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상대적 박탈과 공분 사이

입력 2021-03-16 08:36 수정 2021-03-16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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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근 금융부 기자

20년 넘게 살던 집을 내놨다. 익숙한 것을 버리고 생경함을 택하기로 했다. 켜켜이 쌓아뒀던 추억은 묻고 새로운 것에 마음을 열기로 했다. 설렘도 잠시 새로운 시도는 또 다른 고민거리를 낳았다. 내 집의 가치는 수십 년 전보다 증가했다. 다만, 다른 지역의 가치는 그보다 더 빠른 속도로 올랐다. 가치의 증가가 반감되는 순간이다. 좌절의 씁쓸한 맛을 느끼는 순간이기도 했다. 선택지가 많지 않았다. 고민은 배가됐다. 실거주를 목적으로 서울 끝자락에 오랫동안 정착한 나는 고공성장한 주변 집값 등쌀에 좌절의 융단폭격을 맞았다. 상대적 박탈감도 동시에 느꼈다. 상대적 박탈감의 사전적 의미는 실제로 잃은 것이 없지만 다른 대상이 보다많은 것을 가지고 있을 때, 상대적으로 자신이 무엇을 잃은 듯한 기분을 느끼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는 사이 한국토지주택공사(LH) 땅 투기 사태가 터졌다. LH직원들이 내부 정보를 이용해 미리 노른자 땅에 편법으로 투기를 한 것이다. 사태는 일파만파로 커졌다. 공무원에서 정치권까지 확대되는 모양새다. 소위 힘 있는 자들이 자기들만의 정보로 부를 확대재생산했던 것이다. 치솟는 집값에 내집 마련의 꿈을 접을 수밖에 없는 소시민들의 공분을 사기에는 충분했다. 나도 그 중 하나다. 함께 분노를 느끼는 사이 상대적 박탈감은 더 자라났다. 집값의 온도 차 외에 공평하지 않은 세상에서 불공평하게 살아야 하는 내적 서글픔은 극대화됐다.

정부, 검찰, 금융당국이 대대적인 조사에 나선다고 한다. 내가 출입기자로 있는 금융당국도 소위 ‘에이스’ 인력들을 합수부에 파견, 강도 높은 조사를 예고했다. 문제가 되고 있는 북시흥농협 현장 조사도 앞두고 있다. 하지만, 농협중앙회 1차 자체 조사 결과 대출 과정에서 특별한 문제점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한다. 또 친지나 지인의 명의를 빌려 토지에 투자하고 대출을 받은 경우 등은 금융당국의 조사망에서도 벗어난다. 결국 표면으로 드러난 것 이면에 모종의 유착관계를 밝혀내야 실마리가 풀릴 것으로 보인다. 이 역시 기대감이 떨어진다. 내가 현실에 너무 찌든 탓일까, 세상이 그런걸까. 오랫동안 우리 사회에서 존재한 계급의 격차, 정보의 불균형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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