이 헌법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헌법재판소 결정이 나왔다. 헌법재판소가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의 위헌 여부를 판단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헌재는 25일 A 씨가 사실을 적시해 타인의 명예를 훼손한 사람을 처벌하도록 하는 형법 제307조 제1항이 기본권을 침해한다며 낸 헌법소원 사건에서 재판관 5(합헌)대 4(위헌) 의견으로 합헌 결정했다.

형법 307조 1항은 ‘공연히 사실을 적시해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2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5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A 씨는 2017년 8월 자신의 반려견을 실명하게 한 수의사의 진료 행위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통해 알리려 했다. 하지만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로 처벌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해당 조항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했다.

“파급효과 광범위…형사처벌 의존할 수밖에”

헌재는 "개인의 외적 명예를 훼손하는 표현 행위를 규제해 인격권을 보호해야 할 필요성을 포기할 수 없다”며 “이를 비범죄화하기 위해서는 개개인이 표현의 자유의 무게를 충분히 인식하고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돼야 한다”고 밝혔다.

또 “최근 명예훼손적 표현이 유통되는 경로가 광범위해 피해자가 이를 모두 찾아내 반박하거나 삭제를 요구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명예훼손적 표현 행위에 대한 실효적인 구제 방법이 없는 이상 게시물의 자발적 삭제 등을 유도하기 위한 수단으로 형법상 명예훼손죄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것이 오늘날의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헌재는 형법상 위법성 조각 사유와 이에 관한 대법원의 해석을 통해 표현의 자유 제한은 최소화하고 있다는 점도 내세웠다. 형법 310조는 사실적시 명예훼손 행위가 ‘진실한 사실로서 오로지 공공의 이익에 관한 때’에는 처벌하지 않는다고 제한을 두고 있다.

“허명 보호 위한 형사처벌, 반헌법적”

반면 유남석ㆍ이석태ㆍ김기영ㆍ문형배 재판관은 사실적시 명예훼손죄가 과잉금지 원칙에 반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므로 일부 위헌으로 결정해야 한다고 반대의견을 냈다. 진실한 사실을 토대로 토론과 숙의를 거쳐 여론을 형성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근간인데 이를 처벌하는 것은 반헌법적이라는 취지다.

유 재판관 등은 “진실한 사실 적시에 대한 형사처벌을 통해 보호하려는 사람의 명예는 진실이 가려진 채 형성된 ‘외적 명예’로 많은 사람이 진실을 몰라서 얻게 된 허명(虛名)에 불과하다”며 “허명을 보호하기 위해 진실한 사실을 적시하는 표현 행위를 형사처벌하는 것은 헌법적으로 정당화되기 어렵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외적 명예를 보호할 필요성이 있더라도 형사처벌 이외에 덜 제약적인 대안이 현실적으로 존재한다”며 “이런 구제 수단이 존재함에도 형사처벌하는 것은 명예 보호를 위해 필요한 범위를 넘어 표현의 자유에 대한 지나친 위축 효과를 발생시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형법상 명예훼손죄가 ‘반의사불벌죄’로 일반 국민의 고발에 의해서도 수사가 개시될 수 있는데, 공적 인물과 사안에 대한 감시와 비판적 보도를 봉쇄하려는 목적으로 악용될 수 있다고도 봤다.

이들은 “제3자의 고발에 따라 진실한 사실 적시 표현 행위에 대해서도 형사 절차가 개시되도록 하는 ‘전략적 봉쇄소송’마저 가능하게 됐다”며 “형사 절차에 휘말릴 가능성이 더욱 커짐에 따라 표현의 자유는 심대하게 위축됐다”고 강조했다.

형법 310조의 위법성 조각 사유에 대한 반박 의견도 내놨다. 자신의 표현 행위로 수사나 재판 절차에 회부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표현의 자유에 대한 위축 효과는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유 재판관 등은 “해당 조항 중 진실한 것으로서 사생활의 비밀에 해당하지 않는 사실 적시에 관한 부분은 헌법에 위반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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