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 보는 세상] 영화 ‘미나리’에 미국이 반한 이유

입력 2021-03-19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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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영 크로스컬처 대표

한동안 대한민국은 ‘미나리’ 얘기로 봄날을 보낼 듯하다. 솔직히 아카데미 노미네이트가 없었다면 이름도 생소한 정이삭 감독이나 마이너 독립영화의 스멜이 강하게 나는 영화 제목을 갖고 있는 ‘미나리’라는 영화에 50만 이상의 관객(17일 현재 55만1837명)이 코로나를 뚫고 극장을 찾진 않았으리라.

화제의 ‘미나리’를 본 한국 관객들의 감상은 의외로 덤덤했다. 그렇다고 내놓고 악평을 하지도 않는다. 우리가 워낙 권위에 좀 약하지 않은가? 그러나 미국 쪽은 좀 달랐다. 골든글로브 외국어영화상을 필두로 크고 작은 상만 벌써 91관왕이라니 그저 놀라울 뿐이다. 왜 이들은 ‘미나리’에 열광하는 걸까? 이 영화가 미국인들에게 어필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그들의 마음속에 거세되었거나 잠재되어 있던 아메리칸 드림을 다시금 일깨워주는 이야기를 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제이콥(스티브 연)과 모니카(한예리) 부부는 마치 17세기 영국에서 배척당한 청교도인들이 새로운 개척지를 향해 미국 서부로 건너와 정착했듯, 자신만의 땅을 갖기 위해 아칸소주의 한 농장을 사서 개간을 시작한다. 당장의 돈을 벌기 위해서는 병아리의 항문을 들여다보고 암수를 구별하는 극한알바를 해야 하지만 그들에게는 꿈이 있었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농장 수확물을 납품하기로 한 한국 식당은 그들의 뒤통수를 쳤고 밭에다 댈 용수 값도 부족해 부득불 대출을 받아야만 했다. 여기에 심장병을 앓고 있는 아들까지 있다. 위기에 처한 이들 부부를 돕기 위해 한국에서 온 모니카 엄마의 손엔 미나리 씨앗이 들려 있었다.

영화는 할머니 순자(윤여정)가 등장하면서부터 본격화된다. 그녀는 삶의 내공이 대단했고 타고난 낙천주의자였다. 그래서 매사에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행동한다. 미국 프로레슬링을 즐겨 보고 화투를 아이들에게 가르쳐 주는가 하면, 손주의 손을 잡고 숲속으로 들어가 미나리를 심기도 한다. 제이콥의 사업도 점차 본궤도에 올라간 듯했지만 가족의 신뢰는 여러 이유로 이미 금이 가 있었다. 혼신의 힘을 다해 키웠던 농작물마저 한 줌 재가 돼 버리지만 생존력 강한 미나리처럼 그들은 마루 바닥에 함께 널브러 자면서 다시 일어설 힘을 비축한다.

최근 미국 국민들은 상처를 받았다. 민주주의의 최고, 경제대국의 최상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다. 그들은 선조들의 역경에 굴하지 않는 프로테스탄트 정신을 영화 ‘미나리’에서 다시 보았을 것이다. 끝으로 윤여정 파이팅!

박준영 크로스컬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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