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지몰린 박영선, LH 특검 ‘큰기술’…“단일화 탓에 꼬였다”

입력 2021-03-13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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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초까지 서서히 상승하며 '대세론' 시도하던 박영선, LH 사태로 野 역전 허용
공세 전환해 안철수ㆍ오세훈 저격하고 LH 사태엔 '특검 승부수'…野 책임론 시선돌리기 의도
與 일각, 꼬인 원인 '범여권 단일화' 지목…"성추문ㆍ부동산 얼룩진 민주당 소속 옅어지게 했어야"
조정훈 통한 중도확장 LH 상쇄, 강성친문 김진애 탓 중도이탈…"野 다투길 기도하는 처지"

▲더불어민주당 박영선 서울시장 후보가 11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관훈토론회에서 패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박영선 서울시장 후보가 11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관훈토론회에서 패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때 ‘대세론’을 향했던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장 후보가 궁지에 몰렸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땅 투기 의혹이 일파만파로 커진 탓이다. 박 후보가 12일 LH 특검을 전격 제안한 이유다.

그간 여론조사 흐름을 보면 박 후보는 지난 1월 말 출마선언을 했을 때는 야권에 비해 열세를 보이다 서서히 상승해 2월 초에는 국민의힘과 국민의당 후보 어느 쪽과의 양자대결에서도 우세를 점했다. 2월 5일 공개된 시사저널 의뢰 조원씨앤아이 여론조사 결과 박 후보는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 상대로는 4.2%포인트, 나경원 당시 국민의힘 예비후보에는 8%포인트 앞섰다.

이에 박 후보는 공약 어필에 주력하며 ‘대세론’ 형성을 유도했다. 상대 후보에 대한 언급은 삼가고 서울시 현안 관련 메시지에만 집중한 것이다. 이 당시에 박 후보는 출마선언 후 첫 공식 기자회견에서 “처음에는 선거가 힘들 것 같았지만 지금은 해볼 만해졌다고 바뀌는 상황”이라고 자신감을 내비쳤고, 캠프 관계자는 “박 후보 메시지를 보면 특정 후보를 겨냥하지 않고 시민만 바라본다”고 했다.

그러다 지난 2일 LH 땅 투기 의혹이 터졌고 파장이 커질수록 정부·여당 지지율이 빠지며 박 후보도 야권 후보에 역전을 허용했다. 8일 공개된 중앙일보 의뢰 입소스(IPSOS) 여론조사 결과 안 후보가 박 후보보다 7.5%포인트 높게 나왔다. 오세훈 국민의힘 후보도 박 후보를 3.7%포인트 앞섰다.

내리막길에 접어들자 박 후보는 야권을 향한 공세 모드로 전환했다. 10일과 11일 연일 안 후보의 새정치와 오 후보의 시장 재임 시절 무상급식에 대한 논란을 언급하며 저격에 나섰다.

하지만 지지율 하락의 근본 원인인 LH 사태를 방치하고서는 분위기 전환이 어려워 LH 특검 건의라는 돌파구를 마련한 것이다.

돌연 특검을 주장한 배경은 LH 의혹에 쏠린 시선을 야당 책임론으로 분산시키기 위해서다.

12일 국민의힘은 특검에 대해 검찰에 본격 수사를 맡기지도 않은 상황에서 특검을 추진하는 게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을 내놓았다. 그러자 민주당 측은 기다렸다는 듯 특검 추진이 지연되면 책임소재는 국민의힘에 있다는 입장을 냈다.

특검을 제안한 박 후보는 선거대책위원회 출범식 직후 기자들과 만나 특검에 대해 “특검은 못할 이유가 없고 시간이 얼마 안 걸린다. 시간을 끄는 사람이 있다면 누군지 밝혀내야 한다”고 말했고, 박영선 캠프 대변인인 고민정 의원은 논평에서 “숨길 게 없으면 두려울 게 없다. 국민의힘은 특검을 즉각 수용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당 중앙선대위 대변인인 박성준 의원도 서면브리핑에서 오 후보를 지목해 “무엇이 두렵고 무엇을 숨기고 싶은 건가”라고 반문했다.

