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권의 글로벌 시각] 전작권 전환 논의, 정확하고 투명하게

입력 2021-03-05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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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대 객원교수, 전 주핀란드 대사

요즘 전시작전권 전환 문제가 세간의 큰 관심을 받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임기 내 전환을 대선 공약으로 내놓았었는데 다음 대선이 이제 1년밖에 남지 않아 뭔가 중대한 결정이 임박했을 수 있다는 느낌 때문일 것이다. 김정은-트럼프 회동과 코로나19로 인하여 전환을 위한 점검 작업을 할 기회가 충분하지 않았다는 점도 불확실성을 더하고 있다.

지금까지 전작권 전환 논의의 핵심은 2014년 한-미가 합의한 전환 조건에 관한 것이었다. 전환을 위한 3대 조건이 충족되었느냐는 것이다. 그런데 그 조건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면 그것들이 실제로 충족되었는지 객관적으로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 특히 세 번째 조건인 ‘전작권 전환에 부합하는 한반도 및 지역안보 환경’은 너무 모호해서 판단 자체가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조건이 그러하다 보니 논의가 정치적, 이념적으로 흐를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았다. 전작권 전환은 우리가 당면한 안보과제에서 가장 중대한 사안 가운데 하나이다. 이런 문제가 정치화, 이념화되는 것은 지극히 위험한 일이다. 거기에 더하여 미국이 전환을 가능한 한 미루려 한다거나 전환 후에는 유엔사를 이용하여 사실상 전작권을 계속 행사하려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미국은 미국대로 불편함이 있을 수 있다. 한-미가 합의한 조건이 아직 충족되지 않았고 점검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는데 한국 정부가 조건을 무시하거나 억지로 꿰맞추어 서둘러 전환하려 한다는 생각을 가질 수 있다.

한미동맹의 역사를 보면 사안을 정확하고 투명하게 처리하지 않아 두고두고 동맹 간에 분란의 씨앗이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권위주의 시대에는 어두운 정치적 상황이 있었고 안보 관련 사안을 다 공개할 수 없다는 주장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달라졌다. 우리의 민주주의와 국력 수준이 그런 비밀주의나 편의주의를 용인하지 않는다. 정확하지 않고 투명하지 않은 결정은 국민들의 지지를 얻기 어렵고 그 결과는 우리의 국익을 저해할 뿐이다. 동맹 문제를 감추려 한다든지 정치적, 이념적으로 접근하려는 행동은 이제 뒤로할 때가 되었다. 특히나 전작권 전환 문제는 우리 안보에 중차대한 사안이다. 이 문제를 어떻게 처리하느냐는 한미동맹, 나아가 우리 안보의 미래에 대해 매우 중요한 시금석이 될 것이다.

전작권은 이승만 대통령이 1950년 7월 14일 자 서한으로 맥아더 유엔군 사령관에게 맡겼다. 이 서한에서 이승만은 무엇을 누구에게 어떤 조건으로 맡기는지를 명확히 했다. 이승만의 서한은 친애하는 맥아더 장군으로 시작하며 크게 두 문장으로 되어 있다. 둘 다 긴 복문으로 되어 있어서 문장을 있는 그대로 번역하기는 간단치 않다. 그러나 의미는 분명하다. 대한민국을 대신하여(on behalf of the Republic of Korea) 싸우고 있는 유엔군의 최고사령관으로 지명된 맥아더에게 대한민국 군대의 지휘권(command authority)을 현재의 적대적 상태가 지속되는 동안 맡긴다(assign)고 하고 있다.

이승만의 서한은 의미 전달과 어휘 선택에 있어서 명료하고 적절하였다. 우선 서한의 본문에서 미국을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다. 유엔군이 한국을 대신하여 싸우고 있다고 함으로써 유엔군과 한국과의 관계를 올바르게 규정하였다. 또한 유엔군의 최고사령관으로 지명된 맥아더에게 한국군에 대한 지휘권을 맡긴다고 함으로써 한국군의 지휘권을 맡는 맥아더의 지위를 분명하게 규정하였다. 맥아더에게 지휘권을 ‘assign’한다고 한 것도 탁월한 언어 선택으로 보인다. 영어 단어 ‘assign’은 임무, 과제 등을 부여한다는 의미가 있다. 주권국가인 대한민국의 국가원수가 유엔군의 사령관으로 지명된 군 장성에게 현재의 적대행위가 지속되는 동안 한국군에 대한 지휘권을 일시적으로 맡긴 것이다. 비록 침략을 당하여 유엔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처지이지만 주권국가의 국가원수와 국제기구의 이름으로 구성된 군의 지휘관 간의 관계를 질서 있게 표현하려는 노력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이 서한을 통하여 우리는 최초 전작권이 넘어간 저간의 사정을 정확하고 투명하게 알게 된다.

한-미 간 전작권 역사를 보면 1978년 한미연합사가 창설되면서 유엔사령관에게 맡겨진 전작권이 연합사 사령관에게 넘어갔다고 되어 있다. 하지만 관련 문서는 공개되지 않고 있다. 그래서 이승만으로부터 받은 전작권을 1978년 당시 유엔사령관이 정확히 무슨 근거, 조건, 절차로 연합사령관에게 넘겼는지 일반 국민들은 알 길이 없다. 전시작전권은 제복을 입은 우리의 딸 아들, 그리고 우리 모두의 목숨이 달린 문제다. 이런 권한을 움직이는 문제는 국민들에게 정확히 밝히고 동의를 얻어야 한다. 그러려면 먼저 1978년 전작권 관련 문서가 즉시 공개되어야 한다. 2014년 전작권 전환 조건이 비현실적이라면 한미가 협의해서 고쳐야 한다. 비현실적인 조건에 대한 논의는 그 자체가 허망한 것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전환 후 유엔사의 역할에 대해서도 ‘설’만 무성할 게 아니라 한-미가 협의해서 국민들에게 투명하게 밝혀야 한다. ‘정확’과 ‘투명’은 민주국가 간의 동맹인 한미동맹에 독이 아니라 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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