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기준금리를 대폭 인하해 '제로금리'를 선언함에 따라 한국은행이 추가적인 금리인하 여부에 금융권의 촉각이 모아지고 있다.
미 연준은 16일(현지시간) 0.5% 수준의 인하를 전망했던 시장의 예상치를 깨고 기준금리를 기존 1.0%에서 0~0.25%로 전격 인하했다.
이에 따라 세계 주요 국가들의 금리인하 물결이 더욱 빨라질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한은의 추가 금리인하 압박도 더욱 거세지고 있다.
◆"세계 주요국 금리인하 동참해야"
지난 11일 한은이 시장의 기대치를 넘어서는 기준금리 1.0% 인하를 전격 단행했다. 하지만 금융권에서는 한두 차례 추가적인 금리 인하를 통해 2%대까지는 금리를 낮출 가능성이 큰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미국의 제로금리 선언으로 세계 주요국 중앙은행들도 잇따라 대폭적인 추가 금리인하에 나설 가능성이 높아졌다. 실제로 홍콩 중앙은행은 17일 오전 기준금리를 1.50%에서 0.50%로 1.0%p 전격 인하했으며, 영국과 유럽, 중국 등 주요 국가들도 추가적인 금리인하를 적극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은은 그동안 금융통화정책의 신중함을 이유로 늑장을 부리다가 정부와의 갈등은 물론 시장으로부터 '뒷북 정책'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이후 최근 시장의 예상치를 초월하는 금리인하를 단행하는 등 선제적인 통화정책으로 시행하면서 모처럼 시장이 환영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 상황이다.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올 하반기 들어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지속적으로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정책적인 효과를 크게 보지 못했던 것은 시장의 요구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라면서 "이런 점에서 최근 선제적으로 금리인하는 매우 환영할만 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세계 주요국이 다시 큰 폭의 추가적인 금리인하를 단행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자칫 늑장을 부렸다가는 또 다시 미미한 효과에 그칠 것"이라고 우려했다.
즉 기준금리를 추가적으로 인하할 방침이라면 선제적이고 강력한 조치를 통해 시장에 확실한 메세지를 주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이성태 한은 총재도 지난 11일 기자간담회를 통해 기준금리 하한선의 기준으로 "유동성 함정에 빠지지 않는 수준"이라고 제시한 바 있다. 이를 감안해 보면 아직 1% 정도의 추가적인 인하 여력이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유동성 함정'은 영국의 경제학자 존 케인즈가 제시한 개념으로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인하해도 가계의 소비와 기업의 투자가 일어나지 않고, 대출과 채권금리가 반응하지 않는 상황'을 일컫는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도 "세계 주요국이 초저금리 시대로 가는 상황에서 우리나라만 외면하기는 힘들 것"이라면서 "시장 상황에 따라 한두 차례 추가적인 금리인하를 통해 2%대를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한-미 상황 다르다...유동성 공급 먼저"
그러나 한은이 당장 추가적인 금리인하에 나설 것으로 속단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실물경기 침체가 이제 시작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통화정책 수단의 여지를 충분히 남겨둬야 하기 때문이다.
한은도 미국이 제로금리 시대로 접어들었으나 우리나라는 미국과 경제상황이나 통화정책의 환경이 다르다는 입장이다.
한은 관계자는 "한미 양국의 경제상황과 통화정책의 여력이 전혀 다르다"면서 "실물경기의 침체 정도와 물가상황, 그리고 기준금리 인하에 대한 금융시장의 반응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결정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미국 달러화는 기축통화로서 금리가 제로수준까지 떨어져도 큰 문제가 생기지 않을 수 있으나, 우리나라는 금리가 지나치게 낮을 경우 외환시장의 불안요인으로 작용할 가능도 크다"고 우려했다.
즉 기준금리를 지나치게 인하할 경우 외국인 투자가 감소하고 달러 유출이 증가할 경우 다시금 환율불안이 현실화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도 "한은이 최근 단기간 내 몇 차례의 금리인하를 단행했고 효과가 나타나려면 다소 시간이 필요하다"면서 "금융기관으로서도 추가적인 금리인하보다는 유동성을 충분히 공급해 주는 게 더욱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따라서 추가적인 금리인하 가능성을 부인할 수는 없지만 단기적으로는 공격적인 금리인하보다는 충분한 유동성 공급을 우선 실행할 가능성이 클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도 금융기관들의 자기자본 증대를 통해 대출 여력을 확대할 수 있도록 금융당국이 적극 유도하고 있는 상황인 만큼 한은도 이를 측면에서 적극 지원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