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계가 '상생협력법 개정안'에 발끈하는 이유

입력 2021-03-21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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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중 검토해야" vs "기술 침해 실체 밝힐 수 있어"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전체회의가 열린 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이학영 위원장이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뉴시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전체회의가 열린 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이학영 위원장이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뉴시스)

대기업의 중소기업 기술 탈취를 규제하는 상생협력법 개정안이 국회 상임위를 통과하자 경제계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는 18일 전체회의를 열고 상생협력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개정안은 ▲비밀유지계약 체결 의무화 ▲징벌적 손해배상 도입 ▲기술탈취 피해에 대한 입증책임 완화 ▲자료제출명령제도 도입을 골자로 한다.

비밀유지계약 체결을 의무화한 데 대해 경제계에서는 부적절하다는 반응을 내놨다.

비밀유지계약 체결을 의무화하는 이유는 피해기업 구제를 위해서다. 현행법은 위탁기업이 수탁기업에 기술자료를 요구할 경우 요구 목적 등을 서면으로 주고받도록 규정했다.

하지만 중소기업중앙회에 따르면 수탁기업 중 53.8%는 서면을 주고받지 않은 상태로 기술자료를 제공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때문에 기술 탈취 의혹을 주장하더라도 피해기업 입장에서는 피해 사실을 입증하기가 쉽지 않았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는 "기술자료는 경제적 가치가 있는 자료로 공개된 자료까지 포함하는 등 그 범위가 매우 넓어 모든 사인 간의 계약에 개입해 법으로 비밀유지계약 체결을 의무화할 경우 기업거래 축소가 우려된다"며 반대했다.

징벌적 손해배상 도입 조항도 논란이다. 개정안은 위탁기업이 기술자료를 부당하게 사용하거나 제공해 수탁기업에 손해를 입히면 손해의 3배 이내로 배상 책임을 부과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경제계에서는 이 조항이 위탁기업 부담을 키워 대ㆍ중소기업 간 협력을 저해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경련은 기존 법률로 기술 침해를 처벌할 수 있다는 입장이고, 대한상공회의소는 이 같은 방식으로 처벌을 강화하기보다 협력을 촉진할 수 있는 법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주문했다.

경제계는 자료제출 명령제도 도입 조항도 비판했다. 개정안은 법원이 기술 분쟁 관련 소송에서 위반 행위의 증명이나 손해액 산정에 필요한 자료 제출을 명할 수 있도록 했다.

전경련은 "상생법 사건은 이미 중기부 및 공정위 현장조사, 문서제출명령 등을 통해 위법성과 관련된 행위사실이 확정된다"며 도입 필요성이 낮다고 주장한다.

경제계가 가장 우려하는 대목은 '기술탈취 피해에 대한 입증책임 완화'다.

개정안은 수탁기업이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통해 위탁기업의 기술 탈취를 주장할 경우 위탁기업에 어떤 행위를 했는지 구체적으로 제시하도록 했다. 만약 위탁기업이 정당한 이유 없이 이를 제시하지 않으면 수탁기업 주장을 진실한 것으로 인정하는 것이 골자다.

유환익 전경련 기업정책실장은 "기존 거래기업 보호만을 위한 입증 책임 전환은 기존 우리 법체계와 배치되고 혁신 기술을 개발한 후발 중소벤처기업과의 거래를 막고 협력기업 대상을 국내가 아닌 해외에서 찾을 우려도 있다"고 비판했다.

앞서 전경련도 "민사법상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법위반 행위의 입증 책임은 손해배상을 청구한 원고에게 있음이 원칙"이라며 "기술 유용 행위가 존재한다는 점은 원고(수탁기업)가 입증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대한상의도 "개정안에 포함된 입증 책임 전환 등은 위탁기업의 부담을 키워 오히려 대ㆍ중소기업 간 협력을 저해할 우려가 크다"고 했다.

반론도 있다. 기술 침해 소송에 필요한 증거는 대부분 가해기업이 갖고 있기 때문에 피해기업이 입증해야 할 몫을 일부 덜어줘야 한다는 주장이다.

박희경 재단법인 경청 변호사는 "개정안은 입증 책임을 100% 전환해서 피해기업은 입증하지 않고 가해기업만 입증하라는 내용이 아니다"라며 "피해기업이 어느 정도 침해에 대한 입증을 하면 그에 대해 단순하게 반박하지 말고 구체적인 행위태양으로 항변하라는 규정이기 때문에 실체적 진실에 접근할 수 있는 방안"이라고 말했다.

'기술 자료'의 개념이 모호한 점도 경제계의 비판 대상이다.

하지만 이는 실무상으로 문제될 것이 없다는 지적이다. 박 변호사는 "위탁기업과 수탁기업이 계약을 맺을 때 기술 자료 목록을 서면으로 작성해 요청하게 돼 있어서 위탁기업이 기술 자료가 뭔지 잘 안다"며 "기술 자료 개념이 모호해서 위탁기업이 다 책임진다는 주장은 타당하지 않다"고 꼬집었다.

공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로 넘어갔다. 법사위에서 개정안이 통과되면 본회의 표결을 거쳐 공포된다.

대한상의는 "상생협력법의 취지에 맞게 규제나 처벌을 강화하기보다 대・중소기업 간 협력이 촉진되는 방향으로 입법을 해주기를 당부한다"고 밝혔다.

유 실장은 "대ㆍ중소기업이 진정한 상생을 통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향후 법사위 논의 과정에서 상생협력법의 신중한 검토를 요청한다"고 주문했다.

한편, 중소벤처기업부 조사 결과 2014~2016년 기술 유출 피해 경험이 있는 중소기업은 3.8%로 나타났다. 피해 규모와 유출 건수를 밝힌 중소기업 52개사의 기술 유출 피해 금액은 1022억 원이었다. 기술 유출ㆍ탈취 피해 유형 중에는 '경쟁사로 기술 유출'이 42.0%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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