박 후보의 특검 제안은 사전에 당과 조율한 것으로 알려졌다. 즉, 소속 정당의 힘까지 빌려 시전한 ‘큰 기술’이란 것이다. LH 사태 파장이 더 커지는 걸 막으면서 동시에 야권도 견제하려는 의도로, 효과가 있을지는 두고 봐야겠으나 민주당과 박 후보로서는 사활을 건 승부수다.

▲더불어민주당 김태년 당대표 직무대행(오른쪽)과 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가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원내대표 회동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김태년 당대표 직무대행(오른쪽)과 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가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원내대표 회동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를 두고 당내 일각에서는 꼬인 원인을 LH 사태가 아닌 의외의 지점에서 찾는다. 범여권 후보 단일화다.

논리는 이렇다. LH 사태가 아니어도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추문과 부동산 정책에 대한 불만 때문에 민주당 간판이 선명할수록 선거 승리는 요원해지는 상황이었는데, ‘다단계 범여권 단일화’ 탓에 민주당 소속이 너무 부각됐다는 것이다.

실제로 박영선 캠프의 초기전략도 ‘민주당 소속’보다 ‘시민의 후보’라는 이미지를 강화하는 데 방점이 찍혔었다. 이 때문에 당 경선에서 우상호 당시 예비후보의 공격에 반응을 자제하고, 야권 후보의 공세에는 무대응으로 일관하며 정책 메시지만 낸 것이다.

그러다 범여권 열린민주당의 김진애 후보가 단일화를 추진하자고 성화를 부려 당은 고민에 빠지기 시작했다. 강성 친문 성향인 열린민주당과만 단일화를 추진하면 중도층 이탈이 우려되고, 무시하자니 박빙이 예상되는 서울시장 선거라 적은 표도 무시하기가 어려워서다.

이 때문에 여야 후보들 모두와 정책 토론회를 벌이며 중도 포지션을 잡고 있던 당시 조정훈 시대전환 후보를 단일화에 끌어들였던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김 후보가 순순히 조속한 3자 단일화에 협조하지 않아 다단계로 단일화가 추진됐다는 점이다. 1차로 7일 조 후보와 단일화를 했고, 김 후보와는 오는 17일 결론을 낼 예정이다.

이에 따라 여권과 야권의 각자 단일화 추진에 여야 구도는 선명해졌고, 박 후보의 민주당 소속은 더욱 짙어진 것이다. 거기다 조 후보와의 단일화에서 기대한 중도확장은 LH 사태로 상쇄됐고, 김 후보는 12일 단일화 토론회에서 선명성 경쟁에 나서 민주당 간판은 거듭 부각됐다.

▲왼쪽부터 김진애 열린민주당ㆍ박영선 더불어민주당ㆍ조정훈 전 시대전환 서울시장 후보. (연합뉴스, 이투데이DB)
▲왼쪽부터 김진애 열린민주당ㆍ박영선 더불어민주당ㆍ조정훈 전 시대전환 서울시장 후보. (연합뉴스, 이투데이DB)

당 핵심관계자는 “애초에 민주당 후보가 아닌 시민의 후보라는 이미지를 강화해 성추문과 부동산으로 얼룩진 당 간판을 희석시켜야 했다”며 “그런데 미약한 지지율이라 시너지 효과는 전혀 기대할 수 없는 범여권 단일화를 하면서 민주당 후보라는 점이 돌이킬 수 없게 강조돼 꼬여버린 것”이라고 주장했다.

다른 당 관계자는 “김 후보가 자신이 역전할 수 있을 거라는 착각에 빠져 거칠게 단일화를 요구하면서 역효과를 냈다”며 “작은 표차로 질 수 있는 서울시장 선거라 단일화를 안 할 수는 없었지만, 강성 친문이라 그렇지 않아도 부동산 문제 탓에 진행 중인 중도층 이탈의 심화가 불가피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 야권의 갈등을 바라는 이도 나왔다. 또 다른 관계자는 “우리가 선거를 준비하며 삐걱거리는데 야권은 비교적 순항 중인 것 같아 더 불안하다”며 “야권이 후보 단일화 과정에서 다투길 기도까지 하는 처지”라고 토로했다.

한편 인용된 여론조사는 각기 2월 1~2일 만 18세 이상 서울시민 1000명, 지난 5~6일 1004명 대상 95% 신뢰수준 표본오차 ±3.1%포인트로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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