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공평에 대하여

입력 2021-03-11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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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SK바이오사이언스의 청약 열풍의 예견된 사태다. 올해 첫 대어급 기업공개(IPO)인데다 균등배정 물량을 받을 수 있어서다. 작년까지만 해도 카카오게임즈와 같은 대어급 기업의 청약은 1억을 넣어야 2~3주를 받을 수 있었는데, 단돈 32만5000원으로도 주식 1주는 건질 수 있다니. 청약에 도전을 안 하는 게 이상할 정도다.

공모주 균등배정은 금융당국이 청약 제도의 공평성을 위해 도입한 제도다. 증거금을 많이 예치할수록 더 많은 주식을 배정받는 현행 비례배정 제도는 자산가에게 유리한 구조라는 이유에서다. 이에 따라 청약한 사람이라면 최소 1주씩은 균등하게 나눠주겠다는 게 균등배정 정책의 골자다.

SK바이오사이언스의 청약이 시작되자 증권사에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가족관계증명서와 가족 도장 등을 챙겨와 가족의 계좌를 3~4개씩 개설하는 가하면 위임장까지 받아와 사돈의 팔촌 계좌까지 만들었다. 올해 증권사 계좌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한 것은 주식시장에 참여하는 인구가 늘어난 영향도 있지만, 청약에 참여하기 위해 여러 개의 계좌를 개설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폭발적인 투자 열기에 청약을 진행하는 증권사의 거래 시스템은 돌아가면서 지체됐고, 중소형 증권사의 모바일트레이딩시스템(MTS)은 타행 입금이 되지 않는 초유의 사태가 불거졌다. 청약증거금과 참여 계좌 수는 기존 역대 최고 기록을 거뜬히 넘어섰다.

이번 소액투자자를 위한 공모주 개편에서 과연 누가 돈을 많이 벌었을까 의문이 남는다. 그동안에도 부지런히 공모주 투자에 나섰던 자산가들일 것 같아서다. 평일 증권사 객장으로 와서 가족 계좌를 3~4개씩 만들어갈 여유가 있는 사람이 과연 균등배정이라는 ‘배려’가 필요한 사람이었을까?

기대 수혜자의 불합치는 금융당국의 어중간한 배려와 정책에서 비롯됐다. 금융위원회는 균등배정 정책을 새로 만들어놓고, 증권사 간 중복청약을 방지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놓지 않았다. 또 균등배정 물량보다 청약 건수가 많을 땐 추첨을 통해 주식을 나눠야 하는데 추첨 방식은 증권사 자율에 맡겼다. 추첨한다는 자체가 공평한지 의문이다. 어중간한 배려는 약자보다 강자에게 유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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